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신동일의 2023년
지난 10월 말로 2023년 주요 공연들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번 11월과 12월이 거의 3년 만에 맞이하는 휴식 기간이다. 쉬다고 완전 쉬는 건 아니지만, 지난 몇 년 간 작곡을 쉴 만한 시간이 전혀 없었다. 특히 올해는 평생 이 정도로 숨막히게 바쁜 해가 없었을 정도로 너무나 힘든 10개월을 보냈고, 마지막에는 정말 심각하게 아프기까지 했다. 올해 간간이 정리해 둔 제작 일지를 옮기면서 필요한 부분을 추가로 정리해 본다.
2월 초에 오페라 <피가로의 이혼>을 초연했기 때문에 1월은 이 작품 준비로 바쁘게 한 달을 보냈다. 물론 작년부터 준비해 온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내가 처음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의 모든 과정을 통과하여 전막 공연 제작 지원까지 받았다. 공연 제작은 그랜드오페라단(단장: 안지환)이 맡았다. 연습하는 동안 연출을 맡은 김태웅 선생님이 출연자들에게, <피가로의 이혼>이 "그랜드오페라단이 지금까지 해 온 공연 중 가장 큰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몇 차례 강조했다. 나 역시 작곡 뿐 아니라 기획, 홍보까지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에너지를 많이 쏟았다. 안지환 단장님이나 나 역시 <피가로의 이혼>이 레퍼토리 공연으로 정착하고 진정한 흥행 오페라가 되기를 희망했고, 그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우기 위해 모든 면에서 상당환 노력을 기울였다. 반응은 꽤 좋았고, 대중적 가능성이 많은 작품으로 여기저기서 언급이 되었는데, 내가 큰 에너지를 쏟으며 기대했던 정도의 폭발적인 반응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다양한 모니터와 여러가지 기록이 남았기 때문에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재공연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2023.03.24
올해도 일복이 터졌다. 해야할 일이 엄청 많은데 정리한답시고 일기를 쓴다. 밤도 늦었고, 좀 전에 <피가로의 이혼> 공연 영상 수정을 위한 피드백 작업을 방금 마치고 나니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정 의견을 한글 파일로 적어 보냈더니 링크에 접속해서 영상에 직접 입력해야 한다고 해서 다 옮겨 적었다.)
암튼 9월까지 숨막히는 창작과 공연 일정이 이어진다. 가을이 되면 여유가 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일기는 일정리.
일단 4월6일~7일 대전시립교향악단과 함께 공연하게 되는 가족음악극 <오베론의 보물찾기> 악보는 마감했고, 연습도 거의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지휘자가 연습 참관하러 몇 차례 오기로 했다. 꽤 재미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 오케스트라가 좋아할 만한 정도의 포맷을 고려해서 만든 작품이라서 초연 후에 다른 오케스트라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그다음 심각한 작업은 오페라 <맥의 신화> 작업이다. 강원오페라앙상블 위촉작이고, 공연은 9월20일 경 콘서트 형식으로 시연회처럼 해보고, 내년에 전막 공연 계획이지만, 일단 4월까지 최대한 진도를 많이 나가야 한다. 5월부터 7월까지 죽음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 때가 되면 생활이 거의 caotic하지 않을까 싶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은 미리미리 해둬야 한다. 다른 작품들이 아직 대본 작업 중이고, <맥의 신화> 대본이 가장 먼저 완성되었다. 완성이라는 것도 좀 애매한데, 내년 전막 공연 때는 대본 보강을 많이 해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노래 위주로 할 수 있는 만큼 해야할 듯. 다행히 대본의 난이도가 높지는 않다. 우선 마쳐야할 일들 때문에 지하철에서 대본을 계속 읽고 있는데, 음악이 벌써 머리 속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작곡을 시작해야할 시점이다.
공연유통지원사업에 선정된 <페페의 꿈>은 현재 출연 배우 3명에서 5명으로 늘이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지방 문예회관 3군데 투어 공연을 한다. 5월 어린이 날에는 춘천인형극장, 6월에는 부산 금정문화회관, 7월에는 상주문예회관. 의상, 무대도 새로 제작하고, 공연 포맷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 기대가 좀 크다. 음악은 노래만 좀 보강하면 될 듯.
작년 6월에 한국피아노학회(이사장: 장혜원) 음악회에서 작곡마당 작곡가들과 작업한 피아노와 현악4중주를 위한 소협주곡(Concertino) 6곡을 발표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작년 내내 여러 작곡가들에게 제안해서 사업을 확대할 준비를 했다. 그리하여 6월16일 15곡의 새로운 피아노 소협주곡을 초연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피아노학회 강원지부와 영남지부 음악회에서 기존 발표곡 일부와 신작 1곡씩을 초연하게 된다. 내가 전체적인 기획과 작곡가 섭외 등을 맡아 일을 추진해 왔다. 장혜원 이사장님의 의욕도 보통 아니시기 때문에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작년에 메세나협회를 통해 맡게 되었던, LG생활건강의 찾아가는 어린이뮤지컬 <반짝반짝 페리오>도 올해 다시 하게 되어 6월 초에 첫 공연이 시작된다. 10월까지 총25회 공연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을 찾아가는 공연이고, 극장 공연이 2-3차례 있을 것으로 안다.
7월에는 두 작품을 초연해야 한다. 음악극창작집단 톰방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의기투합하여 제작하는 환경문제를 태마로 한 가족음악극 <아이 스웨어(I Swear)>, 그리고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제작하는 세번째 어린이음악극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새베트>가 현재 대본 작업 중이다. 두 작품 다 연습을 꼼꼼이 챙겨야 하는데 걱정이 많다.
공연 일정들이 복잡하게 겹쳐 있어서 걱정인데,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야 한다.
2023.04~07 <오베론의 보물찾기>
2023년4월6일~7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초연한 <오베론의 보물찾기> 공연 일지. 대전시립교향악단과 3년째 합동공연이었는데, 초연은 처음이었다. 교향악단과의 음악극 초연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나게 체험했다. 준비 시간 포함 4일간 대전에 머물면서 가졌던 여러가지 느낌도 남겨 놓을 겸 공연 일지를 써 본다.
4월4일 오전에 대전시립교향악단의 마지막 연습이 있어서 참관을 위해 내려갔다. 배우들이 이날 같이 내려왔으면 했는데, 일정 조정하다가 실패해서 제작피디와 나만 동행했다. 다른 직원과 스탭들은 극장 셋업 중. 김유원 지휘자가 우리 연습을 몇 차례 참관하고 꼼꼼이 체크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클래식 서곡들은 큰 문제 없었는데, 창작곡 반주는 낯선 음악이어서인지 역시 템포잡기가 쉽지 않다. 지휘자와 함께 열심히 조정. 원래 오후 2시 연습이었는데 일정이 당겨져서 일찌감치 연습이 끝났다. 극장 셋업 상황을 둘러보고 점심 식사 후 나는 극장에서 할 역할이 없어서 숙소로 갔다.
이번에 대전 와서 중간중간 시간이 많이 빌 거 같아서 작업 장비들을 챙겨왔다. 작곡할 일이 정말 산더미인데, 대본이 아직 2개가 덜 나와서 대본 완성된 작품을 미리미리 작곡해 놓지 않은면 5-6월에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노트북 구입한 지도 몇 달 안 되었는데 다행이었고, 재작년인가 여행 갈 때 쓰려고 사 두었던 Folding Piano를 처음 챙겼다. 노트북과 폴딩 피아노, 호텔 방에서 작업하기 완전 안성맞춤이었다. 저녁 식사 때도 아예 밖으로 안 나올 생각을 갖고, 근처 마트에서 요거트와 우유, 견과류 등 사고, 커피도 한 잔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 옆에서 건물을 철거하고 있었다. 숙소 들어가기 전에 잠깐 지켜봤는데, 시간 여유만 있으면 한참 구경해도 볼만한 광경이었다. ㅎㅎㅎ 잠시 구경하다가 자꾸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아 들어갔다.
악보를 좀 그리다가 피곤해져서 침대에 누웠다. 문득 TV가 궁금해서 켜보았다. 집에 TV가 없어서 이런데 오면 한 번씩 켜보는데, 대체로 잠시 채널 돌려 보다가 끄곤 한다. 근데 막 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영화 한편이 흥미를 끈다. 일어나서 좀 보다가 작업하려고 했는데 계속 보게 되어 탁자에 올려놨던 장비를 침대 쪽으로 돌려놓고 보면서 악보 입력하다가 영화를 다 봐버렸다. <리미트리스>는 대단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흥미로운 점이 있는 영화였다. 엔딩이 너무 갑자기 끝나는 느낌. 그나마 이른 시간이어서 영화를 다 봐도 저녁 8시가 안 되었다. 그 사이에 저녁 식사로는 집에서 싸온 쉐이크 가루를 우유에 타먹고, 요거트데 견과류 섞어서 먹고 속은 가뿐했다. 집중하니 생각보다 진도가 빨리 잘 나갔다. 이튿날은 오후 2시부터 리허설이어서 점심까지 먹고 극장에 들어갈 계획이었고, 오전까지 상당히 많은 분량의 악보 작업을 했다.
리허설은 쉽지 않았다. 배우들과 오케스트라가 공연 전날 처음 만나는 일정이라 더 어려웠는데, 특히 오케스트라와 배우들 간의 모니터가 난제였다. 배우들이 귀에 이어폰 같은 걸(in-ear) 꽂고 공연을 하게 되는데, 낯설어서 그런 건지 기계 문제인지, 배우들은 안 들린다고 어려워 해서 노래도 제대로 잘 안 되었다. 여러가지 보완할 방법들을 강구해서 드레스 리허설을 가까스로 마쳤다. 저녁 식사를 다함께 하고, 스탭과 배우들은 추가 작업을 위해 극장에 남았고, 나는 숙소로 와서 또 악보 작업을 했다. 이날 밤까지 악보 작업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해낼 수 있었다. 여행 와서 이 정도 분량의 작업을 한 것도 처음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핵심적인 악보 작업은 9월에 초연할 오페라 <맥의 신화>였다.
리허설이 있던 5일과 첫 공연이 있던 6일에는 비가 왔다. 폭우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는데, 날이 흐리고 리허설이 힘들었던 탓인지 다소 우울한 느낌을 주었다.
한편 이틀 동안 극장에서 숙소까지 버스 한 번 갈아타면서 출퇴근을 한 셈인데, 낯선 도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며칠이라도 생활하는 건 뭔가 그 지역에 대한 친근한 느낌을 갖게 한다. 새로운 풍경이 낯설면서도 다른 생활 공간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대전에 공연 차 여러번 왔는데, 이렇게 지낸 건 처음이었다.
버스 노선 중간에 갤러리아 타임월드라는 백화점이 있었는데, 규모가 대단했다. 서울에서도 이렇게 큰 백화점은 찾기 어려운데, 대전 중심가는 상당히 활발한 분위기였다. 숙소는 유성 쪽이었는데, 중심가에서 얼마 되지 않아 쉽게 외곽으로 벗어나 한적인 교외 풍경이 나오는 게 역시 서울보다 도시 규모가 크지는 않다는 게 실감되었다.
6일 첫 공연이 오전 11시였기 때문에 직원들과 아침에 숙소를 나왔다. 나는 오늘 저녁 공연까지 보고 서울로 갔다가 다음 날 마지막 공연 때 다시 올 계획이어서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싸들고 나왔다.
오전 공연은 유치원 등 어린이 시설 학생들을 위한 단체 공연이다. 늘 그렇듯.
극장이 너무 커서인지 1층 맨 뒤에서는 공연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앞 쪽 아이들은 잘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아무래도 산만하다. 공연은 뭔지 좀 비어보이는 느낌. 배우들은 열심히 했는데, 전체적으로 뭔가 허전하다. 연출은 조명에 불만이 있어 오후 내내 조명 수정을 했다.
분장실에 마침 피아노가 있었기에, 나는 쉬는 시간에 작곡도 하고, 노트북과 폴딩 피아노를 꺼내 악보도 또 그리고, 이날도 작업을 많이 했다. 오전 11시와 저녁 7시30분 공연이라 중간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이날도 작업량이 상당했다. 작업하면서 중간중간 제작피디와 연출이랑 회의도 간간이 했다.
대전시립교향악단과 공연하면서 저녁 공연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기대가 있었던 것 같고. 오전은 단체 관객, 저녁 공연은 가족 관객. 저녁 공연 객석 분위기는 당연히 훨씬 좋다. 연출이 오후 내내 조명 수정한 효과도 확실했다. 공연 퀄리티가 확실히 좋아졌다. 배우들도 극장에 훨씬 더 적응을 했다. 관객들 반응도 뜨거웠다. 공연 끝나고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주는 분들도 있었다. 만족스럽게 첫날 공연을 마쳤다.
이날 대전에 사는 오래된 친구가 공연을 보러왔다. 아버지와 무척 가까웠던 고등학교 친구분 아들로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지내던 한 살 아래 동생이었다. 카이스트에서 연구원으로 있는데 음악도 좋아하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도 하는 걸로 안다. 저녁 공연이 생겨서 올 수 있게 되었다. 대전에서 친구를 보니 느끼이 새롭다. 아무튼 만족감이 있는 밤이었다.
대전시향 단원으로 있는 제자는 이번에 로테이션으로 쉰다고 첫날 저녁 공연에 아들을 데리고 보러왔다. 대전 올 때마다 여러가지로 신경 써주는 제자여서 늘 반갑고 고맙다.
극장에서 정리한 뒤 밤에도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고속버스 타는 곳까지 좀 힘들여 갔다. 출발시간까지는 좀 기다려야 했는데, 대신 밤이라 그런지 차가 안 막혀서 서울까지 예상시간보다 30분정도 일찍 도착. 그래도 집에 오니 12시가 넘었다. 역시 집에 와야 몸이 릴렉스가 된다.
이튿날 또 작곡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집에 있으면 또 할 일이 많다. 게다가 웬 전화가 이리 많이 오는지, 이런 저런 해 줘야 할 일들을 하고 나니 점심 때가 다가온다. 뭐, 앞으로 다 해야할, 준비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들이라 언제 해도 해야할 일들이라 불평할 수도 없다. 암튼 그래도 꾸역꾸역 또 한 곡 악보 정리를 하고(완성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고), 집을 나섰다. 오전에 버스 예약을 하려니까 금요일이라 그런지 오후 4시 이후는 매진이라 좀 일찍 떠다는 차를 예약했다. 그런데 역시 금요일! 고속도로가 막힌다... 일찍 출발했다 싶었는데, 6시35분에 대전청사 정류장에 내렸다. 분장실에 들어가려면 직원들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바쁠 것 같아 전화만 하고, 간단히 저녁 먹고 극장으로 갔다. 극장과 협의해서 공연 사진을 찍기로 하고 내가 비어있는 장애인 석에 앉아서 촬영.
마지막 공연은 온전했다. 마침내 공연이 완성된 듯한 느낌. 음향도 가장 좋았고, 배우들도 무대와 하나가 되었다. 조명도 깔끔. 모든 것이 조화로웠고, 당연히 객석 반응은 어제보다 더 뜨거웠다. 김유원 지휘자는 자기 평생에 가장 재미있는 공연이었다고 했다. ㅎㅎㅎ ^^
모두와 인사를 나누고, 어제와 같은 시간의 고속버스를 탔다. 오면서 미국에 계신 어머니와 네이버로 새로 옮긴 어머니의 블로그 운영에 대한 의견을 카톡으로 나누며 집으로 왔다.
https://blog.naver.com/jooang41
이제부터 <페페의 꿈> 새로운 업그레이드 버전 공연 준비를 해야 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 유통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어린이날 춘천예술극장에서 첫 선을 보이고, 6월에 상주문예회관, 7월에 부산 금정문화회관으로 공연이 이어진다.
2023.05.12. <페페의 꿈> 제작 일지
<페페의 꿈>은 2007년 Edu-Concert <페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초연했다. 이 작품은 <볼래로>로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 라벨(Maurice Ravel)의 피아노 모음곡 <어미 거위>를 모티브로 만들어 낸 어린이 음악극이다. 라벨의 <어미거위 모음곡>은 프랑스 옛이야기를 모아 정리했던 17세기 작가인 샤를 페로의 동화집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5곡의 피아노 듀엣을 한 묶음으로 엮어, 실제로 어린이 두 명이 초연했다. 라벨은 후에 이 작품을 발레 공연을 위한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다시 편곡했다.
<잠자는 공주>, <난장이>, <파고다의 여왕>, <미녀와 야수>, <요정의 정원> 등 5곡에는 각각의 소재가 된 이야기 중 한 대목씩 발췌하여 악보에 기록되어 있다. <어미거위 모음곡>이 연주될 때 이 텍스트는 전혀 활용되지 않는데, 나는 이를 활용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공연창작교실”이라는 뮤지컬 작사, 작곡 수업을 같이 하고 있던 극작가 이희준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대본을 얻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대본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막상 공연 제작을 하려고 보니,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게 생겼다. 그래서 “공연창작교실”에서 만난 제자 이현수 작가에게 각색을 부탁하여, 작곡가 라벨이 등장하여 음악을 소개하면서 진행하는 형식으로, 음악회와 음악극 중간 형태의 공연으로 만들어 초연을 했다. 대본에는 뮤지컬 넘버도 여러 곡 있었는데, 한 곡만 살리고 라벨의 음악과 연극이 결합된 형태로 정리했다.
초창기 Edu-Concert <페페의 꿈>은 적지 않은 여러 연출가들과 배우들의 손을 거쳤다. 오리지널은 피아노 반주로 공연했는데, 언젠가 반주 음원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형태의 실험을 했다. 그러다가 “공연창작교실”에서 만났던 또 다른 제자, 이태권 연출이 꽤 오랜 기간 연출을 맡고 있었는데, 언젠가 이희준 선생님의 대본을 보더니, 원 대본을 바탕으로 공연을 재 구성해 보자는 의견을 내어 2018년에 큰 수술을 한 번 하게 되었다. 이희준 선생님의 대본에 있었던 뮤지컬 넘버도 전부 살려 새로 작곡을 하고, 이태권 작사의 새로운 노래도 추가하면서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과 뮤지컬이 결합된 형태로 바뀌었다. 제작비 한계도 연출의 힘으로 극복하여 꽤 괜찮은 어린이 뮤지컬이 되었다. 이 버전도 피아노 반주로 공연하다가, 공연 진행과 관련한 몇가지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노래 반주를 오케스트레이션 한 뒤 반주 음원을 만들었고,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도 오케스트라 음원을 편집해서 사용했다. <페페의 꿈>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시기였다. 그리고 이 버전도, 그 전까지 사용하던 영상을 빼고 무대를 새로 제작해 보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2021년, <페페의 꿈>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었다. 대전시립교향악단에서 함께 공연해 보자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드디어 <페페의 꿈>이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공연을 하게 된 것이었다. 2021년과 2022년 봄,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대전시립교향악단과 함께 <페페의 꿈>이 공연되었다. 정말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꿈결 같은 사운드로 환상의 세계를 펼치는 라벨의 오케스트라 음악을 라이브로 들려주고, 정성껏 편곡한 뮤지컬 넘버들의 첫 오케스트라 연주도 기가 막혔다. 2022년 12월에 좀 더 작은 규모로 군포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서초구의 반포 심산아트홀에서도 공연을 했다. 이런 일들이 좋은 계기가 되어, 올해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유통협력지원사업에 선정되어 3개 지역의 문화예술회관에서 오케스트라와 공연함과 더불어 공연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예산까지 받게 되었다. 배우를 5명으로 늘이고, 무대와 의상을 새로 제작하고, 음악 일부를 교체하고 새 노래도 추가했다. 첫 공연은 5월5일과 6일 춘천인형극장이었다.
새로운 버전의 <페페의 꿈> 준비는 쉽지 않았다. 연습도 참 힘들게 했는데, 이번 음악 수정 작업은 특히 어려웠다. 기존 노래 중에 1마디라도 고치려면 오케스트라 파트보까지 파일 20여개를 수정해야 한다. 오케스트레이션 부분 수정을 하려면 Vocal Score를 먼저 수정한 뒤 연습을 통해 확정하고 나서 Full Score와 해당 파트보에서 마디 수를 찾아서 고쳐야 한다. 전체 악보들이 머리 속에서 정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수정작업이 이루어져야 실수가 없을 텐데,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되질 않는다. 악보를 들여다 보기가 싫다. 정말 꾸역꾸역 수정 작업을 했다. 계획한 시일보다 일주일이 늦어졌다. 모든 악보 수정을 마치고 오케스트라에 악보를 보낸 날 저녁, 몸살이 났다. 이튿날 연습장에 안 가고 쉬었는데, 그날 밤에는 열이 나서 밤새 앓았다. 다행히 열을 다음 날 아침에 내렸지만, 몸 상태가 계속 좋지 않다. 건강이 아슬아슬한 상태로 연습장엘 계속 나가니 나아지질 않는다. 공연 전날인 5월4일에는 오케스트라와 악기들을 소개하는 워크샵 강의를 하기로 잡아놨는데, 목소리가 안 나올까봐 걱정이 컸다. 병원에 안 가고 민간 요법과 건강식품으로 버티다가 공연 전 주 토요일 오전에 결국 병원에 가서 치료하고 약을 타왔다. 약을 먹어도 회복이 빠르지는 않다. 춘천 가기 전에 계획되어 있는 오케스트라 연습하고 빨리 집에 와서 계속 쉬었다.
5월4일,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지만 나쁘지는 않다. 공연 기간에 비 소식이 있어서 우산까지 챙겨서 춘천으로 향했다. 워크샵은 30명이 신청했다는데, 실제 참석 인원은 10여명이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잘 된 셈이었다. 몸 상태도 불안했고, 재미도 없는 내 강의에 어린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걱정이었다. 그래도 영상을 잘 활용해서 워크샵에 찾아온 가족들이 모두 흥미롭게 보고 간 것 같았다. 한시름 덜었다.
그날 저녁에는 테크니컬 리허설을 하고 모두와 함께 숙소로 갔다. 이번에도 악보 작업을 위해 노트북을 가져왔다. 다행히 춘천에 오기 전에 2곡의 음표 입력을 끝낸 상태였기에 여러 가지 필요한 표시를 입력하고, 레이아웃 정도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번 춘천 일정 동안에는 비는 시간에 회의도 하고 공연 일정도 빡빡해서 내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맥의 신화> 2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페페의 꿈>은 이 작품이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만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연출이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음악극창작집단 톰방의 가장 긴 역사를 함께 해 온 <페페의 꿈>이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느낌이 있었고, 가슴이 뭉클했다.
앞으로 6월17일 부산의 금정문화회관, 7월21일 경북 상주문예회관 공연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뒤로, <페페의 꿈>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새로운 그림을 그리며 기대해 본다.
2023.07.23. <페페의 꿈> 마무리 일지
2023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 유통 지원 사업을 통해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공연하는 <페페의 꿈>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춘천, 부산, 상주에서 총7회 공연을 무사히 잘 치러냈다.
5월5일과 6일 어린이날 즈음하여 춘천인형극장에서 첫 공연 후 6월17일 부산 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과 7월22일 상주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일정은 다른 공연들과 겹쳐서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부산 공연은 한국피아노학회와 함께 작업한 피아노와 현악4중주를 위한 소협주곡 16곡 초연하는 음악회를 16일에 하고 밤 중에 부산에 내려갔고, 이번 상주문화회관 공연은 세종문화회관의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 막바지 연습 기간이어서 2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습하고 난 뒤에 고속버스로 상주에 갔다. 직원이 표를 못 구해서 야탑 역에 있는 성남임시터미널까지 가서 버스를 탔다.
그래도 금정문화회관은 이번 사업의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시설도 제일 좋고 모든 스탭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어서 좋은 공연이 되었고, 상주문화회관은 문화적으로 많이 소외된 지역에서 의미 있는 어린이 공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공연과 함께 원하는 관객들 30명 정도를 대상으로 오케스트라 악기를 소개하는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어서 다행이었고, 보람을 느낀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에 함께 해 준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 여러분들과 이 작품을 열렬히 좋아해 주신 지휘자 조대명 선생님께도 큰 감사를 드린다.
금정문화회관 스탭회의 하고 난 뒤에 강창일 관장님께 공연 축하연을 거하게 대접받았다. 6월에 임기를 마치셨는데, 다행히 <페페의 꿈> 공연할 때까지 계실 수 있었다.
부산 스탭회의 날 저녁 식사하고 들렀던 관장님의 단골 와플집에도 <페페의 꿈> 홍보 전단지가 놓여 있었다. ^^
상주문화회관 공연날, 오후 3시 공연 마치고 나와 봤더니 솜사탕과 장난감 파는 분들이 출동해 계셨다. 공연 날이라고 관객들이 모이니까 장사하러 나오신 모양이었다. 지방에 오니까 이런 풍경을 다 보는구나 싶었다. 어린 때 동대문운동장에서 국제 경기할 때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인데... ^^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상주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발견 ^^
2023.10.15. 나머지 제작일지
지난 10월9일, 아마 올해의 마지막 음악극이 될 <춤바람 분데이> 작곡을 끝냈다. 공연은 10월27일~29일이라 아직 연습 중이지만, 그래도 올해 있었던 작품들 정리를 해 본다. <오베론의 보물찾기>와 <페페의 꿈>은 이미 제작 일지를 올렸고, 오페라 <피가로의 이혼>은 공연 전후로 많은 내용을 올렸기 때문에, 이 작품들 외에 나머지 음악극에 대해 정리하려고 한다.
작년 가을부터 2023년 여름에 세종체임버홀에서 초연할, 슈베르트를 주제로 한 음악극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연초에 일정이 발표된 세종문화회관 시즌 티켓에는 가제로 알렸고, 1월부터 작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게임적인 구성을 토대로 한 기획안에 대해서 연출 선생님은 음악회 전용으로 만들어진 세종체임버홀에서 구현하기 어렵다고 하셔서, 연출 선생님 의견대로 아름답고 예쁜 공연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시놉시스 작업부터 수월치가 않았다. 예쁘고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작품을 원했던 의도와 달리, 작가는 실제 슈베르트의 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조사하면서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인지 작품이 자꾸 무거워졌다. 제목은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로 결정했는데, 시간은 흐르고 대본을 계속 수정해도 앞으로 잘 나아가질 못했다. 대본 작업이 예상보다 계속 늦어져서 캐스팅, 포스터 제작, 티켓 오픈 등 모든 일정이 같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가을부터 논의되었던 또 한가지 작품은 강원오페라앙상블의 창작오페라 <맥의 신화>였다. <피가로의 이혼> 지휘자 선생님 소개로 인연이 되었는데, 오페라단 단장님이 의욕도 넘치시고 지역에서 꾸준한 활동으로 입지도 다지시고 좋은 분 같았다. 첫 회의 때 가보니까 예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연주 전공 학생들 음악이론 가르칠 때 제자였던 바리톤이 함께 자리에 있어 서로 깜짝 놀랐다. 단장님과 각별게 오래된 인연이었다고 한다. 이벤트 성으로 한 번 하고 마는 작품이 아닌, 오래 공연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셨다. 좋은 뜻으로 의기투합을 했는데, 막상 대본을 받아 보니 오페라를 만들기에는 참 난감한 상태였다. 작가 분이 지역에서 오래 활동해 온 연륜 있는 연극인이라고 하니 오페라에 익숙치 않아 그러려니 생각하고, 서로 협의해서 음악극 형태의 대본으로 잘 만들면 되지 않겠나 싶어서 작가 분께 자세한 의견과 여러 가지 자료를 보내고 기다렸다. 1월 하순 쯤 수정 대본을 받았는데 별로 진전이 없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기가 싫어졌는데, 단장님과도 계속 논의를 해보고 작가님 입장도 확인해 보고, 수정 의견을 한 번 더 전달하고 생각해 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자세한 의견과 여러 가지 참고자료를 보내드렸다. 한달쯤 뒤에 받은 수정 대본은 그래도 작곡이 가능한 정도까지 진전되었기에 시작해 보기로 했다. 2023년에 70분 정도 길이로 무대, 의상 제외하고 음악회 형식으로 선을 보인 뒤, 수정 보완해서 2023년에 전막 공연을 초연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는 사이, 톰방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연유통지원사업에 <페페의 꿈> 오케스트라 버전이 선정되었고, 대전시립교향악단과 4월에 신작을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2월인가 3월쯤에 톰방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공동으로 환경을 주제로 한 가족 음악극을 만들기로 결정이 되었다. 공연 일정이 문제였는데, 애초에 계획했던 6월 공연은 내 일정에도 무리가 있었고, 톰방도 거의 처음으로 큰 프로젝트를 여러 가지 동시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6월 공연은 무리였고, 일정 조정에 들갔는데 이것도 쉽지 않아 한 동안 확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7월 중순으로 정해졌다.
작곡을 해야 하는 내 일이 정말 큰 일이었다. 2월에 있었던 오페라 <피가로의 이혼> 초연을 준비하면서 대전시립교향악단과 약속한 가족음악극 <오베론의 보물찾기>를 작곡하고, 3월부터는 <페페의 꿈> 업그레이드 수정 작업해서 어린이날 개작초연하고, 6월에 연습이 시작되는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와 <아이 스웨어>로 제목이 결정된 프라임필하모닉과의 가족음악극, 한국피아노학회와 진행하는 피아노소협주곡 콘서트 6월 중 개최, 그리고 오페라 <맥의 신화> 보컬 스코어도 6월말까지 완료한 뒤 여름에 오케스트레이션.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작곡 일정이었다.
일단 3월에 <오베론의 보물찾기> 연습시작하면서 <맥의 신화> 작곡을 시작했다. 물론 <오베론의 보물찾기> 오케스트레이션이 3월 중에는 우선 순위였다. 5월4일과 5일에 개작 초연할 <페페의 꿈>은 음악을 많이 바꾸지는 않을 계획이어서 꼭 필요한 새 음악들 몇가지를 빠르게 논의하고 4월 초까지 완성해서 <오베론의 보물찾기> 공연이 끝난 뒤 연습에 들어갔다. 4월에는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와 <아이 스웨어> 대본 작업이 지지부진한 틈을 타 <맥의 신화> 작곡에 힘을 쏟았다. 5월 초에 춘천인형극장에서 <페페의 꿈> 공연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맥의 신화> 2막 초반까지 작곡을 한 상태였는데, 강원오페라앙상블의 오페라 축제 예산이 크게 삭감되어, 올해는 1막 정도만 피아노 반주로 쇼케이스 공연을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나로서는 이렇게 된 게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었더라면 9월이 되기 전에 무언가 사고가 났을 것이다.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와 <아이 스웨어> 대본 수정은 6월 연습 직전까지 계속 되었다. 일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매우 고통스러웠다. 어쨌든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 연습이 먼저 시작되었고, <아이 스웨어>도 난항 끝에 연습이 시작되었다. 6월과 7월 중에 한국피아노학회의 <피아노소협주곡 콘서트>가 2차례, 프라임필학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페페의 꿈> 새 버전 순회공연이 2차례 진행되었다.
가장 어렵게 준배했던 <아이 스웨어>가 7월15일 군포문예회관 수리홀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이라 관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공연은 감동적이었다. 지역에서 최상의 퀄리티의 공연을 창작했다는 점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내준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환경을 주제로 한 공연으로서도 남다른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너무나 힘들게 준비한 작품이라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40명 이상으로 구성된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가슴을 적셔주었고, 이번에 새로 캐스팅된 배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톰방 공연 중 가장 노래 잘 하는 배우들이 포진되었다. 향후에도 계속 발전 가능성이 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이 작품을 어떻게 꾸려 갈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다양한 방면으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이어서 7월27일부터 세종체임버홀에서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가 시작되었다. 이것도 생각보다 참 어렵게 어렵게 진행되었는데, 그래도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큰 기관에서 프로덕션을 맡아주니까 힘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문화회관과 함께 만드는 여름방학 가족음악극 세 번째 작품이었고, 전작들도 모두 역대급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번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는 정말 마법 같은 공연이었다.
연출 선생님의 평생 꿈이, 연주자들이 뒤에서 반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앞에서 극을 진행하는 배우/성악가들과 함께 어우러져 호흡을 주고 받고 함께 만들어내는 공연을 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악단을 섭외하지 않고, 이런 의도를 수용해 줄 수 있을 만한 연주자들을 개별 섭외했다. 성악가들도 그 동안 오페라를 하면서 만났던 분들 중에 연기를 잘 하는 분들로 캐스팅을 완성했다. 연주자들이 처음에는 부끄러워하고 어려워하고 부정적인 자세를 보이다가 점점 빠져들어 공연이 시작되니까 너무나 적극적인 자세로, 매 회 공연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서 캐스팅과 연주자들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어우러지는 특별한 공연이 탄생했다. 지휘자인 나를 포함해 모든 출연자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부여받고 분장과 의상을 착용했다.
성악가들도 노래와 연기 뿐 아니라 성품도 좋으시고 서로 잘 알아는 사이여서 호흡도 잘 맞았고, 오히려 연습 초반에 주눅들어 있던 젊은 배우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냈기에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세종체임버홀은 클래식 연주전용 소공연장이어서 이번 공연에 참여한 음악가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극장이었는데, 이 극장에서 이번 공연처럼 아름다운 무대 미술과 의상 등을 갖추고 공연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작은 분장실에 수십명의 스탭과 출연진이 함께 사용했는데 아무도 불편을 못 느끼고 편안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공연했다는 점에서도 스스로 놀라워들 했다.
객석은 완전 만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회 꽉 찬 분위기에서 열광적인 반응이 이어졌고, 마지막 공연 때는 출연진이나 관객들 모두 가장 뜨거운 감정을 나누며 대장정을 마감했다.
18회 공연 동안 서로 너무나 친해진 출연진과 연주자들은 공연이 끝나는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고, 따로 만나 식사시간을 갖기도 했다. 내년에 재공연이 된다 해도 내년까지 기다리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내년에도 다시 무대에 올라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여기까지 정말 살인적인 작업 일정은 평생 처음이었다. 언제나 여러 작품들이 겹쳐서 진행되는 생활이었고 종종 한약 지어먹으면서 작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일이 동시에 진행되는 건 처음이었다.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 공연 막바지 기간에는 콧물, 재채기가 시작되고 몸살이라도 날 것 같아서 병원까지 다녀오고 생애 두 번째로 수액까지 맞으면서 공연을 마쳤다.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 하반기에는 이미 결정된 일들 외에 새로운 일을 맡지 않고 체력을 회복해서 내년을 준비하려고 했었는데,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 공연 마치기 3일 전체 부산국립국악원에서 연락이 왔다. 개원 15주년 기념 음악극을 준비 중이었는데 함께 하던 작곡가가 건강 문제로 하차하게 되어 작곡을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었는데, 알고 보니 연출님이 예전에 각별하게 작업했던 분이었다... 난감한 일이네... 연출님과 통화하고 결국 일을 맡았다. 공연은 10월27일~29일. 일정이 너무 촉박했고,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국립부산국악원에서도 촉박한 일정이라는 점을 이해했고, 다른 작곡가와 협업해도 된다고 했다. 일단 혼자하는 건 불가능했고, 30대 젊은 국악작곡가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나는 가장 잘 따르는 제자인 김현섭 작곡가와 함께 작곡하기로 했다. 국립부산국원의 가무악극 <춤바람 분데이>는 산하에 있는 무용단, 관현악단, 성악앙상블이 모두 참여하는 복합장르 음악극이었기에, 무용음악 경험이 풍부한 김현섭 작곡가가 무용 위주의 장면을 맡기로 했고, 음악극 작업을 많이 했던 내가 노래 위주의 장면을 담당하기로 했다.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 공연이 끝난 다음 한 주일 동안은 대본, 가사 정리 등 사잔 작업이 필요했기에, 제작 회의 참석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체력을 회복하면서 준비한 뒤에 작곡을 시작했는데, 그래도 무리였다.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작업 속도가 잘 안 나오다가, 9월 들어서는 일찌감치 앨러지 비염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악화되었다. 평생 환절기 비염을 앓으면서 깨달은 것은, 계절 바뀔 때마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한기가 들고 체온 조절이 잘 안 되면서 알레르기 비염이 오곤했었다는 건데, 이번에는 정말 회복이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9월12일 <맥의 신화> 쇼케이스가 있었고, 톰방 공연 좀 챙기다가 건강이 완전 바닥을 쳤다.
계획을 잘 세워서 <춤바람 분데이> 보컬 스코어를 제때제때 잘 마무리해서 연습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추석 연휴까지 작업하면 오케스트레이션도 마무리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파서 또 한 1주일 가량이 날아갔다. 그러니 오케스트레이션 마감을 맞추려면 연구하고 이리저리 생각할 것도 없다. 가장 빠르고 적은 에너지로 작업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서 단순하게 밀어부쳐야 했다. 그래도 파트 악보까지 만들 시간이 없어, 부산국악원 예술감독님께 파트보 편집을 부탁드려서 가까스로 한글날 마감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춤바람 분데이> 음악 총연습(Sitzpeobe) 날, 부산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글을 쓴다. 10월 중에 작은 아들 대학 입시 수시 시험이 이어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내년도 기금시업 지원신청서를 몇 가지 써야 하고, 그 사이에 처리해야 하는 소소한 일들이 생긱도 했다. 부산 다녀오느라 또 하루를 써야 하는데, 열차에서 오가는 시간 동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해가 바뀌기 전에 하기로 한, 이런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정리를 해 본다.
<춤바람 분데이>는 제작진이 좋아서 좋은 공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 <맥의 신화> 쇼케이스도 목표한 바는 도달한 셈이어서 내년 전막 공연을 기대해 본다. 단장님이 열심히 뛰어다니시긴 해야 한다. <슈베르트와 장미요정 샤베트>는 내년에 꼭 다시 공연되면 좋겠다.
음악극은 아니지만 작년에 처음 시작한 한국피아노학회의 “피아노소협주곡” 프로젝트도 장혜원 이사장님의 열정적인 활약에 힘입어 순항 중이다. 올해 6월과 10월에 신작 발표회를 두 번 했고, 강원지부와 영남지부에서도 정기연주회 한 스테이지를 피아노소협주곡으로 구성해서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해외 작곡가들의 작품들도 들어오고 있고, 현재까지 40여곡이 만들어졌다. 이사장님은 내년에 국제교류사업으로 확대할 구상을 하고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