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한나라의개짱이 Feb 04. 2024

작은 실수에도 박살 나 버릴 수 있는 게 인생이라니

불행하지 않아야 행복하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부분파열도 아니고 갈기갈기 찢어져 손 쓸 수가 없는 '완파'였다. 운동과 돌아다니는 걸 참 좋아하던 나였다. 근 반년을 잘 걷지 못했던 2023년은 인생의 암흑기로 기록될 것 같다.


참 운도 없지. 축구를 하면서 자주 다쳤던 기억이 있어서 몇 년을 공 주위에 가질 않았다. 프로 축구 경기를 보는 걸로 대리만족하며 살았다.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축구를 하자는 친구의 제안을 덥석 수락했다.

복선이었을까. 유독 당일에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 비까지 으슬으슬 내리는 날이었다. 그냥 집에 가서 따뜻하고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유 없이 약속을 취소할 순 없는 노릇이라 마지못해 축구화를 신었다. 결국 경기를 시작한 지 채 30분도 되지 않아서 난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채 응급실에 실려가야만 했다.



타격이 정말 컸다. 병원비로 수백이 훨씬 넘게 들었고, 거의 3달 이상을 깁스와 목발에 의지해야 했다. 계획돼 있었던 약속과 여행, 축제, 해외출장 등 수많은 기회와 기대하던 일정들을 포기해야 했다. 잘 걷지 못해 살이 많이 쪘고, 단순한 산책조차 하기 어려웠다. 폭염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며 목발을 짚고 다녔고, 장마철엔 온몸으로 비를 맞아가며 출퇴근을 했다. 매일 하던 운동도 못했다. 반년이 훨씬 넘은 아직도 통증을 달고 살고 간단한 조깅조차 못한다.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완치가 되기까지 한참이 걸릴 거고, 완치가 된다고 해도 본래 운동 능력의 80%도 회복하지 못할 거라고.


그야말로 한 번의 결정이 너무나 뼈아픈 후유증을 남겨버렸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 더욱더 고통스러웠던 건 따로 있었다. 내가 이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천재지변처럼 찾아본 부상이 아니었단 거다.


공을 찬 지 5분쯤 됐었을 때, 몸싸움 중에 왼발을 삐끗했다. 통증이 상당했다. 내게 찾아왔던 첫 번째 기회. 여기서 멈출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뛰어보겠다며, 내가 빠지면 숫자가 많지 않는다며 굳이 일어섰다. 얼마 뒤 구성원 한 명이 일정이 있어서 빠진다며 내게 같이 경기를 마무리하자고 했다. 내게 왔었던 두 번째 기회였다. 오래간만에 한 축구에 신도 났었고 기껏 시간을 비워 축구장까지 빌렸는데 아쉬웠다. 남겠다고 했다.


골키퍼를 하다가 사람들이 말리는 데도 흥에 겨워 굳이 공격을 나갔다. 삐끗했던 왼발에 통증이 남아 있어서 오른발에 더 힘을 주며 뛰기 시작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랬어야했나 싶다. 무슨 국가대표나 트로피가 걸린 인생의 경기도 아니었는데.


오른 종아리 쪽에 묵직한 통증과 심상치 않은 근육통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게 왔던 마지막 기회였다. 제발 그만 멈추라고 이 바보 같은 놈아. 무시했다. 이 정도 통증쯤이야.

오른발에 크게 힘을 주며 속도를 내던 순간 펑! 하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내 오른쪽 종아릴 걷어차는 것 같은 충격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뛰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혼자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진 거다. 펑하고 터지는 소리가 모두가 들을 정도로 커서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직감했다. 아 이거 조금이 아니라 심각하게 다친 거 같은걸.


바닥에 대자로 뻗어 고통 속에 멍하니 하늘만 올려보다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부상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내일 출근 어떻게 하지?'였다. 슬픈 직장인의 삶이란.



이후 수술을 하고 병원 침대에 누워 힘겨웠던 시간들을 버텨가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이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뼈저리게 배웠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성공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는 게 아니었다. 대박을 노리는 것도 아니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도 아니었다. 우선순위는 바로 내가 위기에 빠지거나 불행해지지 않게 '리스크를 관리'하는 거란 걸 그때야 깨달았다. 한 번의 실수로 사라질 수 있는 건 진정한 성공이나 행복이라 부를 수 없다.




잠깐의 축구경기라는 사소한 쾌락을 포기하지 않으려다 반년 이상 운동을 못하는 다리가 됐다. 이제 고작 30대인데 평생 다치기 이전의 컨디션은 회복할 수 없다고 했다. 고작 운동하다 부상 입은 걸 가지고 확대해석 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난 이게 내 삶을 지배해 온, 그리고 삶을 대하는 내 태도란 걸 객관적으로 직시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태도가 내 삶을 망가트릴 수도, 구렁텅이에 처박아버릴 수도 있겠구나.


그래 우리는 인생에서 이걸 명심해야 한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리스크 관리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하나의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꼭 사소한 징조들이 있다는 거다. 비슷한 원인으로 경미한 사고들이 먼저 발생한다는 거다. 그 징조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리스크에 유독 둔감한 사람들이 있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거나 사소한 쾌락에 목을 매는 것이다. 우리 아빠는 평생 운전을 해오셨지만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으셨다. 가족들이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답답하다며 곧잘 안전벨트를 안 매신다. 운전하면서 핸드폰에 내비게이션을 검색하기도 하신다. 절대로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거다. 그러나 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본인이 100% 통제할 수는 없다. 나의 운전 실력과 상관없이 사고란 건 어떻게든 일어날 수 있고, 단 한 번의 사고가 모든 걸 빼앗아 가버릴 수 있다.


내 친구는 코인으로 몇 십억을 벌었다. 본인이 코인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장사를 하기 위해 모아뒀던 돈까지 털어 넣어 코인에 올인을 했다. 그리고 코인과 관련된 큰 사고가 터져 단 몇 시간 만에 벌어둔 몇십 억과 장사 밑천마저 한 번에 날려버렸다.


직장 상사 중 상무 진급을 앞둔 사람이 있었다. 실적도 뛰어났다. 한참 자신감이 오르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던 중 회식을 했다. 술이 과했던지 다른 이성 부하 직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격려를 한다며 여러 이성을 포옹했다. 결국 내부 감사를 통해 중징계를 받고 영영 재기할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해 모두에게 닥친 일이 과연 천재지변이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분명 그전에 사소한 징후, 경미한 사고들이 있었을 터다. 다들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거다. (아 물로  아빠는 아직 사고가 나지 않으셨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다.)



미생에서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위험한 곳을 과감하게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강렬한 곳을 외면하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도 용기다.


 

옛말로 하면 소탐대실, 작은 걸 탐하다 큰걸 잃지 않아야 한다. 늘 안전장치를 마련해둬야만 한다. 그리고 상방은 열려 있고 하방은 닫혀 있는 게임에만 뛰어들어야 한다. 한 번의 실패나 사고로 내 인생에 지장이 생긴다면 그 게임에는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평생 최고의 투자자로 칭송받는 워런 버핏도 본인을 성공시킨 투자원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투자에 있어서 기억해야 할 제1원칙은 '잃지 않는 것', 제2원칙은 '1원칙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우리 인생은 사소한 것에서 촉발된 위험 하나에도 무너져버릴 수 있을 만큼 여리고 여리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다시 한번 행복을 지키는 길이자 내 삶을 소중히 대하는 방법은 위험을 관리하는 거란걸 느낀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자.

퉁퉁 부은 다리를 내려다보며, 가슴 아프게 되새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