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해답-5) 다가오는 북극항로 시대, 우리의 과제는?
참고로 이 글은 '해양한국'에 실린 필자의 기고문에서 독자의 이해를 높이고자, 표와 그림, 문구를 일부 추가하였음을 밝힌다(기고문 원문: https://www.monthlymaritime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55106).
또한 추가적인 정보는 브런치의 다른 글 <북극항로: 매력적이지만 풀지 못한 문제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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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얼음이 녹으면 북극항로가 열린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해빙 감소는 상업 운항 가능성 확대로 전 세계 해운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항로가 열리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 해상 물류 경로로서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기존 수에즈 운하로 운항할 경우, 약 2만km에 달하는 거리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30% 이상 단축할 수 있다. 거리가 잛아지면 당연히 연료비도 줄어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온실가스 배출도 줄어들어 탄소 부담금도 줄어드는 부차적인 이익도 발생한다.
북극항로는 북미와 유럽을 잇는 미국과 캐나다 해역인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 NWP)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러시아 해역의 북동항로(Northern Sea Route, NSR)로 나뉜다.
이런 북극항로의 매력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대체항로로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2021년 3월에 발생한 수에즈 운하 사고에서 단 한 척의 선박 좌초로 전 세계 물동량의 10% 이상을 담당하는 아시아와 유럽 간 해상운송의 핵심 통로가 마비되면서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함께 해상운송을 통한 글로벌 물류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또한 2023년 말부터 후티(Houthi)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함에 따라 군사적 긴장 고조로 해운선사들은 자사 선박의 안전을 위해 아시아-유럽 항해를 위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항로를 포기하고, 희망봉을 우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북극항로'가 대안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4 Review of Maritime Transport: Navigating Maritime Chokepoints>를 통해 2개의 운하(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5개의 해협(바브엘만데브 해협, 호르무즈 해협, 터키 해협, 지브롤터 해협, 말라카 해협), 그리고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8개의 해운 초크포인트로 지목한 바 있다. 따라서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3개의 주요 해상무역 초크포인트인 말라카 해협, 바브엘만데브 해협,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않는 이점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새로운 정부 국정과제로 북극항로 시대를 주도하기 위한 해양강국 건설을 제시했다. 해양수산부 주요사업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명확히 제시하며, 국가 차원의 지원을 본격화했다. 2026년 예산안에는 약 5,500억 원이 편성되어, 쇄빙선 건조 보고금 지원, 친환경 쇄빙 컨테이너선 기술 개발, 극지 전문인력 양성, 북극항 항만 인프라 확충 등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항로 개척의 구호만으로는 북극항로를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국제협약인 Polar Code 준수, 쇄빙선과 함께 극지 운항 안전성 확보, 환경 규제 대응,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 등이 복합적으로 요구된다.
Polar Code의 의의
북극항로 운항의 핵심 전제는 국제해사기구(IMO) 협약 중 하나인 Polar Code(International Code for Ships Operating in Polar Waters)의 준수다. Polar Code 제정 배경에는 1989년 알래스카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액슨 발데즈(Exxon Valdez)호 좌초 사고가 있다. 이 사고로 막대한 양의 원유 유출되어 심각한 환경 피해를 초래하면서 극지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 건조, 설비 및 운항에 관한 통일된 규칙 필요성이 대두된다. 특히 캐나다, 러시아, 노르웨이, 미국 등의 기준이 달라 적용에 대한 어려움이 제기됨에 따라, 1991년 독일은 극지 조건에 상응하는 적합한 선박 강도를 내용으로 하는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 개정을 IMO에 제안한다.
20여 년간의 오랜 논의 끝에 2014년에 개최된 제94차 해사안전위원회(MSC)에서 결의서(Resolution MSC.385(94)) 채택을 통해 Polar Code가 강제 규정으로 2017년 1월 1일부로 발효된다. 이 Code는 선박 안전과 환경 보호 규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북극 및 남극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선박 설계 및 건조, 설비, 선원 교육, 비상대응 절차, 수색 및 구조, 해양오염 방지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Polar Code는 IMO 주요협약인 SOLAS와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내 본문에 근거 규정을 신설하여 극지해역에서의 선박 운항과 관련된 사항을 적용범위로 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첫째, 안전규정은 SOLAS에 부속되어 극지를 운항하는 선박 설계 및 구조, 항해 계획, 구명 및 통신 장비, 비상대응 체계 등을 다룬다. 둘째, 환경규정은 MARPOL에 부속되어 극지해역의 환경을 보고하기 위해 연료, 폐기물, 배출물 관리 등을 다룬다.
Polar Code는 국제선급협회(IACS)의 통합요건에 따라 극지해역에서 운항할 수 있는 선박을 얼음의 종류와 운항 계절에 따라 극지등급(Polar Class)으로 구분하고 있다. PC 1 등급은 모든 얼음 조건에서 연중 운항 가능한 가장 높은 등급이며, PC 7 등급은 얇은 1년생 얼음 조건에서 여름과 겨울에 운항 가능한 가장 낮은 등급이다.
Polar Code는 단순한 지침이 아니라 국제협약에 부속된 강제규정이다. 따라서 극지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은 반드시 Polar Code를 준수해야 하며, 그렇지 못 할 경우 극지해역에 진입이 불가능하고, 낮은 등급의 선박은 운항 가능 계절이 제한된다. 이는 극지 운항이 단순한 항로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국제 규정과의 정합성을 갖춰야 가능함을 말한다.
필자는 조선소에서 쇄빙선(쇄빙 대형 유조선) 기본설계를 담당한 적이 있다. 쇄빙선의 경우, 단순히 선주가 요구하는 극지등급 만족과 안전성 확보를 위해 엄청나게 두께운 철판과 높은 추진력의 엔진을 사용한다면 선가(선박의 가격)와 같은 경제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없는 선박이 되고 만다.
쇄빙선은 해당 Polar Code와 선주 요구사항에 따른 구조 성능과 극지 및 일반 해역(open sea)에서의 속도 성능을 갖추어야하며, 뱡향 전환이 자유로운 회전식 추진기, 특수 도장(coating) 및 용접 기술, 방한(winterization) 성능을 갖춘 각종 장비 및 설비 등이 적용되는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조선과 해운업계뿐만 아니라 기자재 업계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최초의 쇄빙 LNG선 수주와 함께 현재 운항하는 대부분의 쇄빙 LNG선을 건조하고 있어 분명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지속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아울러 Polar Code의 경우 기후 변화, 친환경·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IMO에서 개정 및 보완될 것으로 판단되므로 이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대응이 요구된다. 최근 제107차 MSC(2023년)에서 SOLAS 비적용 선박(길이 24m 이상의 어선, 레저용 요트 및 총 톤수 300톤 이상 500톤 미만의 화물선 등)의 극지운항 안전을 고려하여, 항해 안전 및 계획에 관한 안전요건을 추가한 SOLAS와 Polar Code 개정안을 채택(Resolution MSC.538(107))한 점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2026년 1월 1일에 발효될 예정이다. 참고로 IMO 결정에 따라 2024년 7월부터 북극해에서 중유(HFO)의 연료 사용 및 운송을 금지하고 있으며, 현재 북극의 해빙을 가속화하는 블랙카본(Black Carbon)에 대한 규제도 논의 중이다.
Polar Code는 선박 설계 및 건조와 기자재 기술, 해운사의 운영 전략, 국가 정책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이 북극항로 개척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는 이상, Polar Code는 준수해야 할 최소 기준이자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기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북극항로의 기회와 복잡성
북극항로 운항은 지난 10여 년간 빠르게 증가했다. 북극이사회(Arctic Council)의 6개 실무그룹 중 하나인 북극해양환경보호그룹(PAME, Protection of the Arctic Marine Envirionment)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165척이던 선박 수는 2024년 1,782척으로 약 53% 증가했다. LNG 운반선, 벌크선, 크루즈선의 증가가 가장 두드러졌으며, 쇄빙선 수도 19척에서 36척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동시에 북극항로 운항 증가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 280만 톤에서 2024년 430만 톤으로 급증하며 환경적 부담 역시 늘고 있다.
빙하 면적의 급속한 감소로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지만, 현재까지 운송된 주요화물들은 원유, 석탄, LNG 등 에너지 자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상 상품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컨테이너선의 경우 정기항로로 운항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관련 인프라 부족으로 컨테이너선의 경우 기항지가 4~5곳은 확보되어야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데, 현재까지 이러한 항만이 없는 실정이다. 또한 연중 운항이 가능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10월 말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는 운항이 어렵다. 쇄빙선을 투입할 경우, 추가적인 비용으로 경제성이 다소 떨어지며, 기온이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질 경우 화물 운송에 제약이 따르는 실정이다.
이 밖에 선박의 운항 안전, 수색 및 구조의 어려움, 항만 인프라 부족, 러시아 등 관련국의 정치적 견제, 통행 허가 등 걸림돌이 존재한다. 그러나 해빙이 진행되면서 북극항로 개발 및 운항 황경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으며, 운항 가능한 해빙 기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로 북극이사회는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미국의 8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은 2013년부터 북극이사회의 정직 옵서버(observer)로 활동 중이다. 이 중 최근 핀란드와 미국의 협력 움직임이 활발하다. 2024년 7월에 핀란드는 미국과 캐나다와 함께 ICE 협정(Icebreaker Collaboration Effort Pact)을 통해 쇄빙선 건조를 위한 기술과 전문성을 공유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10년간 70~90척의 쇄빙선을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올해 3월에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이 직접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방문해 쇄빙선 구매와 개발에 대한 양국 협력을 논의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러시아는 2019년 북동항로 개발계획(Plan for the Development of NSR until 2035)을 채택하면서 북극 자원과 항로 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본 계획은 인프라 개발, 천연자원 개발을 위한 선대 구축, 신규 인공위성 및 기상장비 발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쇄빙선 함대(핵추진 쇄빙선 확대 포함)를 확장하고, 비행장과 관련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한다는 목표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도 2018년 '북극정책 백서'를 통해 북극항로 경쟁에 뛰어들고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 간에 북극항로 개발 협력도 활발하다. 참고로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전년 대비 2024년에는 북극항로 수송화물을 50% 늘렸으며, 중국은 북극항로를 통해 30% 증가한 190만톤의 원유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도 40척이 넘는 쇄빙선을 보유한 러시아와의 경쟁을 위해 캐나다, 핀란드, 한국 등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40여 척의 쇄빙선을 발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향후 전망과 과제
북극항로는 단순히 항로 하나를 여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과제를 풀어야하는 동시에 해운·조선·에너지·외교 등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첫째, 환경적 지속가능성 문제다. 북극항로 운항 확대는 온실가스 배출 증가라는 역설을 낳고 있어 Polar Code를 통한 환경 규제 강화가 예상된다. 실제로 글로벌 해운선사인 MSC, CMA CGM, 하파그로이드 등은 환경 문제를 이유로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또한 덴마크 머스크는 2018년 북극항로 시범운항 이후 예측 불가능성과 비용 절감 한계를 들어 이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4개 유럽 선사는 모두 2019년에 북극기업해운서약(Arctic Corporate Shipping Pledge)의 서명자다. 서명자에는 단순히 해운선사뿐만 아니라 나이키, H&M, 랄프 로렌과 같은 글로벌 소비재 기업도 포함되어 있다.
둘째, 제도 및 지정학적 불확실성 문제다. 러시아는 NSR을 자국 관할 수역으로 규정하여 외국 선박에 도선과 쇄빙선 호송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미국과 다수 국가들은 항행의 자유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가 관심있는 북동항로의 경우,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으로 정치적 민감성이 높은 지역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국과 유렵의 러시아 제재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항로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셋째, 운항시기 제한과 함께 인프라 부족 문제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협력을 통해 연중 항해가 가능하도록 인프라 개선과 기술개발은 하고 있지만, 여전히 겨울철에는 운항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해빙과 함께 북극 운항 관련 인프라 및 쇄빙선 확대 등으로 이용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정책 일관성 확보 문제다. 북극항로는 단순히 새로운 물류 경로가 아니라, 친환경·디지털 기술, 국제규제, 지정학적 균형 외교, 국가 산업 및 지역 균형 발전이 맞물린 종합 전략 과제다. 주요국들이 북극항로 개발을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에너지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종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친환경적이면서 지속가능한 북극항로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조선·해운 및 기자재 업계, 학계 및 연구기관 등 이해관계자가 모두 참여하는 범국가적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북극항로를 빠르게 변하고 있는 국제 규제와 정세, 그리고 기술 경쟁 속에서 미래 해양질서를 선도할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그 답은 우리의 정책과 산업 전략에 달려 있다. '자연은 자신을 현명하게 이용하려는 자에게 늘 관대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우리는 그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