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면 좋겠어요.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의 저자 밀라논나는 화에 대한 짧은 고찰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들끓는 우리 사회가 점차 분노 사회가 되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하는 말이다. 그녀는 분노에 휩싸일 때 자신의 평정심을 되찾는 방법을 아는 것이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점점 분노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데에는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람들은 마치 사냥꾼처럼 화를 풀 대상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늘 화를 이고 지고 다니다가 가게 점원에게, 수화기 너머의 상담원에게 쌓아둔 감정을 한껏 쏟아내고 돌아서면, 그 화를 받아낸 사람은 또 다른 분노를 마음에 얹고 살아간다. 화가 화를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사회다.
밀라논나는 우울이든 분노든 자기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쯤은 꼭 찾으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상황과 처지에 맞는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 기초 체력을 쌓아야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문제를 마주할 에너지가 생긴다고 말한다(103쪽). 감정을 관리하는 힘이 결국 삶을 버텨내는 힘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면 좋겠다(127쪽)'는 밀라논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감정을 다루는 힘은 한 번 익혀두면 평생을 버티게 하는 기술이 된다. 나 역시 교사 생활을 시작한 뒤에야, 학생들을 돕기 위해서, 또 때로는 나 자신의 어려움을 넘기기 위해서 심리와 상담을 실천적인 방식으로 배우게 되었다. 그중 어떤 것들은 그 시절의 나를 지탱해 주었고, 어떤 것들은 지금까지도 관계를 유지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 감정을 관찰하고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이라는 말로 듣게 될 때면, 솔직히 마음이 먼저 경계부터 하게 된다. 정해진 교육과정과 쏟아지는 업무만으로도 이미 벅찬데, 또 무엇을 더 하라는 말처럼 들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를 탓하는 목소리 앞에서, 나는 종종 방어적인 마음이 되곤 했다.
게다가 감정이나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은 눈에 보이는 성취로 측정되기 어렵다. 과연 학생과 학부모들이 그런 교육을 교육의 핵심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건강한 몸과 마음, 친구들과 잘 지내는 방법은 초등 저학년까지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실에서는 점점 성적과 결과가 중심이 된다. 아이들 역시 미디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를 빠르게 흡수하며, 공동체나 균형, 행복 같은 가치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이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말처럼 느끼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그런데 글을 읽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학교는 꼭 정해진 것만 가르치는 공간일까. 교육과정에 적힌 내용만 전달하는 곳일까. 교실에는 생각보다 많은 여지가 있었다.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질문으로 남기고,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눌지에 따라 교실의 공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아침 조회 시간에 어떤 말을 건넬지, 수업 지문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선택할지, 어떤 영화를 함께 볼지 결정하는 순간마다 교사는 이미 하나의 가치를 선택하고 있다. 갈등을 겪는 아이에게 어떤 조언을 건낼지, 상처받은 아이 앞에서 어떤 말로 침묵을 채울지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한 ‘감정 수업’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교실은 늘 감정을 다루는 태도를 배우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학교는 정해진 것만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교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끼워 넣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감정을 다루는 교육은 그래서 더 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자리에서 무엇을 선택할지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감정 교육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분노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 그리고 교실 안에서 매일 선택을 해야 하는 교사에게도 필요한 배움이다.
그래서 이제 이렇게 생각해 보려 한다. 학교는 정해진 것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교사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역할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