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인 줄 알았는데 재난이었다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을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지막 기억을 더듬자, 중학생 때 봤떤 ‘원령공주’가 떠올랐다. 그 이후로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특히 요즘은 OTT가 대중화되면서, 애니메이션을 보더라도 대부분 집에서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왠지 직접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과 생생한 사운드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보게 됐다.
이 영화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부터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사가 전혀 없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대홍수로 인해 동물들이 배를 타고 다닌다는 설정이라는 것뿐이었다. 동물들이 두 발로 걷지도 않고, 사람 말을 하지도 않는다는 점도 신기했다. 거기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받았고, 라트비아 출신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는 정보도 알게 되면서 더 궁금해졌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대사가 하나도 없어도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충분히 전해진다는 것에 놀라웠다. 그리고, 힐링 영화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알고 보니 재난 영화였다. 특히, 고양이가 물에 빠지거나 헤엄칠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배에서 멀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돌아오지, 괜히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동물들이 밥을 제대로 못 먹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한국인 특유의 밥 걱정일지도 모르지만, 대홍수 한가운데에서 배고플까 봐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쿠키영상까지 보고 나서, 이 이야기는 결국 재난 속에서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는 처음엔 모든 걸 경계하고 혼자 있으려 한다. 모든 주변의 사소한 변화에도 깜짝 놀라고, 친해지려고 다가오려는 골든 리트리버조차 밀어낸다. 하지만 결국엔 카피바라의 배에 올라타고,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와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연다. 처음에 배 안의 영역을 가지고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 장난치고, 고양이가 생선을 가져와서 나눠주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다가 다른 개들이 타면서 배의 각자의 영역이 어지럽혀지고, 뱀잡이수리는 떠나게 된다. 뱀잡이수리가 떠나는 것을 배웅하고 고양이가 다시 배에 올라타려고 쫓아가지만 점점 멀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대홍수가 끝나면서 땅이 드러난다. 이후 고양이는 헤어졌던 동료들을 다시 찾아 나무에 걸린 배에서 나오도록 구해주고 함께 물웅덩이를 들여다보면서 영화는 끝난다. 다른 사람, 다른 환경을 낯설어 하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과 같아서 고양이에게 엄청 이입이 되었다. 처음엔 수영을 못해서 물도 무서워했는데 카피바라를 보고 수영을 배우면서 나중에 물고기를 잡아오는 모습을 보고 내가 고양이 집사도 아닌데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뱀잡이수리가 끝까지 반대했던 개들을 태울 때 나도 함께 고민했다. 개들을 태우면 배 안이 아수라장이 될 것이 뻔한데, 그렇다고 버려두고 가면 물에 잠길 테니 버려둘 수도 없고. 나라도 결국 개들을 태웠을 것 같지만 이후에 배의 평화가 깨지는 모습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그것을 보고 뱀잡이수리가 더 이상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떠난 게 아닌가 싶다. 뱀잡이 수리가 대홍수 속에서도 잠기지 않던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결국 하늘로 떠나버리는 것을 보고 뱀잡이수리가 결국 죽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갑자기 오색빛이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뱀잡이수리랑 고양이가 둘 다 떠올랐는데 결국 뱀잡이수리만 올라가고 고양이는 다시 땅에 두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근데 그 전에도 애니메이션에서 뱀잡이수리가 계속 그 산을 쳐다봤던 것 같다. 결국 뱀잡이수리는 제일 높은 그 산으로 가는 것이 목표였고, 그 근처에 가자 본인의 길을 따라서 떠난 게 아닐까 싶다. 배에 함께 합류한 이후로 계속 노를 잡고 방향을 잡고 나아갔었는데, 그 노를 저으며 가고자 한 방향도 그 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개들이 태우고 싶지 않았는데, 개들을 결국 태우게 되면서 노를 놓아버렸고 이제 이 배에서 내 역할을 다한 것 같다고 생각해서 그 산 위로 떠나버린 것 같다.
사실 뱀잡이수리가 이 영화에서 계속 미스터리였다. 처음 수영을 못해서 물 속에 빠져있던 고양이를 고래가 구해주고 나서 갑자기 고양이를 낚아채서 하늘을 날더니 우연찮게 다시 배 안으로 떨어뜨려 주었고, 고양이가 같은 종족도 아닌데 생선을 나눠주거나, 자기 종족 우두머리에 맞서서 지키려고 하다가 날개가 부러지는 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는 배에 합류해서 밤낮없이 배를 조종하면서 나아가다가 훌쩍 하늘로 떠나버리는 결말까지.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가도 다른 개들도 다 구하려고 했던 카피바라와 비교하면 개들을 구하지 않으려고 하고 고양이 외의 다른 동물들은 챙기지 않는 걸 보면 이기적인 존재인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다 함께 가려고 했던 이 배의 방향과 맞지 않아서 떠난 것 같기도 하다.
카피바라는 인생의 멘토 같은 존재였다. 고양이가 탔던 배 안에 먼저 있었던 것도 카피바라였고, 고양이가 계속 경계하자 느긋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어서 고양이의 불안함을 가라앉히는 역할도 해줬다. 또한 여우원숭이가 좋아하는 공이 떠내려가자 그걸 주워 주러 가는 모습을 보이거나, 고양이에게 수영하는 법을 보여줘서 가르쳐주기도 했다. 또한 배에 타지 못한 개들을 보자 바로 배를 돌리려고 하는 모습도 보였다. 결국 이런 카피바라의 모습을 보고 배워서 고양이가 마지막에 나무에 올라가고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친구들을 구하려고 한 게 아닐까 싶다.
여우원숭이는 귀여웠다. 처음에 집에서 이거저거 물건을 챙기는데 카피바라가 좀 도와주다가 바로 바구니를 끌고 배로 넣어버리는데, 다 못 챙겼다고 화내는 모습이 귀여웠다. 들어와서도 반짝거리는 물건을 챙기고 다른 사람들이 못 건드리게 하는 등 이기적인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막판에 대홍수가 끝나고, 나머지는 배 안에 있는데 왜 본인만 나와서 다른 여우원숭이들이랑 있는 건지. 결국 다른 여우원숭이들을 버리고, 고양이를 따라서 배 안에 있는 다른 동물들을 구해주면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배 안에 있을 때 계속 거울을 들고 좋아하는데, 대홍수가 끝나고 여우원숭이들과 있을 때 들고 있던 거울은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걸 보면서 진짜 중요한 건 깨진 거울이 아니라 친구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게 아닐까 싶다.
골든 리트리버도 너무 귀여웠다. 처음에 고양이에게 적개심을 보이지 않기도 했고, 홍수로 다른 개들과 떨어졌을 때 어떻게든 고양이랑 가까워지려고 하는 모습도 귀여웠다. 그리고 활동량 많을 텐데 좁은 배 속에서 어떻게든 돌아다니거나 놀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이것이 진정한 외향적인 모습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막판에 다른 개들처럼 본능을 쫓아서 토끼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곁에서 지키는 모습까지 너무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래가 있다. 고래는 내가 알고 있는 고래가 아닌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계속 배 주변을 돌아다니며 고양이과 친구들을 구해주었다. 수영을 못해서 고양이가 점점 가라앉을 때 구해주기도 했고(이 때 고양이 죽을까 봐 너무 무서웠다), 나무에 걸려서 배가 나아가지 못할 때 나타나서 물보라를 일으켜서 배를 밀어 주기도 했다.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대홍수가 끝나면서 물 밖에서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는데, 쿠키영상에서 바다 저 멀리에서 고래가 돌아다니는 모습을 봐서는 죽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이외에도 영화에는 여러 요소들이 숨어있었다. 처음에 고양이가 물 마시러 갈 때 나무에 배가 걸려있어서 처음엔 저 배를 타고 가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훨씬 큰 배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큰 산들 근처에 왔을 때 폭풍우에 부서진 배들이 많은 것을 보아, 이런 홍수가 자주 반복되는 곳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서 원래 살던 인간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난 건지, 다른 모종의 이유로 사라진 건지 인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고양이가 맨날 돌아가는 집 근처에 고양이 조각상들이랑 고양이 그림이 있어서 고양이를 사랑하는 주인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그 집에 있는 빛나는 공이 계속 배를 쫓아와서 떠났지만 고양이를 걱정하는 주인의 마음이 계속 쫓아오는 건가 싶기도 했다. 마지막에 그 공이 고양이가 배를 쫓아가지 못하고 기진맥진할 때 나타나서 고양이가 잠시 매달려서 쉬어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상영관이 많지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보러 가고 싶다. 처음에 볼 때 생각보다 너무 재난영화라서 손에 땀을 쥐고 봤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영상미가 너무 예뻤다. 물고기들도 열대어처럼 빛나고, 비록 물 속에 잠겨 있지만 큰 사원의 모습도 멋있었다. 사실 그 사원 지나갈 때 부딪힐까 봐 너무 조마조마해서 제대로 못 봤는데, 다시 보면 마음 편하게 감상하면서 볼 것 같다.
재난영화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힐링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제목이 “플로우”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 지역에 홍수가 계속 반복될 것이고, 동물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 함께 배를 탔고 연대했던 경험과 기억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