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부터 새로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교무 기획’이라는 업무를 맡게 됐다. 교무부는 학교의 업무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학사 일정을 짜고, 시험지를 검수, 관리하는 등 큰 틀에서 학교 운영 전반을 기획하는 부서다. 보통 5명에서 6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그 중 리더 격인 부장이 있고, 그 리더를 옆에서 보필하며 주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이 기획이다.
그러니까 교무기획이라는 자리는 학교에서 부원들의 업무 중에서 가장 중요도가 높고 또 무게감이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전에 다른 부서에서 기획 업무를 해보긴 했지만,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교무기획으로 일하는 것은 처음이라 꽤 부담이 된다.
이 교무기획 자리를 맡게 된 것은 순전히 내 희망이었다. 교사들은 연말에 다음 해에 맡고 싶은 학년과 업무를 적어 제출하는데, 나는 교무부를 포함한 여러 부서의 기획으로 지원했다.
교무기획이 힘들 것이란 점은 알고 있었지만, 지원한 이유는 담임은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직에 발을 들인지 10년이 넘어 가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을 담임으로 보냈다. 그나마 규모가 큰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해서 이 정도에 그친 것이지, 중학교, 나아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담임을 피하기가 훨씬 어렵다. 대체로 담임은 비선호되는 직무다. 월급을 20만원 더 얹어줘도 싫다고들 한다.
담임으로 한 반을 맡아 아이들과 정을 나누고 잘 키워 보내는 일은 분명 보람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게는 담임은 마치 시한 폭탄을 안고 사는 것처럼 늘 불안한 일이었다.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던 반에 전따(전교 왕따)를 당했던 학생이 있었다. 전년도부터 암암리에 따돌림을 당하던 학생은 내가 담임을 맡은 해에 상황이 더 나빠졌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됬다. 몇 년 후,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와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이 사건에서 나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었지만, 큰 정신적인 충격을 겪었다. 위기에 빠진 학생을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다. 그 후 책을 읽고 모임에 나가고 연수를 들으며, 학급에서의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 갔다. 교사로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보듬고 마음을 돌보려 애썼다.
그러던 중, 한 해는 가정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을 우리 반에서 만났다.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을 어르고 달래 학교에 오도록 했고, 여러 학교폭력 사건에 늘 휘말려 있던 아이라 오래 기간 상담을 이어 갔다. 늘 심신이 불안했던 아이는 결국 어느 날 스스로를 크게 다치게하는 사고를 냈고, 이 후 꽤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이 두사건에서 아무도 나를 고소하거나, 징계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이 고소를 당하기는 했다.) 하지만, 선의를 가지고 적극적인 개입했던 나의 교육적 활동이, 교육부에서 세세하게 써내려간 지침과는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누군가 절차적인 문제를 이유로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행복감이 전반적으로 낮은 우리 나라 사회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특히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 놓인 학교 현장은 늘 긴장 상태에 가깝다. 내 마음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하루들 속에서, 학급의 서른 명 아이들과 그 아이들 뒤에 있는 서른 가정의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담임을 내려놓고 싶다. 기획이나 부장으로 일하면서 업무가 과중에 방학에 출근하고 야근을 하는 일이 잦더라도, 담임으로서 학생과 학부모를 대하는 감정적인 부담을 내려놓고 싶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고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