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서한이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노트 위에 적힌 글씨가 자꾸 떠올랐다.
바보.
지우개로 지워지는 상상을 했다.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문득 벤치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애 앞에서 네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서한이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다음 날 쉬는 시간.
진서는 어제처럼 노트를 펴고 있었다.
서한이는 책상 앞에 섰다.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어제…”
진서가 고개를 들었다.
서한이는 괜히 책상 모서리를 만졌다.
“그거…”
말이 또 막혔다.
“노트…”
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한이는 숨을 들이마셨다.
“친해지고 싶었어.”
진서가 눈을 깜빡였다.
“뭐?”
“그래서… 괜히 장난쳤어.”
잠깐 조용했다.
진서는 서한을 한 번 보고 말했다.
“사람 노트에 바보 쓰는 애 처음 봤어.”
서한이는 더 작아졌다.
“…미안.”
진서는 연필을 돌렸다.
“다음엔 그냥 말해.”
그리고 덧붙였다.
“장난 말고.”
서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서는 노트를 다시 폈다.
그러다 잠깐 멈췄다.
지우개로 어제 적힌 글씨를 문질렀다.
“이거 지우기 힘들어.”
서한이가 말했다.
“미안...”
진서는 지우개 가루를 털었다.
“됐어.”
그리고 노트를 다시 정리했다.
“근데 너 글씨 진짜 못 쓴다.”
서한이는 잠깐 멈췄다.
“…알아.”
진서가 말했다.
“이렇게 쓰면 누가 봐도 너야.”
서한이는 웃음이 조금 나왔다.
그제야 숨이 조금 놓였다.
교실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그날 저녁,
서한이는 벤치로 갔다.
말해야 할 게 있었다.
미끄럼틀은 비어 있었고
놀이터는 조금 조용했다.
벤치는 그대로였다.
아무도 없었다.
서한이는 잠깐 서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먼저 불렀을 자리였다.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천천히 앉았다.
무릎이 벤치 아래로 더 내려와 있었다.
발끝이 바닥에 단단히 닿았다.
손바닥으로 벤치를 한 번 쓸었다.
차가웠다.
서한이는 잠깐 웃었다.
“나...”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본인도 잘 몰랐다.
잠시 뒤, 일어났다.
벤치가 예전보다 낮게 느껴졌다.
서한이는 가방 끈을 고쳐 메고 놀이터를 한 번 둘러봤다.
그리고 집 쪽으로 걸어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