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정여립의 역모 사건에 대한 학설이 분분하다. 당시 서인의 참모 격으로 활약했던 노비 출신인 송익필(宋翼弼)이 자신과 그의 친족 70여 인을 다시 노비로 전락시키려는 동인 이발·백유양 등에게 복수하기 위해 조작했다는 설이 있다. 또 당시 위관(委官)이었던 정철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설도 있으며, 이이(李珥)가 죽은 뒤 열세에 몰린 서인이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날조한 사건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전제군주정치 아래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정여립의 주장이 역모 사건을 발생시킨 요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정여립의 역모에 관한 정설은 없다.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이런 속담처럼 역모의 진원지는 다른 사람 아닌 정여립이다. 이런 생각에서 학자들은 그의 평소 행동이나 사상을 정리하고 있다.
정여립의 역모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그가 남긴 문자들을 지목한다.
먼저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을 든다.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 하는 주장이다. 다음으로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을 든다. ‘누구를 섬기든 임금이 아니겠는가?’ 하는 주장이다. 이 중에서도 맹자가 성지화자(聖之和者)라고 칭찬한 유하혜(柳下惠)의 말을 인용한 ‘하사비군’이라는 말은 혁명적인 발언이라고 말한다. 신채호(申采浩)는 정여립의 이런 주장에 대하여 ‘400년 전에 군신강상론(君臣綱常論)을 타파하려 한 것이니 그가 혁명성을 지닌 사상가라는 점은 분명하다.’라고 지적한다.
또 하나는 ‘충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한 것은 왕촉(王蠾)이 죽을 때 일시적으로 한 말이고, 성인의 통론은 아니라’라는 것이다.
정여립의 역모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그가 이용한 참언을 지목한다.
‘목자(李)는 망하고 전읍(鄭)은 흥한다.’에서 ‘전읍’은 ‘정여립 자기를 가리킨다.’라는 낭설을 퍼뜨렸다. 왕조의 운수가 다해 천명이 타성에 내려 새 왕조의 출현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반역으로 간주하기에 충분하다.
또 다른 근거로 그의 집에서 압수된 <제천문(祭天文)>을 지목한다.
<제천문(祭天文)>에는 선조의 실덕을 열거하여 조선왕조의 운수가 다했음을 논하기도 하고, 천명의 조속한 이행을 기도한 흉참(凶慘, 흉악하고 참혹하다)한 문구가 있었다. 선조 밑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하여 혁명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이이 문하에 드나드는 선비들은 오직 서인뿐이었고 동인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관하여 정여립은 스승 이이에게 항의성 발언을 했다.
여립, “서인만이 이 나라 사대부입니까?”
이이, “동인들은 늘 반대만 하거든.”
여립, “그래도 그렇지, 동인에도 반드시 인물이 있을 텐데 무조건 백안시하는 건 좋지 않은데요?”
이이, “뭐야?”
여립,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지 동인, 서인 나뉘었다고 일부 선비들이 그들을 짐승 취급할 것까지는 없잖습니까?”
이이,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나?”
정여립은 동인이건 서인이건 가리지 않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려 한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동인을 무조건 백안시하는 스승 이이에 대하여 크게 실망하고 있다. ‘짐승 취급할 것까지는 없잖습니까?’라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동인들은 늘 반대만 하거든.’ 하는 이이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내가 교장으로 근무할 때 정년을 앞둔 선생님 한 분이 트집을 잡았다. ‘월급을 받지 않으면 여기에 있을 수 없다.’라는 말에 대하여 ‘자존심을 건드렸다’라고 주장했다. 정년을 3년 앞둔 나로서는 반론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참아야 했었다. 정말 난감했다. 그 이듬해 20여 년 동안 교직을 떠났다가 돌아온 여자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도 교무회의 중에 한 말에 대하여 항의를 했다. 본인이 직접 항의하지 않고 아이들을 시켜서 그랬다. 시험을 볼 때 부정행위를 하지 않도록 단속하라는 말이었는데, 그 사실을 학생들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고 알았다. 항의를 받았을 때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늘 반대만 하거든.’ 하는 이이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정여립의 사상과 신념은 오늘날 대한민국 국가 체제에서는 상당히 정의롭다. 그의 재능도 문무 양면에서 출중했다. 이런 그가 4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심히도 아깝다.
정여립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생각한다. 그 하나는 정여립의 재능을 살려 쓰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정여립처럼 재능이 뛰어난 자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로 양성하는 일이다. 이 중 정여립을 인재로 양성하는 교육의 시발점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서 보듯 ‘수신(修身)’이다.
‘수신(修身)’은 오늘날의 인성교육에 해당된다. 지식교육과 함께 인성교육은 학교 교육이 굴러가게 하는 수레의 두 바퀴다. 그런데 인성교육은 지식교육과 달리 말이나 혀로만 하는 교육이 아니다. 행동으로 하는 교육이고 삶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이다. 인성교육은 젖먹이 시기부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 사이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어쨌든 정여립의 사상과 신념은 가히 혁명적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과유불급이다. 조금은 참아야 한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참아야 하고, 나라를 위해서도 참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