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이가 5학년이 되고 어느 봄날.
병현은 늘 그렇듯 벤치에 앉아 있었다.
“서한이 왔네. 요즘은 어때?”
서한이는 가방 끈을 한 번 올려 메고 그 옆에 앉았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 말 없이 먼저 기대앉았을 텐데, 요즘의 서한이는 앉는 자세부터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말투도.
“그냥… 괜찮아요.”
병현이 웃었다.
“괜찮다는 애들이 제일 바쁘지.”
서한이는 무릎을 문질렀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삼촌.”
“응.”
“나 요즘… 이상한 애가 있어요.”
병현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이상한 애?”
“학원에 있는데요. 여자애.”
“여자애가 왜 이상해.”
서한이는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걔만 보면…”
말이 막혔다.
“… 가슴이 빨리 뛰어요.”
병현이 잠깐 멈췄다. 웃지 않았다.
“아파?”
서한이는 얼굴을 붉혔다.
“아니요. 그런 거 말고.”
“그럼 뭐야.”
서한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막… 이상해요.”
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상할 수 있지.”
서한이가 말을 급하게 이었다.
“근데요, 삼촌.”
“응.”
“나 걔를…”
말이 꼬였다.
“… 괴롭히고 싶어요.”
병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괴롭혀?”
“아니, 진짜로 괴롭힌다는 게 아니라…”
말이 더 엉켰다.
“괜히요. 괜히 이상하게 굴고 싶고.”
병현은 잠깐 서한이를 바라봤다.
“왜.”
서한이는 거의 속삭였다.
“모르겠어요.”
잠깐 바람이 불었다.
병현이 무릎을 한 번 두드렸다.
“서한아.”
“네?”
“그 애 앞에서 네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서한이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 친해지고 싶어요.”
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근데 너.”
“네?”
“좋아하는 애 생긴 거네.”
서한이는 눈을 크게 떴다.
“아니에요!”
“아니긴.”
병현이 웃었다.
서한이는 얼굴이 확 빨개졌다.
“삼촌,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래, 그래.”
서한이는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섰다.
“… 삼촌은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봤다.
병현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웃고 있었다.
서한이는 그 웃음이 조금 얄미웠다.
“삼촌 미워!”
그날은, 서한이가 먼저 일어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