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갈색머리에 살짝 마른 체형의 키가 큰 클로스는 베이지 에코백과 갈색 샌들을 신고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꾸밈없는 그의 말투와 제스처에서는 고상함이 느껴졌다. 여유롭고 차분한 그의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의 태도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저는 당신의 이름을 처음 보고 산타클로스가 생각났어요. 클로스라는 이름은 특별한 이름인가요?" 그러자 그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독일에서는 많이 쓰는 이름이에요." "그렇군요!" 나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나의 첫 번째 클로스랍니다. 왠지 특별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유엔에서 일한다는 독일 출신 클로스의 매우 부드럽고 안정된 성품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비록 한 시간이라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 속에서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 듯했다. 그는 처음 나에게 지었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 말했다. 나 또한 그에게 고맙다 말했다. 마음속 한가운데에서부터 온기가 퍼져나가는 듯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말이었었구나. 나는 클로스가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의 고맙다는 말을 간직하고 속으로 되뇌어보았다.
클로스와의 만남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 내가 배울 수 있는 존재, 그리고 나를 성장시켜주는 그런 존재.
나는 어떤 친구일까 생각해보았다.
기댈 수 있는,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일까?
따뜻한 배려심으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친구일까?
만나면 행복해지는 친구일까?
또 나는 좋은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 생각해보았다.
무조건 상냥하고 예의 바르면 좋은 친구일까?
도움이 되는 바른 말과 조언들을 해주면 좋은 친구일까?
그렇다면 좋은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편견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사람.
내가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게끔 용기를 주는 사람.
고된 하루 끝에 그저 말없이 옆에서 어깨를 감싸줄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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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들은 그저 누군가 나를 꼭 안아줬으면 싶은 날들이 있다. 마음이 지치고 외로운 날, 따뜻한 품속에 아무 말 없이 안겨있고 싶다. 그러면 세상에서 보호받는 기분이 든다. 안정감이 든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호흡이 느려진다. 나른해진다. 마치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듯하다. 이 기분을 노래로 표현한다면 하현우님이 부른 '걱정 말아요, 그대'가 아닐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마치 나의 오랜 친구가 내게 말해주는 듯하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으니 괜찮다며 따듯한 손바닥으로 내 등을 쓰다듬어주는 듯. 함께 새로운 꿈을 꾸자며 나를 힘껏 안아주는 듯하다. 이런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가 참 고맙다. 나도 친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그가/그녀가 힘들고 지칠 때, 마음이 외로울 때 위로와 응원을 보내줄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에게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친구가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나가 내 상태와 감정을 잘 파악해서 내 마음에 친구가 들어설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친구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예의를 지키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친구의 마음을 배려해야 한다. 서로가 따뜻한 배려심과 관심을 가져야만 건강한 우정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클로스를 떠올렸다. 그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내려앉아 따뜻한 온기로 퍼져나감을 떠올렸다. 말 한마디로도 우리는 누군가의 하루를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줄 수 있다. 더 밝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더 세심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상대방을 내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예쁘고 고운 말, 순한 말로 내 마음을 표현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에도 그 예쁘고 고운 말, 순한 말들이 닿아 따뜻한 온기로 퍼져나가겠지.
나는 항상 원해왔던 것 같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고 싶다.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사람이고 싶다.
행복을 선물하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다.
따뜻한 미소와 행복을 선물하는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
어쩌면 나는 오랜 시간 나 스스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다만 그 방법을 제대로 모르고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애써왔던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나 스스로에게 어떤 친구였을까? 예쁘고 고운 말, 순한 말들로 다가갔었는가? 편견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는가?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도록 믿음을 주었는가? 내가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게끔 용기를 주었는가? 그리고 고된 하루 끝에 그저 말없이 스스로를 감싸주었는가?
내가 항상 원해왔던 것은 사실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 가장 나다울 수 있도록,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주고 감싸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항상 원해왔던 것임을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 또한 말이다. 한쪽 손으로 다른 손 손등을 토닥토닥이며 말해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