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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사라 Mar 10. 2022

엄마는


 손끝이 춥다. 살갗에 닿는 바람이 찹다. 눈도 뻑뻑한 환절기가 와버렸다. 그렇다. 소아 시럽의 계절이 왔다. 


 이맘때면 찬 바람을 이기지 못한 아가들이 감기에 걸려 응급실에 자주 온다. 어린이집의 한 친구가 코를 훌쩍거리다 반 전체가 코를 훌쩍이기도 하고, 날이 좋아 놀러 간 놀이공원에서 열을 데려오기도 하고. 각자 아기 사정은 달라도 열을 내리는 시럽은 정해져 있으니 소아 응급실에서 나오는 처방은 대개 비슷하다. 해열제 두 종류와 항생제 시럽까지. 내 종아리 반 만치도 안 오는 아기들이 아픈데 놀라지 않을 부모 어디 있으랴. 보는 나도 이렇게 안타까운데 내 새끼 바라보는 엄마 마음은 어떨까? 종종거리는 보호자의 모습을 보자니 나도 우리 엄마가 이렇게 키웠을 텐데 하고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 이야기.      


엄마는 언제부터 엄마였을까?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을 텐데, 언제부터 본인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우선이 되었을까?      


 우리 엄마 얘기를 해보자면 우리 엄마는 철저한 직업여성이다. 어렸을 때 아침 메뉴는 늘 시리얼, 호랑이 기운이 펄펄 나는 콘푸로스트였다. 하지만 그 맛있는 콘푸로스트도 2년을 우유에 풍덩 담겨버린 상태로 먹게 되면 이건 거의 올드보이 최민식의 군만두 수준이 되어버린다. 어린 나의 지속적 민원으로 바뀐 메뉴는 초코 첵스였다.     


울 엄마는 요리를 못한다


 울 엄마가 요리 못한다는 말이 왜 이리도 자랑으로 느껴졌는지. 중2가 되지도 않은 꼬마가 이른 중2병이 왔는지,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랑 ‘다르게’ 바쁘고 요리도 못하는 게 마치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으레 그렇듯이 남들과 다르다는 게 난 좀 쿨 하다고 느꼈나 보다. 하지만 그 말 안에는 결핍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집에서 아귀찜을 해 먹었다는 친구네 이야기에서, 이번 해 김장은 파김치까지 한다는 말에서 내 마음속엔 부러움이 차곡차곡 쌓였다. 우리 엄마는 김치찌개랑 된장찌개 끓이는데.(아귀찜은 스무 살 때까지 먹어본 적이 없다.) 왜 우리 집은 김장을 안 하지?(할머니가 주시거나 사 먹었다.) 이런 마음은 왜 비 오는 날에 학교에 나 데리러 안 오지?부터 더 커서는 왜 우리 엄마는 입시설명회에 안 가주지? 까지 철없는 생각은 끝도 없었다.      


엄마의 삶은 한 번이니까.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니까. 가정주부이면서 직업여성의 삶을 동시에 사는 건 양립할 수 없음을 지금의 나는 이해한다. 그런데 정말로 이해한 것일까?      

어떨 땐 그런 상상을 했다. 우리 엄마가 가정주부였다면 어땠을까?

으스대는 마음으로 엄마를 소개했다. 생각해보면 각자 아기 사정이 다르듯이, 각자 엄마 사정이 다를 뿐인데 그 시절 내 친구의 어머니들은 대개 가정 주부셨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할 시간이 없던 거였다. 직장인이 된 지금의 나는 엄마가 퇴근하고 저녁을 차린 게 존경하다 못해 경이롭다고 느낀다.      

일터에서 터지는 (터지다 못해 넘실대는) 온갖 풍파들을 다 겪고 너덜너덜 집으로 들어와도 내 한 몸 온전히 쉬이 쉬지 못하고 다시 엄마로 하루를 시작한다. 순서는 아침에 먹고 남은 설거지부터 시작. 설거지하며 한쪽에는 아침에 미리 끓여놓은 된장찌개를 데운다.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은 아주 편하게 티브이 시청 중. 똑같이 퇴근하고 들어온 딸내미는 뭐하는지 제 방에서 감감무소식. 이 대단한 일을 30년이 넘게 해온 것이다. 아주 복장이 터질 만한데, 그런 내색 하나 없다. 심지어 요리 못 한다고 했지만 엄마 밥은 사실 내 입맛엔 아주 맛있었어.   


엄마 미안해.


엄마라는 건 사실 상상도 못 한 영역이다. 어렴풋이 그려본 거라곤 슈퍼맨이 돌아오는 미디어를 통해 접해본 간접 육아 체험 정도. 내가 보고 배운 엄마라곤 우리 엄마밖에 없어서 미디어에서 그려낸 가정 친화적이고 따뜻하게 양육하는 엄마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그런데 자신이 없기 이전에 의문도 든다. 이 세상에는 우리 엄마 같은 엄마도 많은데!! 우리 엄마는 엄마 아닌가?! 나는 엄마처럼 직업여성일 것이고, 일반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엄마가 될지는 추후 고민할 것이다. 엄마에게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세상이 규정한 '엄마'라는 모습에 엄마가 맞지 않는다며 마음속에선 미워했다. 직장과 가정을 양립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슈퍼우먼이 되기를 기대했다. 


나라고 잘 해낼 수 있을까? 엄마만이 살아온 그 삶을 감히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나의 모습에 엄마라는 역할이 추가되었을 때 내 모습을 어떨지 그려지지 않는 모습을 뒤로하며 지난 내 모습을 반성한다. 


엄마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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