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는 쉬는 시간마다 노트를 정리했다.
칠판에 적힌 걸 옮겨 적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적어 둔 것들을 다시 맞췄다.
제목을 쓰고, 날짜를 쓰고, 줄을 맞추고, 빈칸을 남겼다.
교실은 시끄러웠다.
축구공이 굴러갔고 책상이 삐걱거렸고 누군가는 과자를 뜯었다.
그런데 진서 쪽은 조용했다.
서한이는 그게 괜히 신경이 났다.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아서.
서한이는 연필을 하나 들고 진서 책상 앞으로 갔다.
“야, 뭐 해?”
진서가 고개를 들었다.
“노트 정리.”
서한이는 웃었다.
“그걸 쉬는 시간에 해?”
진서는 잠깐 서한을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연필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서한이는 책상 끝에 걸터앉았다.
뒤에서 친구들이 떠들었다.
“서한아, 뭐 하냐?”
“쟤 또 괴롭히는 거 아니지?”
서한이는 손을 휘저었다.
“아니거든.”
그래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진서의 글씨는 반듯했다.
줄 하나도 삐뚤지 않았다.
서한이는 갑자기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정말 별 뜻은 없었다.
그냥, 너무 반듯해서.
서한이는 연필을 들었다.
진서가 적어 놓은 문장 옆 비어 있는 공간에 툭.
한 단어를 적었다.
바보.
서한이는 웃음이 나왔다.
“하하.”
그런데
진서의 손이 멈췄다.
고개는 들지 않았다.
노트만 보고 있었다.
서한이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야, 장난이잖아.”
진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서한이는 갑자기 목이 막혔다.
아니, 그냥 한 단어인데.
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울었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만 조금씩 새어 나왔다.
진서는 손등으로 눈을 닦으려다 멈췄다.
노트가 더러워질까 봐.
눈물이 종이 위로 툭 떨어졌다.
그 모습이 더 이상했다.
서한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뒤에서 친구가 킥킥 웃었다.
“야, 쟤 운다.”
“서한이 너 너무했다.”
서한이는 뒤를 돌아봤다.
“웃지 마.”
교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서한이는 다시 진서를 봤다.
진서는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꼭 눌렀다.
누가 더 볼까 봐.
누가 더 만질까 봐.
서한이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자기가 적은 건 단어 하나였는데
진서는 뭔가를 잃은 얼굴이었다.
“미안… 아니, 진짜 그냥…”
말이 끊겼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사과하면 더 울 것 같았고 가만히 있으면 더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진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서한이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 옆에 그냥 서 있었다.
종이 울렸다.
아이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진서는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서한이는 그걸 보고 있었다.
진서가 교실을 나갔다.
그래도 서한이는 한동안 자리에 남아 있었다.
친구가 어깨를 쳤다.
“야, 너 왜 그래.”
서한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집에 가는 길이 이상하게 길었다.
왜 그런지 몰랐다.
다만, 진서가 울면 자기가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것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