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겐 각자의 속도가 있다.

- 지금, 조급한 당신에게.-

by 최 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멍을 때리면서 내가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는데 나는 왜 지친 것일까.

한심했다.

감히 번 아웃이 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이내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번 아웃일 리가 없었으니까. 번 아웃이란, 너무 많은 노력을 소모한 결과 지쳐서 탈진해버리는 증후군이라고 한다. 그러니 내가 번 아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꽤나 양심 없는 발언이 될 것이 분명했다. 예전부터 난 다른 사람들보다 이해력이 부족해서 언제나 상대방이 두 번 이상 설명하게 만들었고, 공부를 하다가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그냥 포기해 버렸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까지가 오래 걸렸는데,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난 내가 남들보다 앞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이해력은 부족했어도 고등교육에서 이해력은 암기력만큼 효율 있는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 해도 외울 줄만 알면 평균은 갈 수 있었다. 내가 3을 할 때 이미 10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1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비겁하게도 이 사실은 나에게 작은 안정감을 주었다. 하지만 사실 이 당시 내 소원은 보통 이하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모순이지만 처음부터 뒤에 있다면 뒤쳐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나의 위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소원이 이루어진 셈인데도 무엇 하나 기쁘지 않았다. ‘보통’이하를 바랐는데 보통‘이하’였다. 여전히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고,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곱씹었다. 어떤 동기들은 공모전에서 상을 탄 모습을 sns에 올렸고. 누구는 벌써 인턴으로 들어가 힘들다며 푸념을 했다. 저 사람들은 언제 저렇게 친해진 것인지 같이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만 멈춰있었다. 빠른 건지 느린 건지 뒤죽박죽 한 속도, 엉망, 그 자체로.


비유하자면 먼지였다. 먼지는 마냥 자유롭게 나뒹굴고 있다가 달팽이에게 밟히고 만다. 지나쳐간 달팽이의 점액 때문에 바닥에 붙어 벗어나지 못한 채 바둥거린다. 내 앞에 있는 존재가 거북이도 아닌 달팽이라는 것에 꽤 끈적한 충격을 받으면서. 꼴이 가관인 것이다. 이 앞에는 얼마나 더 대단한 존재가 있는 것인가. 내가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나의 존재 자체를 바꿔야지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아니 따라잡을 수는 있나. 끊임없이 궁금했던 것들.

어떻게 하면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저 사람은 자기 길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은데 저만큼이나 나아갔는가.


다시 멍을 때렸다. 아, 옆에 먹다 버린 사탕 껍질이 있었다. 그 뒤에 하나 더. 약봉지도 치우지 않았다. 방이 더러웠다. 난 원래 정리 정돈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내 방은 언제나 이랬기 때문에 갑자기 이상할 건 없었지만, 더는 멍을 때릴 수가 없었다. 눈에 한 번 들어오니 괜히 신경이 쓰였다. 사탕 껍질을 버리기 위해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 사탕 바구니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쓰레기를 지나쳐 옆에 있는 사탕 하나를 들고 껍질을 벗겼다. 버려져 있던 껍질 옆에 새로 벗긴 껍질을 다시 버려둔 채로 입 안에서 사탕 알을 굴리고 있자니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난 원래 이러고도 잘 사는 사람이었다. 뒤죽박죽 엉망인 집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이것도.


나의 삶이었다. 애초부터,


각자의 속도대로 살자. 아무것도 한 것 같지 않더라도 내가 힘들다면 쉬어갈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나의 속도에 불안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날 스쳐가는 모든 이들과 평생을 함께 발맞추어 살아갈 것이 아닌데, 왜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에 불안을 느끼고 조급해야 하는가. ‘같은 강물에 두 번 이상 발을 담글 수 없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강물은 항상 흐르며 모습을 바꾼다. 결국 ‘같은 강물’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시간도 흐른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시간의 개념 또한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모두 늦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어차피 늦는 거 여유 있게 살고 싶을 뿐이다. 늦잠을 자더라도 우린 결국 일어날 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속도로 걷고 있는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과 다르게 걸을 때도 있어야 나의 삶은 조금 더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이겠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걷는다. 그러니 우리는 저마다 다른 속도로 특별해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도망치던 끝에서야,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