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그다음의 시대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 대니얼 서스킨드

by 지렁

대니얼 서스킨드의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를 읽었다. 스포 없이 최대한 나의 생각과 느낌, 느꼈던 공포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다양한 의견은 항상 환영입니다.


21세기 현대인 중 본인의 직업이 평생의 직업일 거라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며 어렸을 적 꿈부터 2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나의 희망 진로는 열댓 번 바뀌었다. 책을 좋아해서 밥 먹을 때도, 길거리를 걸을 때도 책을 읽다가 전봇대에 부딪쳐 판다눈을 달고 다녔을 적에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피아노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을 때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예술의 영역에서 재능이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걸 인정하고 씁쓸하게 떠났다. 이 모든 게 초등학생 때까지의 희망 진로인데 대학 입시와 복수 전공 선택, 취업 준비 과정에서 또 여러 번 바뀐 걸 생각하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다를 거라 생각했다. 진로가 확실하게 정해졌으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밤새우며 미쳐가는 과정이 이제는 다 끝났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들어간 첫 회사에서 부장님조차 진로를 고민하는 걸 보고 난 알아버렸다. 난 평생 이렇게 미래 커리어를 고민하고 갈망하고 초조해하다 죽겠다는 걸.


이렇듯 직업은 인간에게 단순한 경제적 이윤뿐만이 아닌, 본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무언가이다. 단순히 돈을 벌고 싶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만 우리 모두는 내가 배웠던 걸 활용하고 싶고 이 직업에서 뭔가를 배우고 발전하고 싶고 그럼으로써 나의 가치를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처음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다. 하지만 만약 더 이상의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사회가 도례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성취감을 얻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으로 우리의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 또한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게 당연한 시대에서 살았던 우리는 어떻게 생계를 이뤄나갈 것인가. 이것들이 내가 이 글에서 얘기하고 싶은 주제들이다.


AI 혁명으로 사람들은 발전의 기쁨에 취해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워한다. 이 새로운 혁명이 나의 일자리를 보조해 내 생산성을 더 높여주기도 하지만 결국에 직업을 뺏기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가 칭송하는 판사와 의사와 각종 사짜 직업들의 업무도 AI가 더 잘 해내기 때문이다. 더 높은 정확도와 엄청난 시간 단축으로 막대한 생산성을 보이는 AI에게 어떤 개인이 이길 수 있겠는가. 물론 인간이 더 잘하는 영역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심리학, 서비스업 등의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직업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AI는 이미 그렇게 사용되고 있다. 자연어 처리와 감성 분석의 등장으로 chat GPT와 같은 인간의 요구를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델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더 성장할 것이다. 우리가 주는 모든 데이터가 그들의 성장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영역의 그림과 음악도 이미 AI가 잘 해내고 있는 걸 우린 알고 있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아질 것이고 인간보다 월등히 빠르고 정확하게 높은 수준의 업무들을 처리할 것이다. 그대로인 거는 AI를 향한 우리의 거부감일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보다 기계는 빨리 발전한다.


이 책에서 말하듯이 기술적 실업은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직군마다 다른 속도로 하지만 확실하게 결국에는 대부분이 직업을 잃을 것이다. 로봇이 인간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낮은 불확실성과 높은 생산력으로 자본가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 대다수가 직업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어디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국가에서 단순히 인간의 행복과 성취감을 위해 로봇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우리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줄까? 혹은 학생들과 비슷하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인 코스를 제공해 줄까? 우린 그걸로 충분할까? 이 모든 것이 의문이고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거는 우리가 취미로 하고 있는 것들이 직업을 잃었을 때의 우리를 받쳐줄 안전망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전문인보다 훨씬 떨어지지만 단순히 재미로 취미를 즐긴다. 미래에 이 전문가는 로봇이 될 것이다. 우리는 로봇보다 대부분의 것들을 못하겠지만 그래도 성취를 얻기 위해 취미를 즐길 것이고 국가는 국민들이 체계적으로 삶을 살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고 국가에 충성할 수 있도록 복지 정책을 구성할 것이다. 무기력한 사람들이 가득할 때 국가가 얻을 수 있는 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주장하는 국가가 분배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노동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기에 자본가와 노동자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고, 노동을 잃어버린 노동자가 벌어들일 수익은 더욱 적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와 같은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다. 정말 잘 풀리면 자본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앞으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내 직업에 조의를 표하고 새로 생성된 직업에 들어가기 위해 배워본 적 없는 것들을 고통에 비명 지르며 늙어가는 두뇌로 여러 번 배워야 할 것이다. 격변기에 두려워하며 덜덜 떠는 노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어떤 정당을 선택해야 하는지 거듭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정말 섬세하게 나와 같은 노동자를 생각해 준다면, 정말 관심 있는 취미 생활을 즐기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사회의 쓴맛에 절여진 성인으로서 후자는 그다지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듯 개인이 시도할 수 있는 탈출구는 많지 않기에 희망의 끈은 짧아 보이지만, 혹시나 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에 적응하다 보면 늙은 육신을 버리고 눈 감는 날 의외로 좋은 삶이었다고 회고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