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mena Jan 19. 2023

"그 어떤 인간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스웨덴 사람들이 갈등을 다루는 방법

스웨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기로 유명하다. 버스나 트램을 탈 때 스웨덴 친구들이 "야 트램이 완전 붐비는데" 라고 하면 십중 팔구 그냥 앉을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은 두 개의 나란히 붙은 자리 중 둘 다 빈 좌석이 없다는 뜻이다. 스웨덴에서는, 특히 흔들림이 적은 트램에서는 웬만해서는 모르는 사람의 옆자리에 앉지 않는다(!). 나름 인구가 백만은 되는 도시고, 혼잡할 때에는 꽤나 혼잡할 수 있는 곳인데도 그렇다. 대중교통이나 몰이 아무리 붐벼도 다른 사람의 몸을 밀치거나, 붙들거나 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사람은 물론이고, 모르는 강아지를 함부로 만지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혹여 자연스레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개와 견주에게 가까이 가면 개가 피해를 줄까봐 줄을 더 당겨 잡는 견주를 보게 된다. 


그런데 스웨덴 사람들이 싫어하는 '부딪친다'는 행위는 어깨를 부딪치는 등의 물리적 충돌 뿐만 아니라, 서로 의견이 달라 논쟁을 하게 되는 경우도 포함한다. 스웨덴 사람들은 평화롭고 조용하기로 유명하다. 차갑고 거리감이 있다는 인식도 있는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어느 정도는 '스칸디나비아' 문화 전반에 대한 일종의 편견인것 같다. 내 생각에 스웨덴 사람들은 차갑다기보다는, 마음을 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데 극단적으로 조심스럽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뭔가 실수를 했을 때, 독일 사람들이나 네덜란드 사람들이 그 실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고치도록 도와주거나 혹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면, 스웨덴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보행자가 자전거 도로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암스테르담 사람들이라면 자전거 속도를 줄이지 않고 벨을 울리며 '자전거 도로에서 나가!' 라고 크게 외친다. 스웨덴에서는 타인에게 소리를 지르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저 자전거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충분히 가까워진 후 아주 조심스럽게 보행자를 추월해서 지나간다. 농담삼아 스웨덴에서 자동차 경적과 자전거 벨이 쓰이긴 하냐고 이야기할 정도다. 




이런 갈등을 피하는 성향은 학교나 회사 등의 사회적인 상황에서도 드러난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다를 때, 스웨덴 사람들은 최대한 화자 자체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의견에조차도 부분적인 동의를 표한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이라든가, 당신의 관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등의 부드러운 쿠션으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스웨덴의 학교에는 이러한 논쟁을 배우는 수업이 있다. 내가 수강중인 외국인으로서 배우는 스웨덴어 과정에도 이러한 '부드러운' 논쟁의 기술이 중요한 부분으로서 포함되어 있다. 주장의 근거가 탄탄해야 하고, 논리적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등의 일반적인 내용 외에, 타인을 인신공격해서는 안되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어휘를 쓰지 않도록 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을 할 때에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배운다. 따라서 스웨덴 사람들은 그냥 눈칫밥으로 사회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분명하게 어느 정도의 발언이 괜찮고, 어떤 발언은 용인되지 않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이 외에 비언어적인 행동 역시 논쟁의 언어만큼이나 정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타인에게 삿대질을 한다든가, 어이없는 상황에서 눈을 굴리는 행동은 많은 문화권에서 이미 무례한 것으로 간주되겠지만, 스웨덴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중남미에 살 때, 회사 사무실에서 부하 직원을 향해 언성을 높이는 것은 폭력으로 간주될 수 있고,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들의 활달한 성향과 높은 목청을 생각했을 때 다소 의외이기도 했으나, 억압적인 근무 환경 형성을 막기 위한 장치임을 알고나니 그 구분이 이해됐다. 스웨덴에서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스웨덴 사회에서 인간이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곳은 딱 두군데다. 중학교, 그리고 축구 경기장. 껄렁하게 담배를 물고 길을 지나는 십대 남학생들조차도  좁은 길에서 앞에 사람이 오면 목소리를 줄이고 길을 비켜준다. (물론 이곳에도 무례한 비행 청소년들이 있다!) 축구 경기 중 자신의 팀을 응원하며 목청이 터져라 바이킹 조상님의 영혼을 끌어다가 소리를 지르고 나서 스타디움을 벗어날 때는 다시 얌전한 문명인으로 돌아온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사회는 토론을 중시한다. 이들이 갈등을 싫어한다는 것은 타인과 싸우고,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지, 원하지 않는 상황을 무조건 참고 넘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가 침해받는다고 느끼면 이를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가 얼만큼의 돈을 낼 것인지, 아니면 언제 얼만큼이나 휴가를 갈 것인지, 어떤 날짜에 회의를 잡을 것인지 등에 대해 즉각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갈등을 이토록 싫어하는 이들이 어떻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걸까? 


스웨덴에는 yttrandefrihet라는 원칙이 있다. 발언의 자유 (Freedom of speech) 정도에 해당하는 표현인데, 모든 사람이 검열 없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로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라는 언급이 뒤따른다. 언론의 자유, 개인 발언의 자유 등이 이에 포함된다. 급진적인거나, 때로는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발언 역시 이 권리 안에 포함된다. 어디까지가 발언의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증오 발언 (Hate speech) 인지에 관해서는 언제나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스웨덴에서 사람들이 '하지 못할' 발언은 거의 없다. 물론 이 권리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발언을 아무렇게나 하는 문화를 형성하기 위함이 아님은 분명하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듯, 다른 사람들이 그 발언을 경청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그 의견이 담고 있는 의제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는 뜻 역시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오트밀 우유 등의 대체유가 없어서 비건인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다면, 누군가가 이를 안건으로 제시할 수 있다. 이 발언은 그냥 동물성 우유가 아닌 옵션을 추가해달라는 요구일 수도 있고, 동물성 식자재 소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을 수도 있고, 개인의 선택의 자유에 대한 사상적 논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귀리, 아몬드, 감자 우유 등의 옵션이 구비되는지보다는, 이 의견의 근거가 무엇이고, 당위성과 실현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이 안건을 받아들일 것인지이다. 어떤 이유로 이 안건이 통과되지 않는다 해도 그 안건을 제기한 사람이 미움받거나, 혹은 다음 논의에서 제외될 필요도 없다. 또한 자신의 요구가 들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앙심을 품고 결정권자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 결정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얼마든지 다시 안건을 제기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에 동조하거나 혹은 반대할 권리가 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사상과 가치관이 다르고, 성장 배경과 이해관계가 달라 그 어떤 사회 조직에서도 통일된 완벽한 의제란 존재할 수 없다. 그건 아마도 독재국가의 환상일 것이다. 수준 높은 민주주의가 정치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적용되어 사회 발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스웨덴에서의 의사 결정과 논쟁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인 것이다. 갈등을 피하되, 이를 평화로운 논쟁으로 이끌 것.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공격적으로 나서서라도 이를 해결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믿었던 뜨거운 20대를 지나, 다소 미온적이더라도 상호 존중에 기반을 둔 평화로운 해결을 중시하는 스웨덴에서 30대를 살면서 사람은 변하고, 또 절대 불변의 진리가 없다는 걸 느낀다. 어떤 방식이 옳은지, 무엇이 더 나은 해결책인지는 그 사회와 구성원들의 명시적/암묵적 합의에 따라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논의에 참여한 어떤 인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라는 안내 문구가 지켜지는 것이리라. 







(대표 이미지 출처: freepik)

작가의 이전글 스웨덴의 잠 못 이루는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