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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Dec 08. 2022

그것이 우리의 마음까지는 압도하지 않았다

2002년 루사



2002년 루사


태풍 루사는 1904년 기상관측
 시작 이래 가장 많은 일 강우량(강릉 870.5mm)을 기록했다. 피해규모는 124명이 사망하고 60명이 실종됐으며 , 2만 7619세대 8만 862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 건물 1만 7046동과 농경지 17만 3261ha가 물에 잠기고 , 생활기반 시설이 붕괴되거나 마비되어 2006년 환산 가격 기준으로 총 5조 1497억 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유년기와 학창 시절 전부를 강원도 강릉에서 지낸 토박이다.

2002년 8월 그날 , 비가 억수같이 내리긴 했다.

이때쯤 우리 가족은 산을 깎아 지대가 높게 조성되어  물의 흐름이 다른 동네보다 비교적 좋았던 교동택지의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억수 같았던 비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까마득하게  알지 못하고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중,

 "태풍 루사로 전체 강의휴강하겠습니다."

라는 내용의 문자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상황의 심각함을 알리 없었기에 ,

 휴강 소식에 뭘 하면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한가하게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옆 단지에 살고 있는 동네 친구 민자에게 전화가 온다. 그녀의 목소리는 뭔가 다급한 듯했다.


"야, 향쓰네 집에 난리 났잖아."


"왜, 무슨?"


"나참, 니 모르나? 강릉시내가 난리 난 거? 아휴"


"그래? 뭔  난리가 났나?"

그녀는 자꾸만 나에게 답답함을 뾰족하게  토로한다.


"야, 비가 와서 물바다가 됐다니 . 향쓰네 집이 물에 잠겼다니!  "

 (대화글이 다소 매끄럽지 못함은 강원도 토박이들의  자연스러운 사투리 대화를 최대한 살려 보고자 하는 의도로  양해를 구합니다)


"그래? 어테하나 , 많이 잠겼나"


"향쓰 울고 불고 난리가 났잖아"

향쓰가 울고 있다니 심각하다. 향쓰는 평소 참으로 소탈한 성격이며 감정이 여간해서 격해지는 법이 없는 친구기 때문이다.


"내일 애들이랑 향쓰네 집 복구하는 거 도와주러 갈 건데 니도 갈 거지?"






향쓰 집은 병산동. 우리 집 기준으로  끝과 끝에 위치해 있. 때문에 버스를 타고 움직일 엄두가 선뜻 안 났지만, 안 간다입을 뻥끗했다가는. 민자의 폭풍 같은 잔소리가 쏟아질 것이 소름 끼치게 두렵고 겁이 났다.

 그래서 떨떠름 한 마음은 몰래 접어둔 채로 함께 하기로 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광경들은 너무 처참했다. 강릉시내 도로의 아스팔트 바닥은 찾아보기 힘들게 진흙으로 덮여있었다.

심각한 상황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향쓰 집 도착.

동네는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1층 주택인 향 쓰네 집 또한 피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현관문턱부터 천장 끝까지 물이 들어왔다가 , 언제 그랬냐는 듯 밀려 나갔을 흔적이 또렷하고 역력하게 보인다.

그 순간 , 그 집을 뒤로하고 무기력하게  돌아서야만 했을 그녀의 가족이 떠올랐다. 눈이 그렁그렁 해졌지만 땀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닦아냈다.

그건 지금 그 친구에게 어울리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자, 향쓰, 쎄리, 쑥 탱이, 어리버, 쩡 , 씨 모두 일곱이다.


고작 20살 풋내기 들이 무얼 복구하러 모인 것인지  내심 의심스럽긴 했지만 .그 와중에  누군가의 지휘 아래,

참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함께 진흙들을 털어내고 이불과 옷가지들을 빨아냈다.

맑은 물이 흙탕물이 되고 그 흙탕물이 다시 맑아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 감사했다. 늘 그렇듯 말은 안 했지만  그날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을 안다.


 그 후로 한 번 더 가서 보일러실과  집안 곳곳을  제법 뽀얘지도록 닦아냈던 기억이 있다.

향쓰네 전신 거울을 닦았다.

그 안으로  따뜻하게 변하고 있는 집과 정말이지 열심히 쓸고 닦고 있던  예쁜 그녀들이 비춰 보인다.


한 달쯤 지났을까 , 요리 솜씨 좋기로 유명한 향쓰 엄마께서 우리를 점심식사에 초대해주셨다.

상다리가 휘어져 나갈 정도로 참말 맛있는 음식들을 과분할 만큼  차려주셨고, 이내 고맙다 지긋이 웃어 보이셨다.

우리는 몹시 격하게 수저를 움직이고  이따금씩 조신해 보이기 위해서였나, 꼭꼭 씹어 밥을 먹었다.


2002년 태풍 루사역대급으로

나와 몹시 가까운 곳곳을 할퀴며 큰 피해를 남겼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의 마음까지는 압도하지 않았다. 참말로 고운 마음을 가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곳과 저곳에 정말이지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 함께 작업했던  군인들, 학생들, 봉사자들의 구슬땀이  눈에 선하다.


갑자기 향쓰 어머니가 차려주셨던 밥이 다시 먹고 싶어 진다.

우리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자랄 수 있도록,   애써 키워내주셨을 엄마들이 보고 싶다. 그녀의 엄마들이 내내 행복하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이글에 나오는 친구들 이름은 모두 실제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부르는 필명이며, 각색 없이 그대로 쓰였습니다.)




(사진. 이미지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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