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바보로 살아라. 신념을 가진 사람을 경계하라'
'신념에 기대 사는 건 시간 낭비라네, 말 그대로 거짓이야. (....)중략 "정의냐 불의냐도 진영에 따라 답을 내죠" "(혀를 차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세. 지금 내가 자네와 이정도 대화를 하는 것도 내가 자판기가 아니기 때문이라네. 답이 정해져 있으면 대화해서 뭘 하겠나? 자네가 만약 내일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내 대답은 달라져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오늘의 대화가 중요한거야. "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P170~174
얼마나 동감 되는 구절인지 모른다.
교육관에 대해서는 인간이 먼저 되어야한다는 큰 지침 외에는 어떤 신념을 가져 본적이 없다.
그때그때 책이나 교육자, 선생님들께 새로운 것을 배울 때가 많고 나는 남에게도 잘 배운다.
때로는 아이들이 처한 상황과 상태에 맞게 융통성 있는 대처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요구되는 소양이 '판단력'인데, 물론 이것이 어렵다. 책과 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계속적으로 회의하고 반성하고 또 배운다. 판단력에 대한 부모의 책임감의 무게를 늘 무겁게 진다.
내가 확실히 느낀 것은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키우는것이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제일 좋다는 거다.
대신 부모가 권위가 있으되 따뜻한 품성이면 된다. 문제 있을때 소통하는 자녀는 사실 큰 문제가 없다. 그러면 아이들이 자라면서 상당히 자기력이 강해짐을 느낀다.
어떤 신념이 있다는 것은 '내다리를 내가 걸고 넘어지는 것'과 같다.
사고의 유연성은 남에게만 베풀어지는 여유가 아니라 결국 나와 내자식의 교육, 더 넓게는 삶의 태도에도
연결돼 나가므로 어떠한 인지교육보다 상위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유연성은 이어령 교수가 언급하진 않지만 객관적이란 얘기다.
신념을 가진자는 객관적이기 어렵다.
요즘 정치에서 신념같은 걸 많이 본다.
최장집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같은 책을 신나서 읽어제끼던 시절이 차라리 행복이었다 싶을정도로 요즘 정치는 실력도 도덕성도 명분도 없어진 사람들이 나와서 온통 잡탕물을 만들어 놓았다.
후져도 이렇게 후질 수가 있나.
'정의'라는 말이 내가 알고 있던 말과 다르게 쓰는 말인가.
'탄압'이라는 말을 부산돌려차기 같은 성범죄자가 쓰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단어뜻조차 이제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과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같은지 '용어의 정의'까지 내려야 할 지경이 될 정도로 오염됐다.
'의견이 다른 것'과 '그냥 잘못'된 걸 혼용하는 사회가 지겹다. 다른의견이 아니고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판단조차 유보하는 것도 우습다. 불과 몇년 전엔 잘못된 사람이라며 끌어내리기도 한 역동의 시대이고 우리는 여전히 불의를 참지 못한다고 한다. 그 불의가 바뀌는가?
되려 그 가치를 바로 잡기위해 애써 준 사람들이 고맙고 이유없이 큰 힐난을 듣고 핍박받는 것에 깊은 안쓰러움도 느낀다. 행정과 과학, 국가적 이익으로 접근할 정책을 이념으로 다가간 잘못된 정책은 바로 잡지 않을 수도 없다.
'젊어서 좌파 아닌 사람 없고 철들고 계속 좌파이기도 힘들다'는 얘기처럼 세상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돌아가지 않았음을 , 포장지가 너무 예뻤구나 깨닫는 것이 때론 아프지만 자정작용을 포기하는 것보단 나음을 알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