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아니면 미국 이야기냐고요?
우리는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이라고 알고 자라왔다. 하지만 멀게는 세기말, 가깝게는 최근 몇년간 연예계를 중심으로 터진 여러 스캔들을 통해 우리가 모를 뿐 서울 한복판에도 마약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우리는 흰 가루나 주사기를 봐도 별 생각이 들지 않는 삶을 살아왔고, 바라건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관련된 사건이 드물다고 해서 관련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둘러쳐진 폴리스 라인 주위를 둘러싼 검은색 혹은 남색 옷을 입은 경관들과 수많은 구경꾼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경광등을 번쩍거리고 서있는 경찰차. 미드, 특히 수사물을 좀 본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이다. 장면을 바꾸어 스웨덴으로 오면, 이곳의 폴리스 라인은 흰색과 파란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완벽에 가까운 복지 시스템이 자리잡은 나머지 지루하기까지 한 천국이라고 상상한다. 이곳에 태어나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에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세상에 천국은 없다. 안정적이고 평화롭기만 해 보이는 스웨덴 역시 마찬가지다. 파랗고 하얀 폴리스 라인이 둘러쳐지는 일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일례로 작년 여름, 예테보리 시내에서 멀지 않은 주거 지역에서 경찰관이 젊은 마약상 그룹간의 분쟁 과정에서 총격에 사망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스웨덴 전역을 충격에 몰아넣었고, 마약과 갱단, 그리고 총기가 사용된 범죄에 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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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선거철, 스웨덴 정치권을 가장 뜨겁게 달군 테마는 단언컨대 이민과 범죄율이었다. 스웨덴에 거주하는 사람 중 약 20%가 외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출신이다 (출처: 스웨덴 통계청 2022 자료). 물론 이중에는 한 쪽 혹은 양쪽이 스웨덴 부모님인 경우도 있지만, 2000년대 이후로 급증한 이민자 수의 경과를 보면 대부분의 유입은 주로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의 불안정한 정세로 인한 이민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스웨덴에서 '이민자'라고 하면 많은 수가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 혹은 소말리아 출신인 어두운 피부색을 가졌고, 무슬림 비율이 높은 그룹을 떠올린다. 인근 유럽 국가 출신의 이민자와는 달리 이들은 종교, 문화, 역사적으로 스웨덴과 완전히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스웨덴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진짜' 스웨덴 사람들과 쉽게 융화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문화 차이란 단순히 밥을 먹는지 아니면 파스타를 먹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밀 대신 쌀을 재배하게 된 데에는 기후, 지리학적, 영양학적인 이유에 더해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라는 배경이 있다. 집단 노동력을 동원하는 방식과 부의 재분배, 그리고 기후와 저장 기술에 따른 다른 방향으로의 식문화 발달, 그리고 이에 따른 주류 유전자 그룹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단순해 보이는 식습관의 차이 뒤에 수많은 배경 요인과 그로 인한 문화적 결과가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 사는 많은 이민자 그룹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엄격한 무슬림이어서 그럴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냥 문화적으로 익숙하지 않아서이다. 반대로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해산물을 즐기지 않는다 (내가 사는 서해안 지방은 약간 예외이긴 하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꽤 흔한 식재료인 사슴고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은 흔치 않다. 이토록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사람들이 한 사회에 섞여 산다는 것이 쉽고 재밌기만 할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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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년간 유럽에서는 늘어나는 이민과 그에 비례하여 늘어나는 반이민 정서가 갈등을 빚어왔다. 이에 더해 2016년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며 이러한 반이민 자국우선주의의 급진화에 불을 붙였다. 최근 몇년간 프랑스에서 큰 논란이 되었던 해변에서의 히잡 착용 금지 조항, 이민자에 의해 행해진 차량 테러,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일어나는 코란 방화 등 이민과 범죄라는 두 키워드는 유럽의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어왔다. 이탈리아, 투르키예, 헝가리 등에서 극우주의 정당이 득세함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작년 스웨덴 총선에서 극우적인 뿌리를 가진 스웨덴민주당을 필두로 한 연립정당이 승리하면서 유럽 전역에 퍼진 반이민 정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교양있는' 스웨덴 사람들이 단순히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 라고 피켓 시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지야 않겠지만, 스웨덴의 반이민 정서는 기본적으로 높아지는 범죄율에 관한 불안감에서 기원한다.
여기, 한 문장이 있다.
[스웨덴에 중동 및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수가 늘면서 이에 따라 갱단, 마약과 관련된 범죄가 늘어났다.]
그리고 또 다른 문장이 있다.
[최근 10년간 스웨덴에서 총기류가 사용된 강력범죄가 늘어, 이민자 유입이 급증했다]
두 문장 모두 엄격한 검증을 거친 인과관계에 근거하지 않은 두 사건을 한데 묶은 작위적인 문장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전자는 쉽게 믿고, 후자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자가 말이 된다면, 후자 역시 말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우리나라는 전쟁 때문에 살기 안좋으니까 스웨덴에 가서 범죄를 저질러야지!' 와 '나는 범죄자인데 스웨덴에 기회가 많아보이네, 저기에 가서 범죄를 저지르자!'가 논리적으로 얼마나 다른가? 태생이 악한 사람, 그리고 범죄가 삶의 목적이자 수단인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웨덴의 이민자 그룹과 범죄율이 완전히 무관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때로 명백해보이는 인과관계가 생각처럼 단순하거나 명확하지 않을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통계란 무척 유용하지만 동시에 오용될 여지가 많은 양날의 검이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논문을 쓸 때 이마에 비석처럼 새겨야 하는 말이 있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두개의 독립적인 사건이 비슷한 트렌드를 보인다고 해서 그 둘 사이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지레짐작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계절별 양초 사용량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조량이라는 두 독립적인 사건을 연결하는 뚜렷한 원인이 존재한다. 정부지출 대비 교육 분야 투자 비율과 인적 자원 발달, 혹은 개인의 당류 섭취량과 체중의 증가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다음의 예는 어떤가. 높은 체중과 이성에게 어필하는 매력에 상관관계가 있다면? 체중이 높을 수록 이성에게 인기가 있다니, 말이 안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조사를 시행한 그룹 내에서 체중이 높을 수록 키가 크다든가,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량이 많다든가, 아니면 그 사회에서는 빈곤률이 높아 영양상태가 좋은 사람이 인기가 있다든가 하는 등의 별개로 작용하는 요소가 있다면 두 변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통계가 보여주는 경향을 보고 복잡한 사회 현상을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시 이민과 범죄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민자 증가와 강력범죄 증가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민자의 숫자와 강력범죄의 수가 아니라 보다 다양한 인종 혹은 출신지별 거주지 환경, 교육 수준, 소득 수준, 사회적 낙인, 사회 관계망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다 통제 (*다 똑같은 조건이라고 가정했을 때)했는데도 결과값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면, 그때에는 높은 범죄율이 출신 지역 자체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 자체에 집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가 행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두 그래프를 보여준다면 많은 이들은 직관적으로 둘 사이에 '명백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필터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혹은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이 논지를 강화할 지도 모른다. '지난 주에 내가 흑인/아랍인인 젊은 남자가 술에 취해서 나에게 위협적으로 말한 적이 있어!'.
여기에서 프로파일링의 유용성과 함정이 등장한다. 어떤 사람이 속한 사회적 환경이나 태생적 특징에 근거하여 이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할 / 했을 확률에 대한 일차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을 프로파일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별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밤길을 혼자 걸을때 맞은 편에 오는 사람이 나보다 체격이 작은 여성일 때와 서넛이서 몰려다니며 큰소리를 내는 술취한 젊은 남성 그룹일때 느끼는 불안감이 다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늦은 밤 혼자 택시를 탔을 때 택시 기사가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다른 사람과 음성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백미러를 힐끔댄다면, 그리고 나를 내려줄 때 우리 집 근방을 유심히 본다면 나는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나는 중남미에 살았고, 몇 건의 범죄의 직간접적인 피해자가 된 적이 있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일상 속 범죄에 관해 들었기에 단순히 타인이 예비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고 해서 이 세상 사람을 전부 신뢰하고 늦은 밤에도 마음 편히 혼자 우범지대를 돌아다닐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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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나는 석사과정에서 중미 지역의 범죄와 폭력이 이민에 미치는 영향 관해 논문을 쓰고 있다. 중미에 관해 연구한다면서 왜 스웨덴에 와서 살고 있느냐 하면, 첫번째로는 유럽에 산다는 것이 궁금했기 때문이고,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안전과 평등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곳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웨덴은 나의, 혹은 사람들의 기대만큼 안전한가 하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물론 일상적으로 강도나 강간에 대한 위협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스웨덴은 무척 안전한 나라에 속한다. 하지만 비교 대상이 어느 나라의 어떤 지역인지, 그리고 각자가 속한 사회적 상황과 배경에 따라 이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만약 내가 스웨덴에서도 우범 지대에 거주하고 밤-새벽 쉬프트를 하는 근로자라면 치안에 관한 인식이 달라질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진짜' 원인을 찾는 것이고, 사회 현상에서 그 원인이 단 하나인 경우는 단언컨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젊은 히틀러를 죽이면 그 모든 참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또다른 독재자가 나타나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차별과 인종청소를 진행했을까? 아니면 간접적이고 교묘한 방식으로의 차별주의 정책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 사회에서 어떤 사건에 관한 단 하나의 원인과 수정 가능한 오류가 있다는 것은 일종의 신화다. 인간은 서로 너무나도 다르지만 동시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어디든 범죄가 있고, 완벽하기만 한 사회는 없다. '대부분의' 인간 사회가 비슷한 문제를 겪는다고 말할 수 있다. 치안이 좋기로 소문난 한국도, 완벽한 복지국가인 스웨덴도, 관광 강국인 태국이나 멕시코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중국도 각기 나름의 문제를, 어쩌면 생각보다는 더 서로 닮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실락원'을 찾기보다는, 불완전한 현재를 고치고 다듬어 최대한 '쓸만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과학도로서의 역할이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우리 모두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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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약 서른편에 걸쳐 다양한 스웨덴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가능한 한 다채롭고 거주자 입장에서만 알 수 있는 특수한 요소를 다루고자 했으나 어쨌든 한 개인이기에 편향되고 또 좁은 시야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래도 스웨덴에 유학 혹은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재미를 동반한 좋은 힌트가 되었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다소 드문드문하더라도 스웨덴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할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