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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강 Dec 26. 2022

각(角)과 격(格) ; 크리에이터 교본

시작하는 말, <20세기 카피라이터>가 쓴 <광고 크리에이터> 교본

20세기에 14년, 21세기에 또 14년을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지나고 보니 밀레니엄을 기점으로 딱 허리가 꺾인 셈이다. 20세기와 21세기가 정확히 균형을 이루고 있어 딱히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우나 올드맨의 입장에서는 20세기가 심리적으로 편안하므로 그냥 <20세기 카피라이터>라고 자칭하기로 했다. 어느 쪽이든 현재에서는 까마득한 시절 아닌가.


현장에 있을 때 사내 교육이니 오제이티니 워크숍이니 해서 후배들에게 잔소리했던 구라들이 아직 남았다. 광고 크리에이터들의 노동 환경과 제작 환경도 바뀌고 특히 매체 환경의 변화와 그에 따른 마케팅 여건은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고 들었다. 더구나 지금 시대의 분위기가 과거의 경험이 경륜이 되기보다 오류로 치부되는 눈치이므로 내게 남은 것들은 사실 노폐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한 가지,

<마감 노동자>로서의 <카피라이터>라는 직업 속에는 20세기의 그것과 2022년 현재의 그것이 여전히 비스름한 뭔가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파토스든 로고스든 하찮은 요령이나 처세 같은 거라도. 해서 불쏘시개로 던지기 전에 몇 자 건져내어 새로 적는다. 단장취의(斷章取義)를 하든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삼든 욕받이로 쓰든, 현역 후배들이나 혹시 방문하신 손님께 몇 마디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쓴다.


아이데이션 하고, 리뷰하고, 술 마시며 주고받은 얘기라 특별한 격식이나 가지런한 질서를 갖춘 글이 아니다. 후배들과 현장에서 오간 말이므로 말투는 상냥하지 않다. 들은 얘기, 떠도는 얘기, 읽은 얘기, 지어낸 얘기들이 계통도 순서도 없이 뒤섞여 있다. 비위에 맞지 않는 얘기는 건너뛰고, 지금 시절에 맞지 않는 얘기는 무시하길 바란다. 생각나는 출처는 대강 밝혔으나 알 수 없는 건 할 수 없다.


각(角)은 크리에이터의 칼이고, 격(格)은 크리에이터의 방패다.  뭐가 角이고 뭐가 格이냐고, 그 둘의 관계는 무엇이냐고, 무얼 베는 칼이고 무얼 지키는 방패냐고, 이 자리에서 따져 묻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준비한 79 꼭지의 글이 모두 그 얘기들이고, 글을 읽든 읽지 않든 문제는 결국엔 크리에이터 각자의 질문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마감 노동자>는 또 뭐냐고?

크리에이티브는 결국 맨땅에 나 혼자 헤딩하는 일이다. 길도 포장도로도 없이, 지원 포격도 보급도 없이, 오직 홀로 백지의 공포와 마주 서야 하는 일이다. 혼자 하는 혁명이다. 작가처럼. 그런데 거기까지. 결정권은 크리에이터에게 없다. '작가 같은' 일을 하지만 크리에이터는 작가가 아니다. 작품의 권한은 그대에게 없다. 그대가 이룬 혁명을 감히 쓰레기통에 던질 권한은 甲에게 있다.  모든 크리에이터는 乙이거나 심지어 丙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가, 카피라이터니 크리에이터니 하는 그럴싸한 명함에 기대어 사는 것보다, 노동자라는 엄중한 현실에 발 딛는 편이 그대의 커리어와 정신 건강에 더 좋으리라 여긴다.  노동자가 노동자인걸 잊지 않으면, 현타 올 일이 없다. 아무리 그럴싸한 영어를 직책에 갖다 대본들 그대는 노동자다.  그것도 반드시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하는 <마감 노동자>.  시간 안에(그것도 더럽게 짧은) 문제를 풀어야 하고, 못풀면 가짜 답이라도 쥐어 짜내야 하고, 설혹 풀었다 한들 정답이라는 보장도 없고, 용케 일이 잘 풀려봤자 내 거는 하나도 안 남는, 공황장애 오기 딱 좋은 서러운 직업이다. 광고 크리에이터라는 건.  그러니 미리부터 바닥을 잘 골라 놓는 게 좋다. 그러면 겨우 나처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부질없는 짓이었으나, 재미있게 살았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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