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시작된 변화, 사람이 만드는 미술관

사람, 인천 <6> / 구영은 우리미술관 큐레이터

골목에서 시작된 변화, 사람이 만드는 미술관

“예술은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골목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도시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졌다. 자동차 소리 대신 사람의 기척이 먼저 느껴지고, 오래된 담벼락과 낮은 집들이 이어진 길 끝에서 작은 공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미술관’의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삶이 먼저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주민들이 손수 빚은 도자기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옥상에는 천연염색한 옷들이 봄빛 아래 가지런히 바람을 맞고 있었다. 누군가는 작품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그 옆에서 붓을 들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감상과 창작이 구분되지 않는다. 전시와 일상이 나뉘지 않는 공간. 인천 동구 만석동, 우리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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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었던 공간, 참여로 열리다


우리미술관은 2015년, 골목 한 켠의 작은 빈집에서 시작됐다. 낡은 집을 전시 공간으로 바꾼다는 발상은 단순한 시설 조성이 아니었다. 도시의 중심에서 밀려난 공간,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운 길은 아니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주민분들에게는 낯설었어요.”


고령 주민이 많은 동네에서 미술관은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었다. 문턱은 낮았지만, 마음의 거리는 멀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하는 공간으로.

도자기, 공예, 그림 수업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손에 흙을 묻히고, 색을 입히며 시간을 쌓아가는 동안 공간에 대한 인식도 함께 달라졌다.


낯설었던 공간은 그렇게 ‘드나드는 공간’이 되었고, ‘지나치는 곳’에서 ‘머무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는 미술관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계단에는 주민들이 만든 도자기들이 놓여 있고, 옥상에는 천연염색한 옷들이 바람을 머금고 있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은 어느 순간 참여자가 되고, 참여자는 다시 창작자가 된다.


“이제는 주민분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고, 전시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곳에서는 ‘작가’와 ‘관람객’의 구분이 크게 의미를 갖지 않는다. 참여하는 순간, 누구나 창작자가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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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전시장이 되고, 마을이 다시 살아나다


우리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이 아니라 ‘방식’에 있다. 이곳에서 예술은 건물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골목으로 스며들고, 사람 사이를 흐른다. 레지던시 작가는 작업실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주민을 만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관계 속에서 작업이 확장된다.


“이 공간은 작가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미술관의 경계는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골목이 전시장이 되고, 사람의 삶이 작품이 된다. 우리미술관이 자리한 괭이부리마을은 인천의 대표적인 구도심이다.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공간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인구가 줄고 빈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빈집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남아 있는 분들에게는 그게 공허함으로 다가왔어요.”


그 공허함을 채운 것이 바로 예술이었다. 우리미술관은 새 건물을 짓지 않았다. 대신 비어 있는 공간을 다시 썼다. 낡은 집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고, 오래된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되살렸다. 건축이 아니라 콘텐츠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문화예술은 일부 사람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혼자 있으면 쥐새끼 한 마리 안 지나갔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좋다.”


그 말은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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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위에 쌓는 미래, 예술마을로의 확장


구영은 큐레이터는 이 마을이 가진 이야기를 다시 바라봤다. 괭이부리마을에는 ‘호랑이를 닮은 마을’이라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는 이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풀어냈다. 초등학생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동화책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예술을 배우고, 동시에 자신이 사는 마을을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마을은 더 이상 낡은 동네가 아니라, 이야기가 살아 있는 공간이 되었다.


우리미술관 옆에는 과거 일제강점기 ‘조선기계공작소’ 기숙사 건물이 남아 있다. 근대 산업의 흔적이자 노동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장소다. 그 건물 역시 철거되지 않았다. 대신 리모델링을 통해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과거를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의미를 쌓는 방식.


“단순히 미술관 하나가 아니라, 이 지역 전체가 문화로 살아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건물 하나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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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통해 확장되는 도시


그날, 미술관을 나서기 전 작은 달력 하나를 건네받았다. 우리미술관에서 제작한 달력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그 안에는 주민들과 함께 만든 작품들이 한 장 한 장 담겨 있었다. 아이들의 그림, 어르신들의 도자기,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다양한 창작물들. 그저 결과물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었다.


사진의 구도와 색감, 글자의 색과 서체, 여백의 배치까지. 작은 달력 안에는 이 공간이 지나온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손에 쥐고 넘기는 순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은 전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을 기록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미술관의 변화는 하나의 문화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유휴공간을 되살리고, 주민이 참여하고, 지역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가는 과정. 그 모든 흐름이 이어지며 도시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시를 ‘보는 도시’에서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로.


우리미술관은 여전히 골목 안에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변화는 골목을 넘어 도시로 번져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과 공간을 연결해온 한 사람이 있다.

구영은 큐레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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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미술관


◎ 인천광역시 동구 화도진로 198번길 6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10:00 - 18:00

- 목요일은 14:00 - 18:00

(입장은 관람시간 종료 20분 전까지 가능)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및 법정 공휴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연휴 또는 구청장이 정하는 휴관일


◎ 인천 동구청이 운영하는 지역 밀착형 공공미술관으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에 위치해 있다. 2015년 마을의 공가를 전시 공간으로 조성해 출발했으며, 2025년에는 폐공장을 리모델링해 전시·교육·커뮤니티 기능을 갖춘 복합 문화공간으로 확장됐다.

◎ 전시와 함께 주민 참여형 문화예술 교육,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예술가와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드는 생활형 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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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콘텐츠기획관실에선 <굿모닝인천>, <Incheon Now>, <仁川之窗 인천지창> 세 종류의 매거진을 발행한다. 발행인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8년 연속 대한민국 커뮤니케이션 대상 수상, 창간 15주년의 영문 매거진, 대한민국 최초의 지방정부 중문 매거진. 훌륭한 콘텐츠와 공감의 글을 나누고 싶지만 아직 ‘그게 뭐야?’라는 시민들이 태반이다. 인천이라는 아이템의 보고(寶庫)에서 아껴둔 보물들을 하나 하나 꺼내 알리고 싶다. 가자! 인천시민과 외국인을 위한 열린 소통의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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