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3년 차 직장인을 위기의 시기라고들 한다. 어느 정도 업무에 대해 숙련도도 쌓였고, 직장인 되고 나서의 삶에도 적응을 한 상태다. 슬슬 현타가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지?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6년 차도 9년 차도 비슷한 이유로 위기라고 한다. 사실 자기가 하고 싶은 '내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선 직장인에게 매일이 위기일지도.
나 역시 369 직장인의 위기를 겪었다. 개인적으로 똑똑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했던 동기들이 우르르 이직했던 때가 있었다. 누구는 연봉이 20% 올랐다더라, 누구는 성과급으로 얼마를 받았다더라, 따위의 소리가 귀에 때려 박혔다. 나만 멈춰있다고 느꼈다.
누구는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누군 부동산이 몇 채라더라. 나만 도태됐다고 느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단 조급함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이었다. 회사 동기가 커피를 마시다 문득 내게 말했다.
"너 왜 더 열심히 안 해?" 그는 내가 회사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 하고, 최고가 되어 몸값을 높여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문의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질책이었다.
나는 무안해하며 대답했다. "회사에서 돈을 받는 만큼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냐?"
그의 세상에서 난 게으르고, 무능하고, 미래에 대해 준비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회인이었다. 반발심이 들었다.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어째서 내가 회사에서 남들보다 더 앞서 나갈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가? 나는 성공한 회사원이 되기 위한 삶을 원하지 않는데 말이다.
아, 내 길을 선택부터 해야겠구나. 난 내 미래를 진지하게 그리고 준비하지 않고 있구나 싶었다. 회사원으로 되는 것까지만이 목표였기 때문에 회사원이 되고부터의 계획이나 의지가 전혀 없었던 거다.
위기에 처한 직장인에겐 대개 3가지의 길이 놓인다.
첫째, 열심히 일해서 빠르게 승진하여 연봉을 높이거나,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이직한다.
둘째,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다, 아니 회사의 일이란 것 자체가 내 일이 아니다는 걸 깨닫고 경제적 자유를 위해 자기 계발에 매진하고 재테크로 큰 수익을 올린다.
셋째, 불안해하고, 불평을 늘어놓고, 우울해하며 침대에 누워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튼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길을 병행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래,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긴 하다. 소수의 능력자만이 그렇게 살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빠르게 경제적 자유에 도달하겠지. 보통은 둘 중에 하나 하기도 쉽지 않다. 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잔 거다.
세 가지 모두 아니라 사업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 물을 수도 있다. 모두가 사업가의 마인드를 장착하고 있진 않다. 내가 직장인이므로 직장인의 길을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위 세 가지 중에서 세 번째 길은, 그래 솔직히 내게 가장 가까운 길이긴 하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우면 얼마나 안락한지, 그것만으로 더 바랄 게 없어진다. 모든 의지나 결심은 전기장판 위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쇼츠나 릴스는 끝도 없이 취향을 저격한다. '이것만 보자'가 무한히 반복된다. 넷플릭스는 한 시리즈를 정주행 하면 기다렸다는 듯 다른 대작을 들이민다.
이렇게 세 번째 길은 가장 쉽고, 익숙하고, 한심한 길이다.
시인 폴발레니는 말했다.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얼마 전에 읽었던 자기 계발서의 일침도 떠올랐다.
장담하건대 당신이 재미있는 것만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당신의 삶 자체가 조만간 재미없어질 것이다.
난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침대에서 일어나게 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모두가 알듯 우리는 이제 백세 이상 살아야만 한다. 정년이 연장될 것을 감안하더라도 직장에서 은퇴하고 거의 40년 이상의 시간을 살아남아야만 한다.
세 번째 모습처럼 그저 직장에서 버티기만 했다면 이 기나긴 세월은 그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게 되지 않을까. 아무런 기술도, 비전도, 실력도 없이 야생에 내쳐지게 되는 거니. 자조적인 문과생의 최종 직업은 치킨집 사장이라는 것처럼 경쟁력 없이 자영업에 내몰려 비참한 노후를 맞이하게 될 확률이 높다.
이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이 너무 좋다면, 평생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지금 조금은 고통을 분담해야만 한다.
침대 속에 파묻혀 천천히 죽어가지 않기 위해 난 오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식창을 킨다. 컴퓨터를 켜고 부족한 글이나마 끄적이게 된다.
자, 이제 앞서 말한 남은 두 가지 직장인의 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첫째, 열심히 일해서 빠르게 승진하여 연봉을 높이거나,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이직한다
첫 번째 선택은 직장인이 가장 마음 편하고 관성적으로 선택하기 좋은 길이다. 틀린 부분도 없고 문제도 없어 보인다. 직장인이라면 오히려 당연하기까지 해 보인다. 그러나 난 첫 번째 길의 성공 가능성과 성공의 정도를 이야기하고 싶다.
고액의 연봉을 줄 수 있을 정도의 기업이라면 거의 모두가 체계적인 인사 제도와 연봉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기는 인재더라도 그 시스템들을 모두 무시하고 폭발적으로 승진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인상률로 연봉을 높일 순 없다. 결국 내가 쏟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 대비해서 보상이 그리 크지가 않다. 또 내 사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하기 위해서라면 이 또한 은퇴 후의 시간들이 막막한 건 마찬가지다.
이직도 쉬운 길이 아니다. 매번 이직을 준비하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에 적응하는 일은 여간 큰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직이 여의치 않은 직무도 있고 매번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는 것도 어느 순간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해당 직군, 해당 연차의 어느 정도의 연봉 상한선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또 정확히 내가 맡게 될 업무, 내가 소속될 팀,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을 전혀 선택하거나 미리 알 수 없다는 점도 큰 리스크 중 하나다. 나의 성장이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칠 요인들 중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거다.
직장인의 꽃인 임원도 막연하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 중 단 0.8%만이 임원이 된다. 100명 중 1명이 채 안 되는 좁은 문을 내가 통과할 수 있을까. 만약 통과했다 치더라도 임원은 대부분 계약직, 임원이 되는 것이 곧 완전한 성공이나 내 미래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단 거다.
결국 투자 대비 기대되는 보상이 미약하다. 하이리스크 로우 리턴의 길인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자신이 없다. 솔직히 일은 ESTJ들이 잘한다. 현실적이고, 철저하고, 계획적이고 그러면서 외향적이다. 회사일을 잘하기 위한 온갖 속성들이 그들에게 있다. 훌륭한 구성원, 좋은 동료로선 모르겠으나 사무일을 잘하는 사람으로는 난 나보다 더 적합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구태여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남아서 몇 시간 더 일하고, 일에 온갖 심력을 사용하고, 스스로를 갉아가며 일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뇌과학에선 말한다. 절제력과 결정력은 소모성 자원이라고. 회사에서 많이 고민하고 열심히 일할수록 퇴근해서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줄어든다. 인간은 24시간 같은 효율로 풀가동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난 그게 내 길이 아니라 생각했다. 축구 선수가 농구 코트에서 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제, 두 번째 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앞서 말했듯 우리는 백 년을 살아야 한다. 꾸준하고 끊기지 않는 수입이 필요하다. 직장에서 은퇴하더라도 말이다. 이를 위해 N잡이나 재테크가 필요하다. 이 중 재테크는 두 가지 이유로 직장에서 성공하거나 몸값을 올려가며 이직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첫째, 자산의 상승은 복리다. 둘째, 임원의 길처럼 상위 0.8%가 될 필요 없이 시장의 평균보다만 더 잘하면 된다.
자산은 복리로 커진다. 적금이든, 주식투자든, 부동산 투자든 무슨 방식의 투자든 수익은 복리로 쌓인다. 일찍 시작할수록 유리하다는 말이다. 몇 년의 차이가 훗날 엄청난 액수의 차이를 부른다. 일찍 시작할수록 은퇴했을 때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여유 자금의 규모는 커진다.
단 여기서 투자란 하이리스크의 투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조금만 검색하고 공부해 보면 전 세계적으로 검증받은 저위험의 투자 방법이 즐비하다. 예를 들어 올웨더 투자법이란 게 있다. 금, 선진국 주식, 원자재, 채권에 각각 분산해서 투자하는 방법인데 11년간 연평균 복리 수익률이 6.3%나 된다. 이런 투자법들을 공부하고 일찍 시작해서 10년, 20년을 반복하면 삶이 훨씬 윤택해질 수 있다.
문제는 성급히 뛰어들었다가 손해를 보고는 다신 투자하지 않겠다고 등 돌려 버리는 태도가 아닐까 한다. 누가 처음하는 일을 시작부터 잘할 수 있나. 공부와 시간 투자, 그리고 인내가 필요한 것뿐.
신기하게도 수능 시험은 그렇게 피 터지게 공부했던 친구들이, 취업을 위한 토익/토플에는 그렇게나 시간 투자를 많이 했던 애들이 유독 평생이 달린 투자 공부에는 박하다는 걸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들 모두 얕고 짧게 공부한 후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 등으로 큰 손해를 보고 시장에서 떠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 혹은 손해를 보고 있는 사람을 조롱한다.
"적금이나 들어라."
"그거 다 도박 아니냐?"
"그래서 얼마 벌었는데?"
맞다. 사실 내가 자주 듣는 비아냥들이다. 나는 아직은 친구들 사이에서 마이너스의 손으로 통한다.
나는 아직 초보다. 그리고 시장에는 나보다 앞서 들어와서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단기간에 내가 그들의 수익을 따라잡을 수 있다면 모두가 쉽게 부자가 되겠지.
자산이 복리로 쌓이듯 내 투자 지식과 실력도 복리로 쌓여가리라 믿는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거다.
나중에 자산이 커지거나 은퇴를 할 시기에는 별 수 없이 모두가 투자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투자에서 큰 손해를 본다면 돌이킬 수가 없다. 손해액도 크고 이걸 만회할 시간이나 기회가 다신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듯 투자에서의 준비란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시간이 많다. 기회도 널려 있다.
매일 뉴스를 체크하고 투자 관련 구루들의 책을 읽는다. 그날의 투자를 복기하며 잘한 것과 못한 것에 대해 일기를 기록한다.
어떤 것이 나를 부의 길로 이끌어 줄지 아직은 알 수 없기에 코인, 채권, 주식 등 기회가 보이는 온갖 자산에 다 투자해보고 있다.
어떤 것이 나와 잘 맞을지 확신하지 못하기에 단타, 스윙, 퀀트 등 온갖 기법에 다 도전하고 있다.
이게 미래를 위한 내 투자다.
철학자 로버트 그루딘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의 범위와 부피는 우리가 현재를 준비해 온 정도, 미래에 대한 준비로서 현재를 활용하는 정도에 따라 커진다.
나의 현재가, 그리고 닥쳐올 미래의 현재들이 어느 누구보다 커지고 풍부해지길 바란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통제력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며,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