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해답-6) IMO 총회 결과와 함의
11월 말부터 약 2주간 국제해사기구(IMO) 총회 참석으로 런던 출장을 갔다 왔다.
한 해의 일을 마무리해야하는 연말이고,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겨울의 런던 출장이라 내심 그리 달갑지 않았다. 매번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총회에서 각 회원국들의 발언들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글의 조각들이 떠 올랐다.
그러나 출장 내내 내가 작성한 글들은 감정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회의 결과 중심의 딱딱한 개조식(글을 쓸 때 짧게 끊어서 주요한 요점이나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의 공문서들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이번 출장을 마무리한다는 의미에서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이나 들었던 생각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틈틈이 그 글의 조각들을 노트에 담아서 한국에 데려왔고, 그 조각들은 나의 조그만 노력으로 서술식의 글이 되었으며, 기회가 닿아 그 글은 기고문으로 바뀌었다.
런던을 다녀와서 2주 넘게 지났지만 이번 출장을 비로소 마무리 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다음은 '해양한국'에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자로 실린 필자의 기고문이다
(원문: https://www.monthlymaritime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55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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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흔들리는 다자수의(부제: IMO 제34차 총회 결과와 함의)
지난 11월 24일부터 12월 3일까지 런던에 위치한 국제해사기구(IMO) 본부에서 열린 제34차 총회(A 34)에 전 세계 176개국의 시선이 모였다. 참고로 IMO 총회는 매 2년마다 개최되는 기구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으로서 예산을 승인하고, 이사국을 선출하며, 하부기구의 결정을 검토하고 추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번 총회가 첫 번째로 주목받은 이유는 IMO 이사국으로 40개국(A그룹 10개국, B그룹 10개국, C그룹 20개국)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게도 이번 총회는 여러 의미에서 상징적인 자리였다. 세계 4위의 해운국이자 세계 2위의 조선국으로서 2001년 이후 13회 연속 IMO A그룹 이사국(2026-2027년)으로 선출된 것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였다. 동시에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이러한 위상이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국제사회 속에서 막중한 책임을 동반한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필자는 총회에 참석하면서 특히 주목한 장면은 C그룹 이사국 선거 결과였다. 초대 IMO 사무총장(Mr. Ove Nielsen)을 배출한 국가이자,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Maersk)를 보유한 해운강국 덴마크가 탈락한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같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벨기에가 신규 진출하며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이는 IMO 이사국 진출이 더 이상 ‘해운강국’이라는 타이틀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물론 벨기에가 IMO 활동에 대한 강한 의지와 함께 2024년 런던에 IMO 상주대표부를 설립하고, 2025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면서 이번 이사국 진출에 많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A그룹 선거에서 러시아가 연속 탈락하고 라이베리아가 신규 진출한 점, B그룹에서 아르헨티나가 재차 고배를 마신 점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기후위기와 해운 탈탄소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전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홍해 사태로 대표되는 지정학적 긴장, 그리고 무엇보다 다자주의 원칙(multilateralism)의 흔들림 속에서 IMO가 여전히 국제해운의 ‘중심’으로 기능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회원국의 기조연설에 흐르는 발언의 ‘톤’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수 회원국의 발언에서는 “IMO 중심의 글로벌 규제가 필요하다”, “지역 규제의 파편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표현이 반복되었고, 다자주의의 가치는 마치 다시 확인받아야 할 원칙처럼 강조되었다.
이는 총회 직전 개최된 제2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 특별회기(MEPC ES.2)의 여파를 떼어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회의에서 넷제로 프레임워크(Net-Zero Framework, NZF)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으로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표결을 거쳐 ‘1년 유예(휴회)’라는 결론으로 봉합되었다.
유럽 국가들과 다수의 개도국, 군소도서국은 조속한 채택을 요구한 반면, 미국과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반대 진영은 규제의 경제적 부담과 형평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결국 표결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까지 거론되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절차적 발의에 따라 협약 개정 논의는 1년 뒤로 미뤄졌다. 이는 기술적 준비 부족이라기보다는,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더 이상 ‘합의’라는 틀 안에서 자동적으로 조정되지 않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유럽의 EU ETS, FuelEU Maritime과 같은 지역 규제가 이미 시행된 상황에서, IMO 차원의 합의가 지연될수록 국제해운은 ‘단일 규범’ 체계가 아닌 중첩된 규제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총회에서 반복된 다자주의에 대한 호소는 다자주의가 더 이상 IMO에서 당연한 전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다자주의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본질적으로 느리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다수결과 합의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보장해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연합(UN)과 그 산하기구인 IMO와 같은 국제기구는 여전히 합의 없이는 작동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회원국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느리지만, 모든 회원국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논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총회는 IMO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기조연설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또 하나의 공통분모는 해운의 탈탄소화와 디지털화, 그리고 ‘사람’이었다. 다수 회원국은 친환경 대체연료 도입과 자동화·디지털 기술을 해운의 미래로 제시하면서도, 그 이행 과정에서 경제성과 공정성,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선원의 복지, 양성평등, 여성의 해사분야 참여 확대, 그리고 개도국의 역량개발 지원 역시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다뤄졌다. 아울러 러-우 전쟁과 홍해 사태 등에 따른 지정학적 긴장, 불법운항 선박(Shadow Fleet), 사이버보안 위협 등과 같은 국제안보 리스크의 조속한 해소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었다.
대한민국에게 이번 총회는 단순한 국제회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이미 규칙을 ‘따르는 국가’의 단계를 넘어, 규칙을 함께 설계하고 이끌어가야 할 위치에 서 있다. A그룹 이사국이라는 지위는 상징이 아니라, 실질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자리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은 단순한 찬반 구도에 서기보다, 기술 및 산업적 현실과 국제적 합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탈탄소화와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전환 속에서, 규제규범이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연결자’로서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IMO 제34차 총회는 다자주의의 위기를 드러냈지만, 동시에 그 필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킨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 국제적 합의를 통한 통일규범 없이는 해운의 지속가능한 발전 도모가 불가능하기에 IMO의 존재는 지속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해양강국으로서 이 복잡한 항로 위에서 어떤 방향타를 잡을 것인지, 그 선택은 향후 국제질서 속 우리의 위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