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

by 사오십년대소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유교 정신을 본받아 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하며 사셨다. 부모의 뜻에 순종하는 효자였다.

반면 아버지는 유교 정신에서 벗어나 아들딸 구별하지 않고 다 가르치셨다. 우리 형제자매는 직업도 다양하다. 그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자식들에게 친절한 아버지는 절대 아니었다.

생김새는 바짝 마르고 성정도 까칠하고 혹독했다.


아버지의 교육 방식은 지독할 만큼 철저했다.

학교에서 시험 본 시험지 검사, 책이나 공책의 틀린 글자 검사.

틀린 만큼 목침 위에서 종아리를 맞았다. 내가 제일 많이 맞았다.


한 번은 아버지가 시험지 검사를 하시다 100점 맞은 시험지에서 틀린 것을 맞았다고 채점한 것을 찾았다. 아버지는 내 종아리를 치시고 선생님께 가서 정정해오라 하셨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반은 백 점이 없어. 이건 뜻이 같아서 맞은 것으로 해준 거야. 아버지께 편지 써 줄까?”

나는 울먹이며 도리질을 쳤다.

“아니에요. 고쳐 주세요.”


한두 번 자상할 때도 있었다. 읍에 있는 여중학교 다닐 때 자취를 했다. 풍로에 불을 때고 솥을 얹어 밥을 해 먹어야 하니까 아버지는 장작을 잘게 자르는 자귀를 만들어주셨다. 자귀는 도끼 비슷한 연장이다. 난 그때의 아버지를 드물게 자상했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심부름도 내가 제일 많이 했다.

담배도 자주 말았고, 심지어 성묘하는 아버지를 따라 술병과 돗자리를 들고 산비탈을 넘어가기도 했다.


아버지의 약국 재료 심부름도 내가 했다.

읍에서 학교 다니다 토요일 집에 올 때 건재 약초를 사 오라고 돈을 주셨다. 그런데 그 돈은 겨우 연필 서너 자루 살 돈밖에 안 되었다. 이 돈으로 모자랄 것 같아서 걱정하면서도 나는 아버지가 어려워서 질문도 못 했다.

건재 약국에서 약초를 살 때 돈이 모자랄까 봐 가슴이 콩닥거렸다. 주인은 거스름돈까지 주었다. 그때 한약 재료가 아주 싸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시달리다 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꼼수가 늘었다. 꼼수를 부려 어려움을 모면할 때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어떤 꼼수였는지는 말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 남겨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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