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ily 에밀리

오늘의 책: 차동엽 신부님의 '무지개 원리'

by 이제은

나는 주로 새로운 환자들을 만나면 간단히 안녕을 묻는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How are you?)" 대부분 환자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는 많이들 원격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었는지 또 바뀌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출퇴근을 할 필요가 없어져서 좋다는 이야기,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이야기,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예전보다 일을 더 많이 하게 된 듯하다는 이야기, 가족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나눌 시간이 더 많아져서 좋다는 이야기들. 이야기를 하는 환자들의 표정과 억양, 단어 선택들로 코로나로 인한 변화들이 그들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었다.


작년 6월 말부터 다시 천천히 치과일을 하기 시작한 나에게 원격 재택근무는 그저 생소한 남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매일 환자들의 안녕과 안부를 물으며 나는 원격 재택근무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나름 배워가고 있었다. 분명 좋은 점들도 있었고 안 좋은 점들도 있었다. 삶에 변화들이 생기고 그것에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따라 또 삶의 모습이 변하는 듯했다. 문득 대학교 생물학 수업에서 들었던 적자생존의 법칙 (survival of the fittest)이 떠올랐다.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린다는 법칙. 모두들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나 또한 치과에서 스태프와 환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을 여기며 조심스럽게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11월 에밀리를 만났다. 작은 얼굴에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그녀는 표정이 매우 풍부했다. 동그란 두 눈으로 온갖 표정들을 표현했다. 그녀는 특히 겨울왕국(Frozen)에서 나오는 애나를 많이 닮은 듯했다.


다양한 표정의 애나. 동그란 큰 눈이 닮았다. 출처: 핀터레스트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지내요?" 그녀가 대답했다. "괜찮아요. 최근에 원격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그렇군요. 어떤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이 시기에 제게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에요.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일자리를 잃었거나 다른 직업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운이 참 좋은 편이죠. 이 시기에 계속해서 일할 수 있고 나아가 안전히 집에서 일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난 뒤 그녀는 동그란 두 눈이 반달 모양이 되도롤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환한 미소가 그동안 내 안에서 싹트고 있던 불안감의 그림자들을 거두어주는 듯했다.


내 안의 불안감들은 어디에서 왔던 것일까? 작년 11월의 나를 되돌아보았다. 하루 종일 두 겹의 마스크와 모자, 루페 (확대경), 페이스 실드, 그리고 가운과 장갑을 끼고 일했다. 사실 지금도 똑같이 착용하고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과의 가장 큰 차이는 백신 접종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의사와 스텝들 뿐만 아니라 환자들도 대부분 백식접종을 마쳤다. 그렇기 때문에 심적으로 훨씬 안정적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육체적인 스트레스도 덜 했다. 잊고 지냈지만 나의 삶도 분명 나아졌음을 새삼 깨달았다.


에밀리의 말대로 일자리를 잃어서 새로운 일을 찾아본다는 환자들, 또 어떤 이유에서건 다른 직업을 탐색하고 있는 환자들을 여럿 만났다. 그때마다 나는 일자리를 잃었다는 말을 들으면 적절히 할 말을 찾지 못해 당황하곤 했다. 상대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상투적으로 건네는 위로의 말은 자칫 너무 가벼워 보일 것 같아 선뜻 건네지 못하고 삼키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 뿐이었다. 이런 어색한 침묵이 몇 번 있고 난 후 나는 환자들에게 안녕을 묻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한동안 짧게 인사만 한 뒤 치료에 몰두했다.


하지만 에밀리와의 만남 이후 나에게도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혹시라도 환자들이 무거운 이야기를 하여도 예전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내가 할 적절한 말 한마디를 찾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준다. 두 눈과 귀와 마음을 그들에게 집중한다. 이야기를 마친 환자들은 대부분 미소를 지었다. 어떤 사람들은 쑥스러운 미소를, 또 어떤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또 어떤 사람들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나도 함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렇군요.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내가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치료를 마친 다음 한결 밝아진 환자들의 표정을 보면 내 마음도 한결 밝아진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인사를 한다. 그때 나는 이야기한다. 지금은 변화의 시기이고 어쩌면 더 좋은 것을 만나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치실도 오늘부터 매일 꾸준히 하는 것도 잊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면 환자들은 대부분 웃으며 알겠다고, 고맙다고 하며 떠난다.


때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게 우리는 힘을 얻는다.


어릴 적 읽었던 차동엽 신부님께서 쓰신 '무지개 원리'라는 책과 론다 번의 '시크릿'이라는 책들을 좋아해 여러 번 읽었다. 이 소중한 두 권의 책이 내게 알려준 가르침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또 다른 긍정적인 에너지들을 끌어당긴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생각들에도 힘이 깃들어 있다. 내가 내뱉는 말에도 힘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생각들과 말들에 신중을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그 생각들과 말들은 나라는 개인에게서 시작되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무지개 원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들은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그리고 '힘을 다하여'이다.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의 마음가짐을 '거듭거듭' 되새겨야 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하는 마음도 같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것에 집중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 어제보다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순간순간 우리들의 삶에 떠오르는 예쁜 무지개들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며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