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황급히 올려 보는 듄 리뷰
‘영화를 보고 압도당한 적이 있나?’
영화관에서 <듄2>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감독과 관객과의 기 싸움에서 관객이 졌다는 게 바로 이런 건가 싶은 묘한 패배감까지 밀려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를 보고 이런 기분을 느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신들, 인간성이 배제된 SF적 세계관이 주는 묘한 기괴함, 아름다운 자연 경관, 상상한 적 없는 거대한 스케일에 감탄만 하다 끝난 기분이었다.
<듄1> 때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듄2>는 어느 영화에서도 느끼지 못한 경이로움을 느꼈다는 점에서 확실히 '1편보다 나은 2편'임에 틀림 없다. 게다가 SF 영화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듄2>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남편의 표현대로 이 영화는 SF지만 로판(로맨틱 판타지)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많이 알면 그만큼 많이 보인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내가 느낀 이런 감격에 가까운 감탄을 느끼고 싶다면 원작 <듄>에 대한 정보도, 예고편도 찾아보지 않기를 추천한다. 내가 사전에 준비한 것은 <듄1> 뿐이었다. 감독도 <듄1> 이상의 것은 담지 않았기 때문에 딱 그만큼만 알고 봐도 충분한 느낌이다.
안타까운 점은 1회차를 일반관에서 봤다는 것. (그만큼 <듄1>이 원작을 모르는 내겐 평범한 느낌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2회차는 용산 아이맥스에서 나름 괜찮은 좌석에서 봤지만, 개인적으로 일반관에서 본 1회차의 감동보다는 덜했다. 그렇기 때문에 1회차를 용아맥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1회차를 개봉 주에 봤는데, 이 글을 현생에 치어 거의 막 내릴 때쯤 올린다는 것이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듄2>를 봐 볼까?' 하는 마음이 들겠나 싶지만 혹시 누군가 있다면 일반관이어도 좋으니 기회가 있을 때 영화관에서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스포 있음**
<듄2>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굉장히 함축적인 영화라는 거였다.
내가 느끼기에 영화는 소설에 가깝다. 세계관과 인물 배경에 대한 설명을 곳곳에 녹여서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안내한다. 관객들이 영화 속 세상에 들어가려면 이런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정보들을 노골적이지 않게 전달하는 영화일수록 관객들은 세련됐다고 느낀다. 소위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등장해서 ‘그 사람은 이런 이런 사람이잖아!’라는 노골적인 설명투가 없는 영화 말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반드시 소설의 산문에 가까운 설명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소설이 산문의 집합체라면 영화는 인물 간의 설정과 사건 진행에 관한 신들의 집합체다.
하지만 <듄2>는 소설보단 ‘시’에 가까웠다.
액션
<듄2>가 함축적인 이유는 체감상 대사가 나오는 신과 대사 없는 신이 1:1의 비율에 가깝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말은 아끼고 직접 보여 주는 작품인 만큼 액션 신 역시 다수 등장한다. 시작하자마자 관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첫 액션 신, 폴의 변하는 입지를 보여 주는 프레멘족의 습격 신, 관객이 체험하는 듯한 속도감이 느껴지는 모레 벌레 신, 경기장 대결 신, 미래 총격 전, 대규모 전쟁 신, 근접 전투 신 등 새로운 개념의 SF 무기와 장비들로 싸우는 새롭고 화려한 액션은 이미 눈이 높아진 관객들에게도 만족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파격적인 각색과 편집
이 영화가 시라고 느껴지는 데에는 편집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듄2>는 여느 영화보다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함축적인 영화다. 이게 가능한 건 아마도 각색의 힘일 것이다.
이건 영화가 끝나자마자 서점에 들러 원작 <듄>에서 영화 속 장면을 훑어보면서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라반의 사망을 폴에게 보고하는 장면이나 마지막에 페이드 로타가 독을 사용한 장면 같이 자잘한 신이나 설정은 굳이 넣지 않았다.
또한, '6개월 후'와 같은 화면 자막을 넣거나 '너가 온 지 벌써 1년이 지났어'와 같은 대사 없이 그저 액션 신 하나로 폴이 프레멘족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든 변화를 보여 주고 폴의 엄마 제시카의 임신 상태로 시간의 흐름을 유추할 수 있게끔 한다.
액션 신의 편집도 상당히 새로운데, 일반적인 하이라이트 전쟁 신에서는 전투의 기승전결을 보여 주며 전쟁의 진행 상황에 힘을 주기 마련이다. 어떻게 전세가 오고 가며 누가 위기를 더 영리하게 극복해냈는지가 주된 스토리라인이 된다. 하지만 <듄2>는 전쟁의 처음과 끝에만 힘을 줬다.
전쟁이 시작하는 순간, 폴의 뒷모습을 슬로까지 걸며 비장한 시작을 강조해서 보여 주지만, 사실상 여느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부분은 가볍게 지나간다. 그리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궁 안에 등장하는 폴의 모습으로 전쟁이 끝났음을 알린다.
심지어 주인공의 최대 숙업인 복수 신마저도 담백하게 지나간다. 대신 연이어 등장하는 일대일 전투를 더 자세히 묘사하는데, 가장 중요한 신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감정적인 자극하는 음악이나 비현실적인 액션도 넣지 않고 되려 담백하게 그려낸다.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이런 이야기 진행은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불필요하지만 모두가 힘을 주는 부분에선 오히려 힘을 확 빼고, 강조하고 싶은 곳에는 아름다운 미장센 하나만을 보여 주는 과감함 때문에 어찌 보면 새로울 것 없는 스토리라인이 극적으로 느껴졌다.
보통 복수 이야기라 함은 숙적을 죽이는 것이 핵심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되면 주인공은 비장한 대사를 줄줄 읊다가 기습을 당하기도 하며 인위적인 반전과 클라이막스를 유도한다. 그럼 관객들은 생각한다. '할 말이 있으면 어디 하나라도 못 쓰게 만들어 놓고 말하지.' 수 많은 이들을 죽이면서 힘들게 여기까지 와 놓고 숙적 앞에만 서면 마음이 여려지는 혹은 오만해지는 주인공을 참 많이 본다. 하지만 폴은 그렇지 않다. 숙적을 죽이는 순간에 과도하게 비장한 대사를 줄줄 읊는 실수 따위 하지 않는다. 그저 간결하게 할 일을 할 뿐이다. 그 자태가 너무나 능숙하고 일상적인 것처럼 보여서 섬뜩하게 보일 정도다. 그리고 이런 깔끔한 묘사가 여느 비장한 장치로 무장한 신들보다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어린 왕자가 왕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보통 어린 왕자가 가장 잘 따르는 스승이나 아버지는 가장 중요한 결전을 눈앞에 두고 죽는다. 마치 어린 왕자가 고독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당위를 억지로 부여하듯. 폴에게도 역시 이런 아버지 같은 존재가 있다. 폴은 프레멘 내 폴의 입지를 앞장서서 넓혀 주는 스틸가와 우정을 쌓았고, 결전을 앞두고는 오랜 스승과도 재회한다. 하지만 이 중 누구도 폴이 왕으로 성장하기 전에 돌연 죽는 일따위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덕에 폴은 오히려 클리셰적이지 않은 당위를 부여받고 고독한 메시아로 성장한다.
<듄2>에는 개인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슬로 모션 걸린 역동적인 장면,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풍경, 극명히 대비되는 압도적인 규모의 미래 세계와 사막, 극도의 불쾌함을 유발하는 검은 태양의 세상 등. 감독의 전작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면 드니 빌뇌브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SF의 풍경이 무엇인지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는데 <듄2>에서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미학을 완성형 상태로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는 선이 얇고 여백이 느껴지는 역동적인 일러스트 느낌의 미장센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만화건 드라마건 영화건 이런 류의 스틸컷을 아카이브에 야금야금 모았는데 <듄2>는 이런 장면들의 집합체와도 같았다. 가볍게 점프하는 장면, 펄럭이는 망토, 나부끼는 깃발, 바람 부는 사막 언덕, 홀로 모레 벌레 위에 우뚝 선 모습처럼 내 맘속을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보여 주어 아름다움은 만끽하게 해 준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서 딱히 빛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런 내가 느낄만큼 빛의 활용 역시 눈에 띄게 훌륭했다. 실제 사막 하늘과 같은 은은한 빛은 자연광을 그대로 담은 느낌을 주며, 눈이 피로할 정도로 쨍하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한 장면이 등장해서 관람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새벽, 한낮, 해 질 녘, 흐린 날씨의 사막 하늘을 섬세하고 리얼하게 표현해서 뮤트톤 사막의 단조로움보다는 자연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검은 태양이 뜨는 하코넨 행성 역시 굉장히 인상적이다. 검은 태양의 행성에서는 빛이 닿는 곳이 오히려 흑백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해 과감하게 색감을 빼기 때문이다. 햇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등장 인물이 걸어가는 장면을 컬러에서 흑백으로 서서히 전환시킴으로써 이곳 행성의 설정을 세련되게 표현한다. 비인간적인 흑백 화면속에서 과도한 인물 클로즈업은 불편함을 유발하고, 자로 잰 듯한 흑백 세상에서 보여 주는 잔인함은 유혈낭자한 화면보다 더 강렬한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공포 영화도 그다지 스트레스 없이 보는 편인데 1회차 관람할 때는 이 장면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만큼 하코넨의 잔인함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영화적 장치였다.
영화의 초반은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분명 프레멘은 실존하지 않는데 실존한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프레멘족의 정체성이 깊이 내재되었음을 보여 준다. 실존하지 않는 프레멘족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특유의 원주민 같은 행동은 이미 체화된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런 그의 연기는 이 방대한 세계관의 안내자처럼 극 전반에서 몰입을 유도한다.
이후에 놀랐던 건 단연 티모시 샬라메의 연기다. 그가 출연한 여러 작품을 봤고, 그 중 <레이니 데이 인 뉴욕>과 <더 킹: 헨리 5세>처럼 인상 깊게 본 영화도 있지만 티모시의 연기에 감탄한 적은 없었다. 그냥 그가 출연한 영화가 좋았던 거지 그의 연기는 깊게 생각해 볼 정도로 인상적이진 않았다. 물론 매력이야 익히 알았고 작품 보는 눈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의 연기를 평가하자면 '거슬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감탄이 나올 정도도 아니다' 정도.
하지만 <듄2>에서는 달랐다. <듄1>과 <듄2> 초반의 폴은 멸문한 공작가의 도련님으로서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소년미를 지닌 캐릭터로 기존 티모시 샬라메의 필모에 크게 벗어나지 않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듄2>에서는 어느 사건을 기점으로 폴의 눈빛이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씩씩한 도련님에서 세상의 비밀을 알아버린, 수많은 짐을 홀로 짊어진 카리스마적 리더로 돌변한다. 우렁찬 발성과 거침 없는 몸짓, 쓸쓸하면서도 단호한 눈빛으로 폴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음을 연기력으로 명확하게 보여 준다. 후반부의 폴은 단 한순간도 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관객을 완전히 사로잡아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스틸가 대신 극을 끌고 가는 핵심 역할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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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정보를 접하지 않고 영화를 보려고 했지만, 한 기사 타이틀에서 폴을 ‘예수’로 표현한 걸 봤다. 확실히 중동이 연상되는 배경에 폴이 예언 속 메시아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폴은 확실히 프레멘족에겐 예수와 같은 존재인 것은 맞다. 억압된 현실 속에서 해방하는 구원자적 존재, 그리고 메시아가 나타났음을 알리는 예언 속 징후들까지. (성경에선 '표적'으로 번역됐지만 영어로는 동일하게 signs.)
하지만 폴 자체는 예수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대표적인 차이점은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말하느냐이다. 예수는 이 땅에 온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말한다. 어느 시점까지는 비밀로 하라고 말씀할지언정 부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폴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후에 프레멘의 리더가 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인정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믿기 때문인지 아니면 메시아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충실히 연기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인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당시 유대인도 프레멘족처럼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지배를 받기 전부터 내려온 예언임에도 예언 속 메시야가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해방해 주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예수가 말하는 ‘구원’은 유대인이 생각한 해방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폴은 프레멘이 원하는 구원, 곧 왕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해방과 독립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된다.
폴을 예수와 비슷한 캐릭터로 생각이 된다면, 이런 차이점도 함께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