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한 크로스백
워싱턴 포스트라고 쓰인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
단정한 금발머리에 동그란 안경
큰 키에 마르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단단한 몸집
바로 존 (John)의 첫 모습이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마지막 환자로 들어온 그는 다소 긴장한 듯했으나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예의 바른 태도는 젠틀맨을 연상시켰다. 그의 섬세하고 따뜻한 눈빛과 목소리도 젠틀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존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졌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며 그가 스포티파이 (음악 플랫폼)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평소 스포티파이를 자주 애용하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스포티파이의 유용한 기능들에 대해 신이나 이야기했다. 마침 오피스 벽에 있는 구글 스피커에서는 스포티파이로 튼 음악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구글 스피커를 달아놓은 것이 센스 있다며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며 나 또한 스포티파이 같은 좋은 어플을 잘 사용하게끔 일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서로 칭찬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고 충치 치료를 위한 마취도 잘 진행되었다.
소프트 팝 뮤직을 들으며 충치 치료를 하던 중에 내가 물었다. "존, 어때요? 괜찮나요? (John, how are we doing? Doing okay?" 존이 대답했다. "네, 전 좋아요! (Yes, I'm good!)" 그다음에 나는 어시스턴트 미셀에게 물었다. "미셀은 어때요? 괜찮나요? (What about you, Michelle? Are we doing okay?)" 그러자 미셀도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저도 좋아요! (Yes, I'm also good!)" 그 둘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 찬 대답을 들으니 갑자기 기운이 솓으면서 스트레스가 휘릭 날아가 버린 듯한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말했다.
"베리 굿~ 저도 좋아요! 우린 참 멋진 팀이군요. 저와 함께 소중한 금요일 저녁을 함께 보내줘서 고마워요 ^^ (Very good~ I'm good, too! We are such an amazing team. Thanks for spending the precious Friday evening with me!"
그 순간 우리 셋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들 큰 웃음을 터트렸다. 행복해지는 웃음소리들이었다. 긴 하루의 마지막 진료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았다.
어둑어둑 해가 저물어 가는 금요일 저녁, 어느 정도 다들 지치고 피곤했을 텐데도 미소를 잃지 않고 즐겁게 충치치료를 마무리했다. 더없이 감사한 저녁이었다. 나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누군가의 도움과 협조가 있어야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결코 나 혼자의 힘 혹은 실력으로 이루어낼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상대방을 항상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어시스턴트도 환자도 그 순간에는 나와 함께 일하는 한 팀이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것들에 가장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말투에 신경을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 어떤 책의 제목처럼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나에게는 무수히 많은 환자들 중에 한명일 수 있는 존에게 나는 과연 어떤 치과의사일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에 대해 고민할 때 항상 같이 고민하는 것은 나는 과연 어떤 치과의사이고 싶은가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직업은 나라는 사람의 큰 일부분이므로. 나는 운이 좋게도 같이 일하는 동료들 (데이비드와 동생 J)과 이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우리들이 함께 추구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치과에 대한 새로운 긍정적인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앞으로 치과를 떠올릴 때 두려움, 고통, 걱정이 아니라 무언가 긍정적인 것들을 떠올렸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갖고 일하고 있다. 혹시라도 있었던 예전의 안 좋았던 기억들이 오늘의 즐겁고 편안했던 기억들로 새롭게 바뀔 수 있도록.
다음날 아침 나는 존이 남긴 후기를 읽어보았다.
"전문가의 손길로 고통 없이 충치치료를 잘 받았습니다. 다른 치과에서 받았던 충치치료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것은 꿈이었습니다! 10/10."
이 후기를 읽고 나자 내 마음엔 마치 봄이 찾아온 듯 꽃과 나무들이 환하게 피어나고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듯 따뜻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던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숫자 걱정은 하지 마세요. 한 번에 한 명씩 돕고 항상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Never worry about numbers. Help one person at a time and always start with the person nearest you."
그렇다. 한 번에 한 명씩.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한 번에 한 명씩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보다 보면 언젠가는 내 바람만큼 치과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들을 가진 환자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건강한 치아와 잇몸을 위해서 꾸준한 관리와 정기검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과 고통, 걱정 때문에 치과에 가는 것을 미루거나 주저하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다. 조금만 용기를 내서 꼭 정기검진을 받으시라고 말이다. 건강한 치아와 잇몸은 곧 우리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큰 일부분임으로. 그러니 스스로를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꼭 용기를 내라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사실 치과 가는 것이 조금 무섭지만 항상 정기검진 후에는 생각한다. "흐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는데..?" 끽끽 기계소리와 눈부신 밝은 빛 때문에 의자에 누워있는 동안 조금 겁이 났지만 그것들은 그저 의사 선생님이 내 입안을 잘 보려고 쓰는 조명과 내 치아와 잇몸들을 잘 닦아주는 스케일링 기계의 소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나도 무섭고 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 되었음을 우리의 몸과 머리가 인식하고 예전 기억들을 떠올리며 지레 긴장을 하고 겁을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보다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긴장하거나 겁을 먹은 채 치과에 오면 최대한 부드럽게 타이르곤 한다. 눈을 지그시 쳐다보고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한다. 나 스스로도 항상 그렇게 부드럽게 타이른다. 이 두려움을 그 순간 조금만 참으면 건강하고 깨끗한 치아와 잇몸을 가질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 모두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함께 용기를 갖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