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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영 Nov 04. 2022

티켓

    얼마 전, 자동차 등록 날짜가 지난 걸 모르고 무심히 운전하다가 경찰에게 잡혔다. 지나가는 차를 무작위로 골라 컴퓨터로 찍어 본다고 하는데 내가 운 나쁘게(경찰로서는 운이 좋게) 걸려들었다. 뒷 창에 갑자기 번쩍거리는 경찰차를 보고 설마 내 차는 아니겠지, 싶어 두리번거리며 보니 주위에 달리는 차라고는 나밖에 없다. 학교가 있어 15마일 존(대략 24km 구간)인 것을 알기에 각별히 조심해서 20(약 32km)마일 이상은 운전을 안 하는 길인데 나 모르는 사이 속도를 놓았나 덜컥하여 도로 옆에 차를 세웠다. 

 다가온 경찰은 내 차의 등록 날짜가 지났다고 하며 보험증서와 운전면허증을 내라고 한다. 운전면허증은 지갑 안에 있는데 보험 증서가 없다. 본 기억도 없다. 경찰은 차로 돌아가 30분 이상 뭔가를 열심히 두드리더니 티켓 한 뭉치를 들고 와 내게 주고는 차에서 내리라고 한다. 티켓을 줄 것은 알았지만 차에서 내리라니…! 이 보험 없는 차는 견인차에 실려가야 한다며 이미 견인차를 불렀단다.


"노우. 난 집에 가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


울상을 하는 내게 누가 와서 너를 픽업해달라고 하란다. 아무도 없다니까 집이 어디냐고 묻더니 멀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핸들을 붙잡고 앉아서 안 내리겠다고 뻗쳐서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방금 잔칫집에서 산 음식 보따리들을 주섬주섬 챙기는 나를 보며 중요한 물건 있으면 잊지 말고 챙기라고 선심을 쓰듯 말한다. 이 냄새 나는 보따리들을 가지고 경찰차를 타고 가느니 십리 길이라도 걸어가는 게 낫다. 


마침 남편에게 연락이 되어 픽업하러 오겠다고 하여 도로 옆에 서서 경찰이 쥐여준 서류 뭉치들을 살펴보니 법원 출두서와 벌금 티켓과 처음 보는 종이 쪽지가 몇 개나 된다. 그새 견인 트럭에 실리는 차는 어쩐지 불쌍한 것이, 주인 잘못 만나 유배 길 떠나는 피붙이같이 가엾고 처량해 보인다. 그렇게 느닷없이 차는 끌려가고 경찰은 손을 흔들며 그때까지 번쩍이던 깜빡이를 끄고(범인 잡는 일을 충분히 완료했음을 고하는) 나는 반찬 보따리를 들고 가로수 뒤에 서서 숨듯이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혹시 지나가는 차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남편이 나를 기다렸다가 데리러 올 일도 아니어서 주위는 점점 어두워지는데 그 처량함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다음날은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 자동차국)에 가서 등록증을 바꾸고 보험증서를 받은 후 파출소에 가서 허가서를 받아, 그곳에서 알려주는 견인 센터에 가서 견인비 190달러를 내고 차를 찾았는데 온종일이 걸렸다. 뻔히 눈 뜨고 생돈 갈취당한 것 같아 분하기도 하지만 길가에서 강도를 만나 한 대 얻어맞고 돈을 뺏긴 것보다 낫지 않은가…, 애써 마음을 달래본다. 그래도 하루 만에 다 해결된 것이 다행이라고 마음을 돌린 것은 딴 도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험담을 듣던 친구 하나가 자신의 자동차 등록 갱신 날짜가 닷새밖에 안 남았는데 깜빡했다고 비명을 지른다. 아직 법원에 정해진 날짜에 출두해야 하고 내야 할 벌금이 남아있지만, 친구에게 일깨움을 줄 수 있어 좋았다고 위로 삼으면 그렇게 황당하고 나쁘기만 한 경험은 아니었다고 자위해 본다. 어쨌든 법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며 억울해할 일은 아닐 것이므로…. 정신없이, 말 그대로 정신 놓고 살지 말라는 경고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큰길, 골목길 할 것 없이 깜빡이를 번쩍이며 차를 잡는 경찰차들이 부쩍 눈에 띈다. 되도록, 아니 절대로 경찰차에 붙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선 금전적인 손해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벌금 내는 일이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내 차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이 살아야 할 것이다. 꼭 일을 당해봐야만 깨달음이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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