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련(궐련)

by 사오십년대소녀

어머니께서는 시집오시고 나서부터 속앓이가 생겨서 담배를 피우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시집오신 이후, 서울집에는 대가족이 살았다.

조부모님, 부모님, 나의 고모님과 사촌언니, 나와 언니들, 시골에서 올라와 대학 다니는 사촌오빠들 네다섯 명, 또 누구누구 다 합해서 열여덟 명은 보통이었다.

그 많은 식구의 밥 짓기, 빨래하기 등은 집에 식모를 둔 것도 아니고,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가 속병 나실 만도 하지.


어머니는 담배를 피우면 속병이 가라앉는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 집에서 담배를 말아 피웠다.

할아버지는 어쩌다 시판 담배가 생기면 마나님과 아들도 다 제쳐놓고 어머니에게 주셨다. 어머니를 가엾게 여기시고 아끼셨던 것 같다.

어머니가 담배 피우는 곳은 바깥 변소 안.

나이 들고 생각해 보니 어머니의 가사는 중노동이었다.

시골로 피난 온 뒤 중학생이 되고서는 골련(궐련의 방언)을 내가 말았다.

건조실에서 노랗게 잘 마른 담뱃잎을 골라내 온다. 잎을 목침 직각 모서리에 놓고 칼로 곱게 썬다. 그리고 손 태극기 만드는 것처럼, 썰어놓은 담뱃잎을 종이에 길게 올려서 돌돌 말면 예쁜 골련이 나온다.

할머니는 장죽에 담뱃가루를 넣어서 피우시기도 했다. 하지만 장죽은 담배 냄새가 독하고 골련은 슴슴해서 좋다고 골련을 선호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말아 피우기를 귀찮아하셨다.

그래서 골련 마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요즘엔 청소년에게 담배 파는 게 불법이고, 심지어 담배를 만들게 한다면 아동학대라 할 만하다.

나는 아주 잘 말았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세 몫을 만들어야 하니, 토요일에 집에 오면 담뱃잎을 썰어서 부지런히 골련을 말았다. 그중 좋은 것을 골라 어머니 드리고, 남은 것은 할머니와 아버지께 드렸다.


당시 나는 시내에 있는 여중학교를 다녔다. 월요일,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어디서 웬 담배 냄새가 나냐고 했다. 나는 속으로 찔끔하기도 하고 투덜대면서 겉으론 모른 척했다.


그런데 내가 이 글을 왜 썼지?

아! 텔레비전에서 탈렌트 고▢심 씨와 김○옥 씨가 나와서 어머니의 고생을 말하는 장면을 보고 공감이 가서 내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 같다.


어머니, 얌전하신 어머니께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속병이 나고 골련을 피우셨을까요?

어머니, 너무 고생하셨어요.

돌아가신 지 20여 년, 부잣집 사랑받는 외동딸로 태어나셔서 지금은 자유롭고 청신한 대학생으로 살고 계실까요? 하고 상상해 봅니다.

꼭 그러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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