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윌리엄

by 이제은


만나면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윌리엄은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다. 작년부터 클리닉에 오기 시작한 윌리엄은 투명교정기 인비절라인을 위해 앞으로 2년 동안 매달 꾸준히 만나야 하는 환자이다. 윌리엄을 묘사하는 단어 한 가지를 고른다면 명랑함 (cheerful)이 아닐까 싶다. 그가 클리닉에 들어오면 어느새 모든 사람들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고 웃음꽃들이 피어난다. 나 또한 피곤하고 지쳐있다가도 그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좋아지고 수다스러워진다.


얼마 전 그는 몇 개월 뒤에 하와이에 한 달 정도 가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혼자 지내시는 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나는 그때 처음 그가 하와이에서 태어나 자란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신이 나서 평소 좋아하는 디즈니 영화 모아나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자신의 왼쪽 몸에 영화에 나오는 마우이 것과 같은 큰 갈고리 문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에 갈고리 문신을 했다며 자신이 마우이보다 "원조 갈고리"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반팔 티셔츠를 입은 그의 양 팔에는 다른 여러 문신들이 그려져 있었다. 전에도 분명 반팔을 입고 왔었는데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신기하게도 그날은 아주 잘 보였다.



디즈니 영화 모아나에서 나오는 마우이 (왼쪽)는 큰 갈고리를 가지고 다닌다. 출처: 구글



윌리엄은 의자에서 일어나 나가면서 작은 하얀 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Happy birthday!" 나는 놀란 눈으로 그가 보낸 봉지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로이스 초콜릿 상자 두 개가 들어있었다. 생각해보니 지난번 만남 때 내가 지나가는 말로 그의 다음 예약 날짜가 내 생일이라고 말했었는데 그는 그것을 기억하고 선물을 가져온 것이다. 그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가나 비터 (Ghana bitter) 맛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이야." 나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어? 이 말차 맛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인데!" 순간 우리 둘은 천장을 쳐다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기분 좋은 우연이 선물을 준 윌리엄도, 선물을 받은 나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준 듯했다.


하지만 곧 나는 이 비싼 선물을 받아도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다. 내가 난처한 표정으로 그에게 초콜릿을 돌려주며 말했다. "마음만 잘 받을게. 정말 고마워." 그러자 그는 변함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너와 여기 클리닉 사람들 모두 나를 정말 소중하게 잘 대해줘서 내가 꼭 주고 싶은 선물이야. 나는 여기 올 때마다 정말 기분이 좋아지거든. 지금까지 잘 케어해줘서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던지 첫인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단정 짓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한다. 습관적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쉽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란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처럼.


'넌 내게는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하지 않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 난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지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생 택쥐페리의 '어린 왕자' 중에서>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누군가를 바라보고 대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 동안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된다. 나는 그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 진심으로 기쁘다. 고된 일상 속에서도 이런 기쁨이 충만한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기에 우리들은 매일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윌리엄을 떠올리면 하와이의 노을이 떠오른다. 솔솔 부는 바닷바람과 따뜻한 모래, 에메랄드 빛의 바다, 그리고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그를 만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의 여유로움이 잠깐의 만남 동안 내 삶에도 스며들어서 그런 것일까. 바쁜 일상 속에서도 미소와 유쾌함을 잃지 않는 그의 여유로움이 왠지 멋있게 느껴졌다. 나도 닮고 싶어 졌다. 하와이 노을 같은 그의 미소와 유쾌함, 그리고 여유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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