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빈대떡과 명상

오늘의 책: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by 이제은



오늘은 동생 J와 내가 점심 도시락으로 잘 먹는 녹두빈대떡에 도전해보는 날이었다. 재료구입에 앞서 유튜브에서 여러 동영상들을 보았다. 녹두빈대떡 하나를 만드는데도 제각각 나름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다양한 레시피들을 보고 난 후 '음, 이런이런 재료들로 이렇게 이렇게 만들면 괜찮겠군!'이라고 머릿속에 나름 계획을 세웠다. 아침 일찍 장을 보러 가서 재료들을 사 와서 열심히 손질 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녹두빈대떡 가루를 마트에서 살 수 있었다. 녹두를 직접 갈아서 만들면 참 좋았겠지만 믹서기도 없었을뿐더러 직접 손질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매우 감사한 마음으로 녹두가루를 사 왔다. 가루에 물을 적당히 부어 재워놓은 뒤 나머지 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원,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너무 쉽게만 생각했던 것인지, 혼자서 무작정 도전해서 그런 것인지 눈앞의 묵은지 세 포기를 바라보는데 더럭 겁이 났다. 일단 부엌을 압도하는 묵은지의 강력한 냄새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몇 초 동안 서서 묵은지를 내려다보았다. "너를 어쩌면 좋겠니..." 갑자기 슬픈 사랑노래의 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엄마에게 SOS를 요청했다. 이럴 때는 역시 엄마가 최고다. 엄마의 말씀대로 두 포기는 밀폐된 용기에 잘 싸서 냉장고에 넣고 나머지 한 포기는 물에 살짝 씻어낸 다음 물기를 꼭 짜내고 잘게 잘게 썰었다. 돼지고기도 맛술과 미림으로 잡내를 제거했다. 고사리는 이미 나물로 무쳐진 것을 사 왔기 때문에 따로 손질을 하지 않았고 파는 송송송 썰어 준비했다. "이제 대망의 섞을 일만 남았군!" 나는 비장한 자세로 양손에 위생장갑을 끼고 걸쭉해진 녹두 반죽 위에 재료들을 얹었다.


숙주가 빠져서 살짝 아쉽지만 넉넉히 들어간 재료들.


생에 처음 보는 낯선 재료들의 조합에 나는 잠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결코 믿음을 잃지 않았다. 분명 맛이... 맛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고루고루 섞어주었다. 섞고 난 다음에도 딱히 확신이 들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법! 나는 명절 때 엄마와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본 기억을 더듬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달군 뒤 조심스럽게 반죽을 올렸다. 나이가 들어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은 내가 손이 크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음식을 할 때에는 5-6인분은 해야 충분하다고 느낀다. 동생 J는 그런 나를 가끔 두렵다는 듯이 쳐다본다. 나도 내가 가끔 두렵다. "괜찮아, 시행착오야. 암 그렇고 말고."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음번엔 3-4인분만 해야지 마음먹는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이왕 부치는 거 넉넉히 부쳐야지." 라며 두 개의 프라이팬에서 열심히 구워냈다. 첫 번째 빈대떡들은 아래 왼쪽 사진처럼 둥그렇고 두툼하게 완성되었다. 나는 자신감을 얻고 두 번째 판에 반죽을 올리는데 아뿔싸!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반죽을 너무 많이 부워버렸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일단 크게 빈대떡들을 구워낸 다음 피자를 자르듯 조각을 내었다 (아래 오른쪽 사진). "휴우, 다행이다~" 그 후로도 세 번째 네 번째 판도 그럭저럭 노릇하게 잘 구워냈다. 역시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하는 법이다.



왼쪽이 둥그렇고 두툼하게 된 녹두빈대떡, 오른쪽이 피자 조각처럼 된 녹두빈대떡


그렇게 만들어진 둥그런 녹두빈대떡들과 조각 녹두빈대떡들이 사이좋게 나란히 식혀지는 동안 늦은 점심을 먹으며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었다.


필자는 예술을 '인간의 감정을 일으키는 무엇'이라고 정의한다. 마음속의 잔잔한 호수처럼 조용하다가도 어떤 노래를 듣거나 소설을 읽으면 마음속에 새로운 감정이 솟아난다. 그러면서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과 자신이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배불리 먹고 잘 잤다고 인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 가슴속에 무엇이 됐든 감정이 솟아날 때 비로소 인감됨을 느낀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 중에서


요리를 할 때마다 나는 인간됨을 느낀다. 내 안에 섞여있던 여러 가지의 감정들이 제각각 꿈틀거리며 솟아났다가 빠져나감도 느낀다. 순간 솟아오른 감정을 밀어내거나 억누르지 않고 그냥 솟아오르게 내버려 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감정은 파도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미끄러져 내려간다. 무의식적으로 참고 있었던 숨을 입으로 깊게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코로 숨을 들이마쉴 때는 맛있는 음식의 냄새에 취했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빈대떡의 고소한 냄새. 가장자리를 살며시 뜯어서 맛을 보았다. "오메, 참으로 기가 막히는 맛 인디?" 고소한 빈대떡 맛을 보니 구수한 사투리가 절로 나왔다. 가슴속에서 행복함이 솟아올랐다.



나는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기본 레시피를 유지하되 내가 원하는 대로 나만의 방식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실험해 볼 수 있다는 것.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지친 몸과 마음을 단순노동으로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야채들을 손질할 때 손에 닿는 시원한 물, 서걱서걱 사각사각 소록소록 썰리는 재료들의 소리, 폴폴폴 끓여지고 타닥타닥 볶아지는 재료들의 냄새, 요리가 됨에 따라 서서히 옷 색깔을 바꿔 입는 재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입에 넣어 조용히 음미하는 순간들까지. 요리가 힐링이 되는 이유는 다양한 오감의 자극과 그 자극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 요리가 힐링이 되는 이유는 명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리를 할 때에는 온전히 요리에만 집중을 해야 한다. 날카로운 칼날에 손이 베지 않도록 집중해서 재료를 다듬어야 하고, 재료에 상한 부분이 있으면 손질을 해야 한다. 또한 펄펄 끓는 물에 재료를 데칠 때에도, 음식의 간을 볼 때에도, 음식을 예쁘게 옮겨 담을 때에도 집중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마무리 뒷정리도 미루고 싶은 욕구를 꾹 참고 함께 해내면 비로소 요리가 완성이 된다.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명상에 들어가게 된다.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던 사소한 근심과 불안들은 요리를 시작함과 동시에 잠잠해진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있는 것들에 철저히 집중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매일 하는 요리도 훌륭한 명상의 행위가 될 수 있다.



요리를 마친 뒤 노곤 노곤해진 몸과 마음을 노릇노릇한 녹두빈대떡 한 장으로 충전했다. 안타깝지만 술은 잘 못 마시기 때문에 섭섭한 마음을 탄산수로 달래 보았다. 톡 쏘는 탄산수가 빈대떡과 아주 잘 어울렸다. 이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충분히 만끽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렇게 '살아있는 순간'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런 '살아있는 순간'들을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한다. 온전히 느껴야 한다. 자칫 지루해져 버릴 수 있는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제대로 숨을 쉬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출렁이는 감정의 파도들을 바라보게끔, 인지하게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노릇노릇 구워진 녹두빈대떡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참 풍요로워졌음을 느꼈다. 넉넉히 만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 J와 이웃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신이 났다. 나는 다시 한번 유현준 작가 책의 글귀를 떠올렸다. "배불리 먹고 잘 잤다고 인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 그렇다면 인간다워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인간다워진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삶 속에서 우리는 한 뼘씩 인간다워진다. 한 뼘씩 더 성장하는 것이다. 녹두빈대떡 덕분에 나도 오늘 한 뼘 더 인간다워짐에, 성장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이 글에 소중히 담아보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과 함께 녹두빈대떡을 나누어먹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