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동생 J와 한식들을 주로 만들어서 먹기 시작했다. 특히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시금치와 물냉이로 나물을 무쳐먹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밥상에 짜잔 하고 나타나던 나물들을 이젠 직접 사서 만들고 있다. 큰 냄비에 물을 끓이고 소금을 조금 넣는다. 그리고 그날 사온 신선한 시금치와 물냉이를 손질한 후 차가운 물에 씻는다. 그리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냄비에 넣어 적당히 데쳐낸 후 물기를 꼭 짜낸다. 그런 다음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소금 조금, 참기름 조금, 그리고 연두를 조금 넣고 버무린 다음 통깨를 올려서 마무리한다. 이렇게 만든 나물들은 매일 먹어도 맛있다. 신기하게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리운 엄마의 손맛이 느껴져서 그런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어떻게 다섯 식구를 먹일 음식들을 매일같이 하시면서 지치지 않으셨을까? 매일 장을 보시고, 재료를 손질하시고 데치고, 무치고, 굽고, 찌고, 볶고, 끓이시고. 그뿐만이 아니다. 매끼마다 설거지도 하셨다. 나는 가끔 설거지를 하면서 생색을 내었던 것이 매우 부끄럽게 느껴졌다. 매끼마다 더운 부엌에서 서서 일하셨던 엄마는 한 번도 생색을 내신적이 없다. 손에 생채기들이 생기고 주부습진이 생겨도 한결같이 맛있고 음식들을 만들어주셨다.
독립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온갖 배달음식과 외식을 하며 나름 '자유'를 만끽했다. '요새 누가 집에서 요리를 만들어먹어? 일하기도 바쁘고 피곤한데 집에 와서는 좀 쉬어야지.' 이것이 나의 20대 사고방식이었다. 사 먹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혀가 즐거운 음식들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마음 한구석은 항상 비어있었다. 집밥에 대한 그리움은 오랜 미국 생활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다행히도 작년에 이사 온 집 근처에는 한인마트가 있어 다양한 한식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조리된 국, 찌개, 그리고 반찬 등을 살 수 있었고 이제는 집에서 간편하게 한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퇴근 후 배달을 시키는 것이 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밥은 미리 해놓고 냉동실에 얼린 뒤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었고 국이나 찌개를 끓여서 반찬들과 먹었다. 그렇게 저녁 한 끼를 든든하고 건강한 한식으로 먹고 나면 속이 참 편하다.
그래서 나와 동생 J는 점심도 한식 도시락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점심에 쌀밥을 먹으면 식곤증 때문에 자주 혼이 났다. 그래서 두부를 부쳐서 간단히 간장 양념을 해서 밥 대신 먹기 시작했다. 나물 무침으로 야채를 섭취했다. 반찬으로는 녹두전이나 부추전을 넣거나 혹은 간단히 계란에 햄을 조금 썰어 넣어 파 기름에 볶은 후 페퍼론치네를 뿌려 만들었다. 느타리버섯과 표고버섯을 살짝 볶은 후 피망을 조금 썰어 넣고 간장 양념을 살짝 해서 만든 반찬도 식감이 참 좋다. 가끔 반찬들이 질리면 일본식 카레나 인도식 티카 마살라 (카레)를 만들어 먹거나 동생 J가 좋아하는 치킨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예전에는 자주 소시지나 스팸 등을 먹었는데 이젠 웬만하면 안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라면도 작년부터 안 먹기 시작하니 이제는 밀가루가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라면도 그렇듯이 소시지와 스팸들도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아침식단도 더 간단하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맛있는 아침이 먹고 싶었다. 나에게 맛있는 아침은 주로 여행을 가서 먹던 아메리칸 브랙퍼스트였다. 계란과 구운 피망, 그리고 베이컨에 매콤한 치폴레 마요네즈 소스를 곁들여 먹거나 생과일들이 올려진 플레인 요거트를 먹으면 저절로 행복해졌다. 나름 건강하고 신선하게 만들어 먹기 위해 이틀에 한 번씩 요리를 했다. 지금 보니 참 알록달록 예쁘게 준비했었던 것 같다. 음식에도 항상 색의 조합이 중요하다는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떤 음식을 만드시던 항상 식탁엔 다양한 예쁜 색상의 음식들이 올라갔다. 엄마는 주로 청고추와 홍고추, 청피망과 홍피망으로 마무리 장식을 하셨다. 보기에도 좋아야 맛도 좋다며 음식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드셨다. 그 영향을 나도 분명 받은 듯하다. 웬만하면 알록달록 예쁘게 만들고 싶다.
요새는 아침도 간단하고 가볍게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바나나와 견과류에 따뜻한 두유 라테를 곁들이거나 플레인 요거트에 직접 만든 그래놀라 (코코넛가루, 크랜베리, 그리고 메이플 시럽을 만들어 구운)와 가끔 베리들을 얹어서 먹고 있다.
위에 사진들은 결코 누구에게 자랑하려고 찍은 것들이 아니라 주로 부모님께 나와 동생 J가 잘 챙겨 먹는다고 보내는 사진들이며 한편으로는 나 스스로를 위한 기록들이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기에는 아직 한참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은 식단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사진첩을 보면서 내가 어떤 음식들을 어떻게 만들어 먹었는지 알 수 있는지 확인하고 새로운 식단을 계획할 때 참고한다.
무엇을 먹는지 말하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
-앙텔므 브리야 샤바랭
먹는 것은 참 즐겁고 행복한 일인 동시에 항상 고민스러운 일이다. 내가 지향하는 두 가지 중 첫째는 무엇을 먹던지 적당히 먹는 것, 즉 소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가끔 먹고 싶은 음식들은 지나치지 않게 먹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깨끗하고 건강한 식단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둘째는 무엇을 먹던지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것이다. "무엇을 먹는 것보다 어떻게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단다." 예전에 할머니께서는 가끔 음식이 덜 맛있게 만들어졌거나, 메뉴가 호화롭지 않거나, 혹 양이 좀 모자라거나 하는 날에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금방이라도 입을 삐죽거리며 반찬투정을 하려다가도 할머니의 말씀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평불만은 금세 눈 녹듯 사라지고 이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맛"있는 외식을 하지 않고 그저 집에 있는 재료들로 소박한 음식들을 만들어 먹어도 함께 먹어서 행복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조금의 부족함과 모자람이 오히려 우리들 마음을 더 풍요롭게 채워주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때로는 부족함속에 숨겨진 그 나름의 미(美)를 찾고 인지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가꾸어나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무엇을 먹던, 무엇을 입던, 또 무엇을 하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심플 라이프를 향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 습관으로 만드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