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내가 납득이 되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절대로 반대 의견을 갖거나 아예 다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좋아한 적이 결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알고 보니 나는 공감하는 척도 사실 매우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얼굴에 티도 나고 가식적이기까지 하다.
얼마나 어색한지 모른다. '영혼이 없다'는 말을 그래서 많이 들었나 보다.
내 주변에 대화를 꽤 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감에서 조차 계속 실패하고 있는 걸 나는 많이 봤다.
심지어 나와의 대화 속에서도 그들은 내내 실패하던데. 사실 나만이 실패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이 대화에서 정말 성공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걸까?
아니 미안하지만 그들도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을 거다.
피곤한 기색으로 그 대화를 돌리거나 아예 무시하거나 비아냥이나 터부시로 넘어가거나 적당히 상대로 하여금 눈치채게 하여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하거나,
자기만의 방법으로 주제를 돌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분명 그 주제는 사람을 싸우게 하거나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일치하지 않는 주제는 단지 소모적일 뿐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서로 이해할 생각이 없으므로.
다시 말해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어떤 의견을 이해하며 대화한다는 것은,
"나는 좀 참고 10분간은 들어줄 수 있어"라는 뜻이지, 결단코 마음을 열고 듣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고집이 세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낼 뿐이다.
상대가 내게 뭔가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면, 그건 나의 태도도 억양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혹은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이) 나와 딱 맞지 않아서다.
사람들이 이걸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느껴 본 바로는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내 생각과 아주 다를 때, 불편하다.
더구나 그 분야에 대해 내가 의견이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나도 상대가 말하는 태도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집이 세군. 남의 말을 듣지 않군. 자기 말만 하네. 아 답답해. ' 이건, 정말이지 대화 태도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생각의 접점이 없어서다.
일례로 어떤 친구가 내게 최근에 '나의 주장을 하기 위해' 말이 강해 졌다고 하는데
나는 원래 내 주장을 할때 강하다. 그리고 그 친구도 강하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해 보니, 정치색이 달라진 것이다.
크게 변한 게 없는데 유독 그렇게 느낀 이유는 친구와 주장하는 바가 달라져서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같은 생각이었을 땐 신이 났던 대화가 의견이 달라지면 상대가 한없이 강하고 부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실제로 의견이 다른 사람과 대화한다는 건
자석의 N극과 N극을 붙여보려는 시도만큼 무모하고 진 빠지는 일이다.
그래서 "의견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 "나는 잘 들어줄 수 있다"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그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나는 그 과정이 적어도 어렵고 유쾌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늘 의견이 다른 사람 대할 때 두렵다. 특히 친구, 가족, 나의 배우자와 중요한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때 상당히 괴롭고 큰 스트레스다. 심호흡을 하고 이 사안과 저 사람자체를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일치하지 않음에서 오는 이질감과 몰이해가 관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나는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대화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순수함. 우리가 부딪치는 것이 단지 한쪽의 고집과 대화의 기술 문제인 줄 아는 그 오만함이
이 문제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무엇 때문에 힘든지는 알아야 더 조심하고 덜 외롭지 않을까. 진단이 정확해야 병이 낫는 것처럼.
"그날 네가 날 가르치는 것 같아서 힘들었어. "
"그랬구나. 그랬다면 무조건 내가 미안해 "
나의 사과는 ,
'나는 네 의견과 달라' 그말을 못 했을 '너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너 사실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데..
내가 그 말도 못 하게 분위기를 만들었을까..? 그 상황이 미안했다. 의견은 달라지게 마련이고 너는 나랑 다르니까. 날 견디느라 힘들었겠네.
그렇게 두사람의 배꼽친구는 사안을 보는 시각이 서로 많이 달라졌음을 인정해야 했다.
우리가 여전히 친구일까? 친구다.
대화를 잘 하면 내 생각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아니 없다. 나는 그 친구의 의견을 이해할까? 아니 다르다는 것만 명확히 알 뿐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대화하지 않는 것이 상처주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정말 생각이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계십니까?'
결단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국 생각이 같은 사람을 찾고 있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확인 또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이 결국 같은 편을 먹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동지요 친구다.
하물며 SNS세상에서도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생활양식, 라이프스타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팔로잉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팔로우, 언팔로우를 통해 생각이 같은 동류들이 끼리끼리 모여 산다. SNS 홍수 속에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고 있는 듯 착각 속에 살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subject을 보기 좋게 고른 관계일 뿐 결코 폭넓은 이해의 수용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적이 결코 없다.
생각해 보라. 당신은 그런 적이 없다.
그렇게 쿨했던 적이 인생에서 결코 없다.
"걔 요즘 이상해졌어. 회사가 힘든가 봐. 상처가 있나 봐. 머리가 돌았나 봐. 이렇게 돌려 이해해 보려는 게
관계 유지를 위한 최선이다. 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인 게 아닐 거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참고 보지만 결국은 멀어지게 된다. 사람은 생각의 결이 같아야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정치로 갈린 이 시대가 힘들고 우울한 게 아닌지.
무엇이 기준이 되는지 조차, 최소한의 선에 대한 합의조차 흔들리고 사회 안전선이 무너지는 이때에
우울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과 대화가 되지 않으니까. 꼭 친구일 필요는 없지만 지금은 흡사 접점의 끊김이 섬과도 같다.
"바다가 파랗지? 그래서 바다를 그리려고 파란 물감을 사러 갔는데..." 까지는 쉽게 얘기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왜 바다가 파랗냐고 되묻는 사람하고는 정말 대화하기 힘들다.
그리고 더 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야 나의 한계를 진정으로 이해했다.
나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대화를 참고 있거나 회피하고 있는 중일뿐이다.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웃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그런 사람임을 겸허히 인정하거나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을 최대한 교양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