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샌더스(Kerry Sanders)는 가벼운 조현병 증상을 가진 젊은 흑인이다. 가끔 가족들의 눈을 벗어나 LA의 어느 동네 따뜻한 햇살 아래 벤치에서 자기도 하지만 그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간호사인 어머니, 누나와 대학교수가 된 형도 있는 가정의 막내다. 이따금 증세가 나타나면 약을 먹고 쉬면서 손재주가 좋아 목수 일도 하면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로버트 샌더스(Robert Sanders)는 마약을 거래하다 붙잡혀 뉴욕 브롱스의 유치장에 갇힌 전과자다. 케리 센더스와 성이 같고 우연히 생년월일이 같다는 공통점을 빼고는 두 사람의 삶은 전혀 달랐다. 어느 날 이 로버트는 어떤 경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탈출에 성공한다.
때마침 LA 어느 공원의 벤치에 앉아 따뜻한 햇살에 깜박 잠이 든 케리가 경찰의 검문을 받게 된다. 케리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대조해보던 경찰은 뉴욕의 브롱스 유치장을 탈출한 로버트의 생년월일과 성이 똑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약을 먹을 수 없어 조금씩 조현병 상태에 빠져드는 케리를 경찰은 마약에 취한 탈출범 로버트로 단정한다.
두 사람은 생긴 것도 전혀 다르고 손가락 지문도 당연히 다르다. 그런데 어쨌든 LA의 케리 샌더스는 탈출범 로버트 샌더스로 둔갑하여 뉴욕으로 압송되어 그린 해븐 교도소(Green Haven Correctional Facility)에 수감된다. 그리고 오락가락하는 조현병으로 인하여 감옥 안의 정신과 유닛에 있게 되었다. 때로 정신이 들면 자신을 로버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로버트가 아니고 케리라고 항변하며 LA의 가족들과 살아온 배경, 목수 일 등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의 모든 이야기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로버트 샌더스의 기록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귀담아듣지 않았다.
케리는 그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들, 같은 죄수나 간수들 혹은 의사나 간호사에게 줄곧 자신이 왜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를 물었다. 마약 판매나 다른 범죄에 대한 설명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그 자신이 정말 케리가 아니고 로버트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범죄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2년 후에 진짜 로버트가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다가 잡혔다. 케리는 진짜 로버트가 또 다른 범죄로 구속되면서 슬그머니 집으로 보내지게 되었는데 이 황당한 사실을 발견한 조사관이 말했다.
조사관: 너는 로버트가 아니고 케리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로버트라고 주장했는가?
케리: 나는 로버트가 분명한데 왜 또 나를 케리라고 부르는가?
조사관: 왜 그동안 여기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하나?
케리: 공원 벤치에서 잤기 때문이다.
조사관: 그 이외에 네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모두 말해 보아라.
케리: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동안 생각해보니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애리조나에 살 때 심심해서 이웃집 벽에 물총을 쏜 적이 있다.
조사관: 더 나쁜 짓은 없었나?
케리: (머뭇거리며) 자위를 했다.
조사관: 그게 다인가?
케리: 내가 생각이 잘 안 나는 병이 있다. 그런데 경찰이 말하기를 내가 마약을 파는 범죄자라고 했다.
케리는 정신병자 감옥에 있으면서 정신과 의사의 정기검진을 받으며 처방약을 먹고 상담사의 지도를 받았다.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료기록은 이랬다.
정신과 의사: 그는 자신을 딴 사람으로 생각하는 특이한 몽상 증세가 있다.
심리 상담사: 그는 그가 지은 범죄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상실증과 몽상을 오가고 있다.
사회복지사 : 정신 상태가 혼란함(Confusion). 자신을 딴 사람으로 생각함.
모든 정신과 계통의 전문인들의 견해로 볼 때 조현 상태에서는 “doing well(잘 지냄)”, 정상 상태에서는
“fantasy(몽상)”의 상태로 기록되었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틀리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한 조현병 환자를 진단하는 의무만 있었을 뿐, 이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는 업무는 그들의 소관은 아니었던 것이다. 천사의 눈에는 모든 상대가 다 천사로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상대가 다 돼지로 보인다는 속담이 여기에 맞는 말일까…?
이는 “케리, 샌더스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크게 신문에 났었던 이야기다. 이 기사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영원한 미궁”이라고 끝을 맺었다. 처음에는 읽으면서 웃었는데 점점 슬퍼지더니 가슴이 저리도록 그가 불쌍했다. 그것은 나이 탓인지도 모르지만, 평생토록 확실했던 신념도 누군가가 강력하게 '그게 아니다'라고 하면 '정말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힘없이 넘어가는 나 자신을 생각해 보게 되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애타게 찾던 아들과 동생을 찾은 가족들이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사진은 “모든 사람에게서 제외된 자, 아무것도 아닌 자”로 설명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서 제외된 자, 아무것도 아닌 자라도 좋을 것이 아닌가. 하나님 안에서 제외되지 않은 자, 제외할 수 없는 자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