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바오밥나무

by 이제은


오래간만에 오랜 친구 B를 만났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이 아주 짧은 단발머리로 나타났다. 배우 공효진을 닮은 그녀는 크고 동그란 눈이 매우 돋보였다. 나는 7년 전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호불호가 매우 강한 그녀가 나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고 매사에 확고한 말투와 망설임 없는 행동을 했다. 때론 그런 말투와 행동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또한 거두절미하게 딱 잘라 말하는 것이 정이 없어 보이기도 해서 서운하기도 했었다. 처음 1년 동안은 "도대체 B는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까?"라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와 사고방식과 태도가 매우 다른 그녀와 함께 지내며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조그만 낯섦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그녀가 스스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잘 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무엇이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확고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시간이 흘러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되어서도 가끔 연락하고 만나서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를 나눠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편하게 들어주는 친구 B. 나는 그런 B를 통해 "상대방은 이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상대방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꼭 나와 비슷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법을 배웠다.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하며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나와는 다른 그녀가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흥미로웠으며 무엇보다 그녀를 통해 나 스스로에 대해서 더 잘 알아가는 듯 해 좋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잘하고 잘 못하는지, 또 무엇이 나를 행복하고 괴롭게 만드는지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세상과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고 멋져 보이는 것들, 내 눈앞에 '최고'라고 들이미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나' 다운 것들을 찾아 헤맸다.


자연스럽게 나와 다른 사고방식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친구가 될 수 있는 멋진 기회가 생긴다. 닫혀 있던 마음이 열리고 가려졌던 시야가 넓혀진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일상에도 오후의 따뜻한 커피 한잔 같은 기분 좋은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그 여유는 삶에 활력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해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와 다름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과정에서 현재 '나'라는 나무의 나이테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과연 나의 나이테만큼 지혜로워졌는가? 성숙해졌는가?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과연 어떤 나무가 되고 싶은가?


예전의 나에게 물었다면 무조건 크고 튼튼한 나무가 되고 싶다 얘기했을 것이다. 이왕이면 멋지고 예쁘고 화려한 나무였으면 싶었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아무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는 그런 나무였으면 싶었다. 그런 나무가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만약 지금의 나에게 어떤 나무가 되고 싶은가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라 대답할까? 문득 어린 왕자에 나온 바오밥나무가 떠올랐다. 자칫 어린 왕자의 별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그 씨앗을 뽑아야 한다는 바오밥나무. 나는 이 순간 왜 그런 무시무시한 나무가 떠올랐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이런 바오밥나무에게도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며 왠지 바오밥나무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찾아본 바오밥나무에 대해 깜짝 놀랄만한 사실들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바오밥나무는 그 지역의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종입니다. 이들의 뿌리는 펌프처럼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수분을 끌어와 최대 10만 리터까지 몸에 저장하면서, 가뭄에 단비처럼 필요로 하는 동물들에게 물을 제공하죠. 실제 코끼리들은 바오밥 나무껍질을 씹어서 수분을 섭취한다고 합니다. 주변의 동물들에게 열매와 그늘을 제공하기도 하고, 피난처가 되기도 하죠. 척박한 환경에 살아있는 오아시스인 셈입니다... 마다가스카르의 말라가시어로는 레날라(Renala)라 불리는데 이 뜻은 ‘숲의 어머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바오밥나무는 생태학적인 가치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생계수단이고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더없이 귀중한 존재입니다. 만약 바오밥나무가 모두 사라진다면 우리가 익히 알던 초원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과학자들이 탄소동 위원 소법으로 측정한 가장 오래된 바오밥나무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림포포지역의 글렌코 농장에 있는 글렌코바오밥으로 약 1,835년의 나이를 가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근거로 바오밥나무는 2,000년 이상까지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자연재해와 맞닥뜨립니다.바오밥나무는 재생능력이 강해 상처를 입더라도 표피 등이 쉽게 재생되고, 불에 대한 적응력 또한 뛰어나 현지에서는 그을린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바오밥나무를 많이 만나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한결같은 모습으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고 살아가던 바오밥나무를 현지인들은 죽지 않는 나무로, 그래서 생명의 나무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모진풍파 견디며 1800년 살아가는 바오밥나무- 이경철 국립생태원 온실식물부 과장>



아... 나는 바오밥나무처럼 되고 싶었다. 바오밥나무의 장수 능력이 부러워서도 아니고 생명의 나무로 숭배되어서도 아니었다. 그을린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가는 그 모습이 대단하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코로나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오밥나무 같은 회복탄력성이 아닐까? 우리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재생시키고 불투명한 미래, 불안한 현재의 삶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나 스스로를 돌보는 것. 그리고 나의 주변 사람들 또한 바라볼 수 있고 그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바오밥나무의 경이로운 생명력과 한결같이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꿋꿋함과 용기를 배우는 길이 아닐까?



우리가 바오밥나무같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특히 지금같이 배려심과 책임감이 더없이 중요해진 시기에, 우리가 서로를 믿고 의지해야 하는 시기에 말이다. 우리는 함께 사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나의 안전은 곧 상대방의 안전이다.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상대방을 내 가족과 친구들과 다르지 않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더 안전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바람을 담아 글을 쓰며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누군가 바오밥나무같이 되길 바란다면 나 스스로부터 그런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변화는 작은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았다. 얼마 전 직장에서 힘들어하던 친구 Y가 생각났다. 코로나로 인해 부쩍 늘어난 업무량과 직장 상사와 동료들과의 잦은 마찰과 갈등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던 Y에게서 거의 두 달째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가 바빠서 연락을 못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오늘 생각해보니 문득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어색함을 무릅쓰고 나는 먼저 안부 문자를 보냈다.

띠링.

보낸 지 30분 정도 지나자 답장이 도착했다. 그녀는 아직도 바쁘게 지낸다고 했다. 같은 직장 상사와 동료들과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마음은 좀 어때?라고 용기 내 물어보았다. 초조한 마음에 문자를 보낸 후 물을 한잔 들이켰다.

띠링.

그녀는 괜찮다고 답장했다.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다만 그녀에게 몸을 잘 챙기라고 말했다. 잠을 푹 잘 자고 가족과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그리고 아무리 바쁘고 꼭 시간을 내서 좋아하는 일도 조금씩 해보라고. 그녀는 고맙다며 나에게도 건강을 잘 챙기고 즐겁게 지내는 것을 잊지 말라며 덧붙였다.


그래. 가장 중요한 것은 '너'니까!
Yes. The most important thing is you!



그날 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내가 더 큰 위로를 받은 듯했다. 마음이 몽글몽글, 말랑말랑 해지며 흔들리는 촛불에 녹는 초처럼 따뜻하게 녹는 듯했다. 음의 여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우리 마음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자신을 찾아주길,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밤이 지나가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어제의 몽글몽글 말랑말랑했던 마음은 다시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방패의 무겁고 딱딱한 단단함이 아닌 바오밥나무의 표피 같은 단단함이길 바라본다.




위의 기사는 8월 26일 2017년 한국일보에 실린 이경철 국립생태원 온실식물부 과장의 <모진풍파 견디며 1800년 살아가는 바오밥나무> 입니다. 바오밥 나무에 대해 귀한 정보를 알기 쉽고 유익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자연에 대한 저의 이해와 경외심도 더 커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커버 이미지: Image by baechi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