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 빈센트

by 이제은


빈센트 (Vincent)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마치 숲 속에서 곰을 만나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190cm가 넘는 키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그는 그는 주로 검은 티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나타났는데 오른쪽 다리에 큰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살짝 뒷걸음치었다. 뭐랄까. 그의 포스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짙은 갈색 곱슬머리에 살짝 쳐진 눈꼬리. 적당히 느린 말투와 몸짓, 그리고 동굴 저음 목소리는 영화 모글리에서 나오는 곰 발루를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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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글북에서 나오는 곰 발루. 왼쪽은 애니메이션 오른쪽은 실사판 영화의 발루.



점차 알게 된 그는 둥글둥글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분명 첫인상은 곰이었는데 대화를 하면서 사소한 것에도 환하게 잘 웃는 그를 보며 나는 행복한 래브라도 한 마리가 떠올랐다. 왠지 더 잘 챙겨주고 싶은 환자였다. 그러나 머피의 법칙인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더 잘해주고 싶었던 빈센트에게 사건이 일어났다. 크라운 제작을 위해 본뜬 임프레션 (impresison)이 치공사에게 보내지는 과정에서 분실되는 일이 생겼다. 치공사 쪽에서는 연이은 눈태풍 (스노 스톰) 사태로 인해 택배 배달들이 지연되는 것 일 지 모른다 했다. 빈센트의 예약 날짜는 점점 다가오는데 치공사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빈센트를 다시 클리닉에 불러서 새로운 본을 떠야 했다. 비록 나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에게 대신 여러 번 사과를 했다. 누군가는 그의 분실 사건에 대해서 그에게 정확히 설명을 해주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물론 프런트에서 전화해서 이미 설명을 했지만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빈센트, 너의 시간을 뺏어서 미안. 최대한 아프지 않게 빨리 끝낼게."


그러자 빈센트가 말했다


"돈워리! 그럴 수도 있지. 걱정 마. 네 잘못도 아닌데. 난 괜찮으니까 충분히 시간을 갖고 해도 돼!"


나는 그런 그가 매우 고마웠다. 어떤 경우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컴플레인을 하거나 혹 비용을 깎아달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많이 긴장했다. 초기 시절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마치 큰일이 날것이라고 겁을 먹고 스트레스를 받아 손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던 날들도 있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던 치대부터 레지던시까지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왔고 그중엔 아직도 떠올리면 손에 진땀을 쥐게 하거나 혈압을 쑥 올리는 환자들도 몇몇 있었다.



예를 들어 국가고시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적절한 조건에 맞는 치아 상태를 가진 환자들이 필요했다. 그들은 시험 당일날 와서 치료를 받는데 중간중간 시험관들에게 검진을 받아야 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들에 맞는 환자들을 찾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게도 내가 기존에 보던 한 환자 W가 그 조건에 우연히 맞았다. 조심스럽게 W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하며 부탁을 했다. 그러자 W는 예전에도 한번 해본 적이 있다며 흔쾌히 나의 국가고시 시험 환자 중에 한 명이 되어주겠다고 말했다. (시험 종류도 여러 개라 환자가 한 명 이상 필요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W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시험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는 알겠다며 그날 보자고 했다. 그 후 나는 나머지 환자들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국가고시 날짜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나는 아직 환자 한 명이 더 필요했다. 학교와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던 중 W가 할 말이 있다며 마침 학교 근처라 잠깐 만나자고 했다. 나는 한걸음이 달려가 VIP 환자를 만났다. 혹시라도 시간이 안 되는 건 아닐까? 무슨 문제가 생겼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W는 짧게 인사를 한 뒤 나에게 물었다. "내가 어쩌다 우연히 들었는데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국가고시 환자들한테 돈을 지불한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이야?"생각지 못했던 질문에 나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고마움의 표시로 멀리서 오는 환자들에게 택시비 정도는 준다고 듣긴 했었어요. 다만 그날 치료비는 면제가 되기 때문에 당신은 사실상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말했다. "혹시 당신도 교통비가 필요한 것이라면 얼마가 드는지 알려주시겠어요?? 그건 제가 부담할게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굳게 다문 입술을 떼며 내게 말했다. "내가 잘 생각해보니까 예전에 내가 도와준 학생은 내게 $XXX의 돈을 줬었던 거 같거든. 너도 그 정도 주었으면 싶은데. 그 이상 주면 더 좋고."


이 말을 듣고 나는 망치로 머리를 두 번 연속으로 맞은 듯했다. 일단 그가 말한 금액은 학생인 나에게 꽤 큰돈이었고 그의 치료비의 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두 번째로 그가 내게 부탁이 아니라 요구를 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부탁을 했어도 주기 힘든, 아니 주지 않았을 테지만 너무나도 당당하게 큰 금액을 요구하는 W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이 기억이 난다. 또한 내가 그가 제시한 금액을 줄 수 없다 말하자 굉장히 실망한 그의 눈빛과 불만스러운 말투도 기억이 난다. 그는 짧고 굵게 그날 나의 환자가 되어주는 것은 어렵다고 얘기하며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말하곤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자리에 혼자 오랫동안 남아 방금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되짚어 보려고 노력했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고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분명 환자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학생들도 있었을 테다. 그만큼 간절하기 때문 일 것이다. 결코 그들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속상하고 서러웠다. 그 큰 금액을 선뜻 내주지 못해서도 아니었고 순식간에 국가고시를 봐야 되는 환자를 잃어버려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몹시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알면서 그것을 이용해서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의 간악함에 치가 떨렸다. 내가 겪은 이 일들과 비슷한 일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빈번히 일어난다. 다만 내가 겪지 않으면 결코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이용해 이득을 얻어보려는 사람들은 당장은 웃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훗날 떳떳하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못할 것이라도 생각한다.


나는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마음씨 착한 S를 만나게 되었다. 아침 일찍 와줘야 했기 때문에 나는 S에게 교통비를 부담할 때니 꼭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 말에 S는 전철을 타면 금방이라며 오히려 무료로 치료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택시를 타고 오라고 계속 권하자 그녀가 말했다 "정 그러면 아침으로 베이글 샌드위치 하나만 사줘요. 그거면 충분해요."


국가고시 실기시험 아침 6시에 기상해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머리를 맑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 앞 델리 가게에 가서 S가 원하는 베이글 샌드위치를 샀다. 커피도 한잔 함께 샀다. 샌드위치과 커피를 건네받은 S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함께 웃었다.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해서였을까. 나는 국가고시를 무사히 통과했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S를 포함한 환자들에게 감사문자를 보냈다. 다들 내게 축하한다며 당연히 통과할 줄 알았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S에게도 답장이 왔다. "좋은 소식 함께 나눠줘서 고마워요. 저도 매우 기쁘네요. 치료도 잘해주고 아침에 베이글 샌드위치도 정말 고마웠어요!"




빈센트를 생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옛 기억이 떠올라 쓰고 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벌써 몇 년 전 일인데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나름 트라우마였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니, 트라우마라기보다는 에피소드가 더 맞는 단어인 것 같다. 자칫 트라우마가 될 뻔 한 해피엔딩의 에피소드가 된 셈이니 말이다.


항상 빈센트 같은 이해심 많고 여유로운 환자 혹은 사람들만 만나면 참 좋겠지만 싶다가고 이 큰 세상 속에서 빈센트 같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생각한다. 감사하다. 중요한 것은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들의 소중한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빈센트의 새로운 크라운은 잘 만들어져서 무사히 그의 입안에 넣어졌다. 나는 빈센트가 고마워 조금 더 신경 써주고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어쩌면 내 마음이 편하고자 그렇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빈센트도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런 후기를 남겼다.


"나는 드디어 덴탈 홈 (dental home)을 찾았습니다. 뉴욕에 4년간 살았지만 내가 편하게 느끼고 내 기대에 맞는 치과를 찾는 것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정직하고 솔직한 비즈니스이며 완벽함을 달성하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곳을 찾아 매우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나의 마음이 전달될 때이다. 누군가를 위하고 기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주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더 큰 믿음과 신뢰를 쌓는다. 다른 사람이 함부로 깰 수 없는 단단하고 견고한 믿음과 신뢰의 탑. 오늘도 내일도 쌓아나가야지. 그것이 바로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길임으로.




글에 등장하는 모든 환자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