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on Feb 08. 2024

중국 국제학교 아이들 과외하기-4

막막한 알파벳 가르치기부터 작문까지  


"선생님, 우리 00 이는 알파벳부터 배워야 해요, 국제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떡하죠?"

나도 어학원에서 일을 해 보았지만, 알파벳을 처음부터 가르쳐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 해 보기로 했다. 서점을 뒤져서 알파벳 카드를 샀다. 알파벳 찾기 놀이도 하고, 아이패드로 알파벳을 이용한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억지로 끌고가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님께 딱 1주일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맨 처음에는 A를 T라고 말하고 G를 P로 말하는 등 전혀 연관 없는 알파벳을 말했지만, 알파벳 노래가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이 노래를 집에서 하루종일 흥얼거리더니 알파벳을 드디어 외웠다! 그다음 대문자, 소문자 가르치는 건 알파벳에 비해서 아주 아주 쉬웠다.


"파닉스의 중요성"

파닉스는 정말 여러 번 가르쳤다. 파닉스가 부족해 보이는 친구들은 다시 뒤로 돌아가서 파닉스부터 다시 가르쳤다. 나는 어려서부터 영단어 스펠링 외우는 게 정말 정말 싫었기에 나와 함께하는 친구들에게 이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영단어는 말할 줄만 알면 스펠링을 쓸 수 있다. 파닉스를 배우면 말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꼼꼼하게 파닉스를 가르쳐 놓으니 수준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어려운 단어가 나와도 쉽게 발음하고, 쉽게 스펠링을 쓸 수 있었다. 아이들이 스펠링을 헷갈려 하면 바로 알려주기보다는 Lizard (Car할 때 얼), teacher (Water할 때 얼), sightseeing (night 할때 아이-) 이런식으로 힌트를 준다. 이렇게 했을 때 단어를 쓸 때 더 유심히 보고 기억하는 것 같다.


"선생님, 영작이 잘 안 돼요"

영어실력이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말하기나 글쓰기 자체를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글 전체 개요를 잡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칫하면 아이들이 글쓰기 자체를 싫어하게 될까 봐 수업 전 많이 고민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색감으로 자료를 만들고 스텝만 잘 따라가면 한 편의 잘 짜인 글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이벤트는 내가 매일 다르게 준비해 간 편지지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이 담긴 편지지에 수정된 최종본을 옮겨 적도록 시켰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 줬다. 좋아해 주긴 했는데, 각자의 취향에 맞는 편지지 찾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나중에는 찾은 그림에다가 직접 PPT로 줄까지 그어가며 편지지를 직접 만들었다..

20장 분량의 직접 만든 PPT


"문법이 힘들어요"

나는 '기초파'다. 기초가 안 되어 있으면 더 어려운 것들을 배우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은 것 같다. Noun이 뭘까 Verb가 뭘까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게 재미있고, 아이들 머릿속에 착착 구조화시켜서 정리했을 때의 쾌감이 있다. 나는 아이들의 문법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한 아이들은 Be-verb 문장의 의문문을 Do로 물어보는 등의 실수가 적다. 덕분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문법을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재밌는 것으로 생각하고, 더 나아가 Reading book 지문 내 에서 배웠던 문법을 ’숨은 문법 찾기 게임‘처럼 찾아내고는 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기초가 되어있지 않은 친구에게 '부모님의 요청으로' 어려운 문법만 반복하고 있으면 기운이 빠진다. 그럴 때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답이다. 물론 그 친구가 영작한 내용을 가지고 정확히 부족한 부분을 콕 집어 말씀드려야 설득력이 있다.


"Reading 수업해 주세요"

영어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수업을 시작할 때 아이들에게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지 물어본다. 인문학, 미술, 과학, 수학 등등 영어를 사용해서 뭘 배우고 싶은지 물어본다. 확실히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주제에 대해 공부하면 이런 어려운 단어를 어떻게 외우지..? 싶은 것들도 어느샌가 다 기억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초등 과학과 수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화강암, 현무암, 흑요석, 석회석.. 그리고 많은 구름들과 역사와 미술 그리고 우주까지...


"나와 맞지 않는 학생"

나와 맞지 않는 학생도 있었다. 사실 학생이 나와 잘 맞지 않는 경우는, 부모님과 나와의 합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학부모가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있는 경우에 학습 효과가 더 좋았다.


"나의 도움이 필요 없는 학생"

나는 꽤나 솔직하고 죄책감이 많다.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자신 있는 부분이 있고, 자신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다른 선생님을 추천해 드리거나, 학습 방향에 대해서만 조언을 하고 다른 선생님과의 상담 방향을 잡아주었다.




나도 언젠가는 아이를 가지게 될 텐데, 이런 학부모의 다양한 고민들을 미리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가장 보람차게 느껴질 때는 아이들이 "벌써 집에 가요? 안 가고 싶다" 혹은 "수업이 너무 재밌어요" 혹은 "이게 왜 지금까지 어려웠었지?" 등과 같은 말들을 들을 때다. 이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공부시간을 내가 재미있게 만들었다니! 국제학교는 아무래도 영어로만 대화를 해야 하다 보니 어학능력이 자신감으로 직결되기도 한다. 걱정되어 학교생활은 어떤지 물어보니 아이들이 자신 있게 대답을 한다.


"우리 반에서 제가 제일 잘해요! 학교생활이 정말 즐거워요!"


내가 중국에서 한 수 많은 일들 중에 가장 행복하고 꾸준하게 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중국 국제학교 아이들 과외하기-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