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바위 고개 2

by 사오십년대소녀

외삼촌 따라 담바위 고개 넘어 국민학교 다닐 때의 후반기 이야기다.

가을 접어들어 중학교 갈 아이들의 시험공부가 시작되었다. 정규시간이 끝나면 당직실 안방에서 국가고시라는 책으로 공부하였다. 중학교 갈 아이들은 남학생 세 명, 여학생 한 명이었다.

당직실 앉은뱅이책상 네 면을 한 명씩 차지하고 앉았다. 담임선생님이 국가고시 책 몇 장까지 다 풀어놓으라고 하시고 나가셨다.

나는 끝나고 혼자 집에 갈 일이 항상 걱정이었다. 선생님은 해 넘어갈 무렵 들어오셔서 답을 맞추어 주시고, 해가 담바위 고개로 넘어가면 보내 주셨다.


나는 보따리를 부지런히 챙기고 뛰어서 집으로 향했다.

고개는 어둑하고 나는 굴속에 사는 거지들이 무서웠다. 눈물 글썽이며 혼자 뛰어갔다. 넘어져서 무릎 성할 날이 없었다.

나는 학질에 걸려 여름에도 뜨거운 창가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정도로 몸이 약했다. 그래서 허덕거리며 집에 오면, 아버지께서 금계랍과 웅담을 김에 싸서 삼키라고 주셨다. 하지만 안 넘어가서 물 한 대접을 다 마셨다.

얼마나 썼던지……, 얼마나 물배가 불렀던지…….


학교 당직실은 안방에서 윗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윗방에서 선생님들이 떠드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이상한 말을 하시면서 화투를 쳤다.

어떤 선생님이 윗방으로 아이를 불렀다.

“▢▢야, 너희 집에 밀주 있냐?”

그 아이는 우리 반 반장으로 공부도 잘했다.

“네, 있어요.”

“낼 올 때 한됫병 가져와라.”

“네.”

작년의 담임선생님이시란다.

그 이튿날, 그 아이는 밀주 한됫병과 도시락에 돼지고기 수육을 가지고 와서 자랑했다.

“우리 맛 좀 보자.”

“안 돼, 술 취하면 공부도 못해.”

다른 아이들이 손을 내밀었지만 그 아이는 병과 도시락을 지켰다.

그걸 우리 담임선생님을 안 드리고 어제 그 선생님을 드렸다.

“윗방에 갖다 놔라.”

그날 오후, 안방에선 우리들이 공부하고, 윗방에선 선생님들이 모여 고기를 썰어 밀주를 마시며 “캬아~” 하셨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고, 나는 집에 갈 일이 또 걱정이었다. 울음이 터졌다.

반장이,

“선생님, ○○ 울어요.”

했다.

“어? 오늘 그만하고 집에 가. 반장 너는 그 산 중턱에 사니까 ○○를 꼭대기까지 바래다줘.”


내가 산 위로 혼자 뛰어가는데 언제 왔는지 반장이 막대기에 수건을 매달아 흔들며 꼭대기에 서 있다. 안심하고 뛰어 내려가다 돌아보니 수건 기를 흔들고 노래를 부르며 계속 서 있다.

나는 남자아이들과 말을 한 번도 섞어본 적이 없다.

그 후, 그 아이는 매일 산 위에까지 와 주어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때부터 그 아이가 내 마음에 들어와 앉았다.


그럭저럭 공부를 마치고 시험을 봤다.

어느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우리 네 명을 불러 중학교에 다 붙었고, 그중 여자아이가 제일 잘 봤다고 칭찬하셔서, 180명에게 박수받았다.


졸업식이 되었다. 답사를 나보고 하라고 해서 그 후부터 며칠 동안 180명 대표 ○○○라고 놀림을 받았다.

졸업식에는 우리 식구 아무도 오지 않았다.

셋째 외삼촌이 그 학교 교사였기 때문일까?


6.25 때 피난 와서 이색적인 생활을 시작한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가끔 생각난다. 담바위 고개는 아직도 있을까? 동창생들은 살아 있을까?

지금도 생각이 나니 좋은 추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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