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o 토로

by 이제은


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와

더 검은 눈동자를

지닌 그 환자는

처음 봤을 때와

변함없이

야구 모자를 쓴 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오늘로서

세 번째 만남이었다.

미국 중부에 살다가

최근에 뉴욕으로

이사 왔다고 했다.

나는 살짝 긴장한 듯

보이는 그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환자분 성이 토로(Toro) 시네요.

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에요.

좀 특별한 이름 같은데

혹시 무슨 뜻이 담겨있나요?"


"음...

일본어와 이탈리아어로

뜻이 있어요."


"아~그래요?

무슨 뜻인가요?"


"음...

일본어로는

지방이 많은

참치 뱃살일 거예요."


"아...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순간 당황하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몇 초 후에

나만 제외하고

환자와 나머지 사람들이

일제히 빵

웃음을 터트리자

나는 그제야

농담임을 알아채고는

함께 웃었다.


'흐음,

아주 재밌는 사람이군.

유머 감각도 있고.'

속으로 생각하며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하. 저는 토로라는 이름을 보고

이웃집 토토로를 떠올렸어요.

혹시 그 영화를 보셨나요?"


"네..."


다시 한번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곧 또다시 큰 웃음이

터졌다.

환자도 하얀 치아들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이웃집 토토로라는 영화에 나오는 토토로는 부드러운 회색털을 지닌 큰 친칠라이다.



의도치 않게 웃음이 멈추지 않아

본을 뜨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환자를 포함한 사람들 모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는 만회할 기회를 찾기 위해

다시 한번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면

혹시

일본 이탈리아 혼혈이신가요?"


"아니요.

저는 라티노입니다."


"아... 네..."


뻘쭘함은 온전히 내 몫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느라 애를 썼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나의 통찰력 빵 퍼센트 (0%)

대화 스킬로

환자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나아가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뻘쭘함과 민망함은

한순간이지만

행복한 웃음이 담긴

좋은 기억은

오래오래

지속될 테니까.


ps: Toro는 스페니쉬어로 황소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이제 보니 환자의 웃는 얼굴이 토토로의 웃는 얼굴과 닮은 것 같은 건 나만의 착각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