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관계에 필요한 덕목

케이트 Kate

by 이제은


케이트는 클리닉에 들어온 순간부터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양 엄지 손가락과 눈동자의 현란한 움직임만큼 그녀의 핸드폰 화면도 쉴 새 없이 바뀌었다. 몇 분 후에 드디어 핸드폰을 내려놓는가 싶더니 주머니에서 다른 핸드폰을 꺼내 다시 손가락과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일 관련 핸드폰과 개인적으로 쓰는 핸드폰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도 멈추지 않고 핸드폰에 타이핑과 클릭을 했다. 케이트는 진료의자에 앉아서 엑스레이를 찍고 그 엑스레이들을 보며 같이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핸드폰을 했다. 그녀의 시선은 아주 잠깐 진료 모니터에 머무르고 이내 핸드폰 화면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에 "아..(Oh)" 혹은 "정말요 (Really)?" 내지는 "네 (Okay)" 등으로 답했지만 나는 그녀가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설명을 끝낸 뒤 "질문 있으세요?" 하고 물어보니 그녀는 "미안해요. 뭐라고 했죠?"라고 말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눈을 한번 딱 감고 코로 숨을 깊이 들이마 쉰 뒤 설명을 반복했다. 속으로 반복해서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도 있어.' 나는 전보다 가라앉은 차분한 말투로 설명을 마치고 그녀의 의자를 천천히 뒤로 눕혔다. 의자가 뒤로 눕혀지는 동안에도, 의자가 뒤로 다 눕혀진 뒤에도 그녀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나는 케이트를 보며 그녀와 비슷한 환자들을 떠올렸다. 그녀처럼 진료가 시작된 후에도 진료 도중에도 계속해서 핸드폰을 하던 환자들. 그럴 때 나는 일단 예의상 한번 물어본다." 혹시 처리해야 하는 급한 일이 있으신가요?" 어떤 경우에는 업무에 관련된 급한 일인 경우 환자에게 몇 분의 시간을 준 뒤 다시 진료를 시작한다. 그런 경우 환자는 감사를 표시한 후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핸드폰을 하는 환자들이 있다. 이런 경우 본의 아니게 보이는 핸드폰의 화면에는 대부분 SNS 혹은 문자가 떠 있다. 처음에는 환자들이 심심하거나 혹 불안해서 핸드폰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치과나 병원에 가면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하게 된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있을 때의 어색함을 달래주기 참 좋다. 지구 어디에 있어도 핸드폰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색하거나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낯선 공간에서 나만의 친밀한 공간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핸드폰은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일 것이다.


그렇다면 핸드폰을 쓰는 공간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어디까지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는 곳일까? 나는 동생 J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J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준 다음 얼마 동안 생각을 한 뒤 말했다.


"그렇구나. 그래서 네 마음이 속상했겠네. 나라도 그랬을 거야. 그건 예의가 아니지."

그녀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나는 케이트의 핸드폰 이야기의 핵심은 사실 핸드폰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게 무슨 말이야? 핸드폰이 핵심이 아니라니?"

내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하자 J가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사실 예의가 아닌가 싶어."

나는 J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따발총처럼 내 생각을 말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그녀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짧게 숨을 후욱 들이마 쉰 후 나는 말하고 싶은 욕구를 꾹 참은 후 고개를 끄덕이며 J에게 이어 말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J는 살짝 미소 지은 후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내가 차를 타고 가다가 옆에 지나가는 NYPD (뉴욕경찰) 경찰차에 CPR 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았어."

"오잉? 인공호흡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의 약어가 경찰차에 쓰여있었다고?"

"ㅎㅎ 나도 너랑 똑같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공호흡의 약어가 왜 경찰차에 적혀있을까 의아해하면서 경찰차에 적힌 나머지 글씨들을 다시 제대로 읽어보았어. 이렇게 적혀있더라.


C: Courtesy (예의)
P: Professionalism (직업의식)
R: Respect (존중/존경)


gianandrea-villa-m7cSgimQjfs-unsplash.jpeg Photo by Gianandrea Villa on Unsplash


"나는 이 CPR 이 우리 직업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 특히 예의와 존중/존경은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싶어."


나는 J의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문득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자주 해주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우리는 항상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단다." 아버지는 항상 그렇듯이 몸소 실천하시며 나와 언니, 그리고 동생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나는 아버지가 학교 경비원들과 청소부들에게 웃으며 먼저 인사하시고 안부를 물으시며 짧은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보았다. 왠지 그 웃는 얼굴들이 좋았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래서 나도 언제부턴가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항상 고개 숙여 반갑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시는 경비원 아저씨들은 웃으시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것은 마치 긍정적인 강화 (positive reinforcement)처럼 나에게 격려가 되었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 좋았다. 고마운 마음을 소리 내어 전달하면 그 말을 듣는 환하게 피어나는 상대방의 얼굴도 보기 좋았다. 나는 지금도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던 항상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건네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말 한마디를 잊지 않고 하도록 노력한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말 한마디에 지나치지 않을 그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에는 꽃이 피어나게 해 줄 수 있다. 하루의 피로를 사라락 날아가게 만들어줄 수 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게도 만들어 줄 수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말 한마디의 힘을. 인사의 중요성을. 내가 누군가에게 당신을 인지한다는 표시이다. 또한 '제가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제가 당신의 신성한 노동에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마음을 전달하는 가장 큰 방법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일과 노동을 당연히 여기는 순간 내 마음은 자만심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단단해진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나는 다시 한번 크게 깨달았다. 내가 당연히 여겼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성실한 노동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그들의 신성하고 성실한 노동 없이는 내가 지금 누리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셨던 것은 이런 마음가짐이 아녔을까? 동생 J가 말한 예의와 존중/존경이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한 덕목이라는 말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 생각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대할 때 지녀야 하는 태도의 가장 밑바탕에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데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의 속에도 예의가 담겨있다.


나는 다시 케이트의 핸드폰 사건이 생각났다. 무슨 이유에서건 케이트의 행동은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내 안에 있던 서운한 마음과 미움, 그리고 분노가 한결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케이트의 행동과 케이트라는 사람을 분리해서 바라보게 되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못했다면 혹시라도 다음번에 케이트를 만날 때 그녀를 감정적으로 대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고 나도 '똑같이' 예의 없게 말하거나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너도 겪어봐야 알겠지"라는 식의 복수심에 가득 찬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때문에 동생 J와의 대화는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 나에게 예의 없는 행동이나 말을 했다고 나도 그들과 똑같이 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을.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중심(코어)을 잘 유지하고 내 예의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강인해지고, 성숙해지며, 지혜로워지는 일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아침에 장을 보러 단골 마트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떤 손님이 계산대 직원에게 언성을 높이며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손님의 목소리가 하도 커서 장을 보는 내 귀에도 흥분한 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나 닭고기가 들어간 만두가 아니라 그 어떤 고기도 들어가지 않은 야채만두를 원한다고!!!" 그 손님은 손에 든 고기만두를 계산대 직원의 눈앞에 들이밀며 씩씩대고 있었다. 다행히 그 순간 매니저가 나타나서 그 손님을 데리고 만두가 있는 냉동 코너로 데려갔고 그 손님은 본인이 원하는 야채 만두를 찾은 뒤 서둘러 계산을 하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마트가 고요해졌다. 나는 쇼핑을 끝낸 뒤 계산대 앞으로 걸어갔다. 계산대 직원의 경직된 얼굴이 보였다. 평소 매우 밝고 친절해서 나를 포함한 모든 손님들과 항상 웃으며 안부를 묻고 대화하던 그녀의 굳은 얼굴은 매우 낯설었다. 내가 계산대 앞에 서자 그녀는 나와 짧게 눈을 마주친 다음 인사를 건네고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굉장한 갈등에 휩싸였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른 척 계산하고 나갈까?' '괜히 말 걸어서 속상하거나 민망하게 느끼게 만들지 않을까?' 계산대 앞에 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고 어느덧 계산을 마친 그녀는 내게 카드를 돌려주었다. 계산된 물건들을 에코백에 집어넣으며 몇 초의 시간이 내게 남아있었다. 마지막 물건을 가방에 넣으며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괜찮아요?"

당황한 목소리로 그녀가 대답했다. "네? 뭐가요?"

"아까... 그 손님이요. 화내고 나간."

나는 최대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말을 꺼냈다. 우리 둘을 제외하고는 근처에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녀는 숨을 내쉬고는 이내 말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손님이 본인이 고기만두를 들고 와서 계산해주었더니 다짜고짜 본인이 원하는 것은 고기만두가 아니라 야채만두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끔 한글을 못 읽거나 잘못 읽고 찾던 제품과 다른 제품들을 가지고 오는 손님들에게 친절히 설명을 해주고 제대로 된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그 직원은 자신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무조건 화를 내는 그 손님의 말과 행동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우리 둘 다 다행히 때마침 매니저가 개입해서 도와주어서 다행이었다 이야기하며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하나 예의를 실종한 사람들은 항상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결 풀린 그녀의 표정을 보고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해주며 결코 그녀 혼자만이 이런 일들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또한 그녀의 직업 때문에 그녀가 겪는 일이 아니며 그녀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생긴 일도 아니라는 것. 그냥 일어난 일임을. 그리고 나 또한 그냥 일어난 많은 일들에 속상하고 억울했던 적이 많았었다고. 나는 이어 말했다.


"만약 상대방이 본인의 가족이나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테죠. 돈을 지불하면 서비스 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죠. 그 누구도 갑도 을도 아니며 다들 나와 같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함부로 하지 못할 텐데 말이죠."


우리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비스직으로 일하며 받은 서로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말없이 위로를 건네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둘 다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나도 표정이 한결 부드럽고 따뜻해져 있었다. 나는 괜히 멋쩍어 한번 더 씨익 웃고는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기억하세요~ 저를 포함한 많은 손님들이 친절하고 상냥한 당신을 참 고마워하고 좋아한답니다. 그러니 힘내세요~~"


그녀는 평소처럼 밝고 씩씩한 목소리로 "네~ 고마워요! 조심히 잘 가요~"라고 대답했다. 희한하게 오히려 내가 더 위로를 받은 듯 마트를 나서는 내 마음도 한결 밝고 씩씩해진 기분이 들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기억하자~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그리고 오늘도 힘을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