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여 년 전, 내가 신임교사로 갓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사범학교 성적이 나빠서 졸업하고 6개월을 쉬었다.
그러다 어느 교사가 3개월 다니다 사직한 국민학교 자리에 발령이 났다.
버스를 오래 타고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아서 도착했다.
그 마을은 버스가 하루 한 번 다니는 오지였고, 밤에는 집마다 등잔불로 어둠을 밝히는 곳이었다.
학교는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쓰고 조회했다.
나는 1학년을 담임하게 되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인 앞에서 교장 선생님이 나를 소개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우리 반이 선 곳을 바라보았다.
맨 앞에 아주 작은 아이가 서 있었다. 1학년임을 감안해도 작은 아이라서 누가 동생을 데리고 왔나 생각했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에 들어가니 그 작은 아이가 칠판 앞에 책상을 놓고 올라서서 교과서에서 오늘 배울 부분을 베껴 쓰고 있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내려와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는 꽤 놀랐고 어떤 아이인가 궁금했다.
선생님들 말을 들어보니 그 아이는 동네 유지의 딸인데 몸이 쇠약해서 13살에 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등이 굽어서 더 자라지 못했고, 1학년보다도 작게 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도 새 선생님이 왔다고 아이들을 자습시키고 있었다. 아이들도 그 아이 말을 잘 따랐다. 그날 4시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할 때도 아이들은 모두 그 아이를 따라 교문 밖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갔다.
담임 선생님이 없는 3개월이 그 아이가 있어서 잘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그 아이는 반 아이들을 잘 통솔했다. 그 아이가 무얼 하자고 하면 아이들은 잘 따라 했다. 편치 못한 몸으로 공을 차도 그 아이는 앞장서서 씩씩하게 뛰었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따라다녔다. 기특하고 신기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아프게도 건강하지 못했다. 내가 부임한 뒤로는 자주 결석했다.
그 아이는 척추장애인이었다.
몸이 그렇다면 주눅 들고 소극적일 수 있는데, 그 아이는 오히려 당당하고 건강한 아이들보다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 학교에서 2년 동안 근무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학년을 담임할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났다.
요즘은 학교 폭력이 큰 문제가 되고 젊은 교사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TV 드라마를 봐도 친구를 하인처럼 부리고 침을 뱉고 때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 아이가 생각나고, 내가 오지의 학교에서 중간에 담임을 맡아 첫 교직 생활을 무사히 할 수 있었던 건 그 아이 덕분이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지금은 일흔 살이 넘고 여든 살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겠지. 잘살고 있을까?
소식을 알려고 그 당시 제자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다.
건강한 몸으로도 힘든 게 인생살이다. 장애의 몸으로 그 아이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아마도 1학년 때처럼 든든하게만 살지는 못했을 것 같아 마음 아리다.
아이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낯선 곳에 처음 부임해 큰 어려움 없이 교직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네 덕분이었고, 그래서 몹시 고맙다.
그리고 젊었던 신임 선생님이 늙어서 머리 하얀 할머니가 되도록 너는 신기하고 강건한 아이로 마음속에 남아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