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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Mar 12. 2023

음악으로 성찰하기

AOMA(Academy Of Meditation Arts) 초청으로 ZOOM 특강을 가졌습니다. 제안 받았을 때는 그냥 제 작품 소개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수락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작곡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정신적으로 갈등했던 것들을 어떻게 극복해 왔는지, 내면적인 이야기를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쪽으로는 별 생각 없이 살아와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 지 어려웠습니다. 행사를 주관하는 대표님과 여러 차례 논의 끝에 방향을 잡고 준비를 했습니다. 저로서는 말로 하기가 참으로 민망한 내용이어서 원고를 작성해서 읽었습니다. 그래도 끝나고 보니 저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도 되고 어떤 부분은 정리할 수도 있었기도 해서 긍적적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발표했던 원고를 정리해서 올립니다. 작곡가로서 저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학창시절 마음 먹은 바가 있었는데, “작곡”을 일(work or job)이나 공부로 하는 게 아니라, 제 일상의 한 부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스스로 훈련했고, 목표한 대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청소년기 때 작곡가로서의 삶의 방향을 정하고 지금까지 그 길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온 결과로 지금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작곡가로 살겠다는 목표를 이루고자 살아오면서 겪은 장애와 어려움은 대체로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거나 건강 관리 같은 부분이었고, 작곡과 관련해서 정신적으로 흔들리거나 내적 갈등이나 음악적, 예술적 고민 같은 걸 한 적은 특별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그런 어려움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의식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에 대해서 “꾸준하다”, “한결같다”는 표현을 하는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기억나는 몇가지 예를 들자면, 작곡과 동창이 제게 “어떻게 작곡을 일상으로 할 수가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고, 후배 지휘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은 확신을 갖고 흔들림 없이 살아갈 수 있냐”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있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는 거죠. 대학 졸업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했고, 몇몇 선택의 순간이 있었고, 결정했고, 그리고 그냥 그렇게 살려고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해 온 결과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에게 음악이나 작곡에 대해서 정신적으로 어려웠던 기억은 거의 없고, 항상 어렵고 자주 고민을 던져주는 것은 “언어적 소통”입니다. 우리나라 작곡 전공자들이 대체로 내성적인데, 저는 그중에서도 특히 극단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말이 없었습니다. 20대까지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에 대해 조금씩 편안해지기는 했지만, 작곡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후로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 일 때문에 관계를 맺었습니다. 일로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사적인 관계로 다소 확대되는 분들은 있지만, 사적인 친교를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가장 친했던 몇몇 친구들도 이제는 안 만나고, 함께 기획사를 운영하는 친구 한 명만 곁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작곡만 하면서 혼자 만의 세계에 파묻혀 살 수만 있다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세상과 저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나이가 50살이 넘어서는 자연스럽게 지나온 삶을 이렇게 저렇게 되짚어보게 되긴 하더군요. 돌이켜보면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제가 작곡을 하는 것은 말 대신 저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택한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보다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저를 표현하는 게 저에게 훨씬 더 적합한 방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음악과 작곡에 빠져든 이유 중 하나가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예술 형식이라는 점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하고 한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지내는 동안 느낀 점 중 하나는, 미국에서는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자기 자신만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견, 정의(Statement) 등을 갖도록 교육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이 저에게 참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에 반해 추상적이고 상대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선입견이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대체로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직접적인 언어보다는 훨씬 더 추상적인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저를 표현하는 게 저에게 훨씬 더 적합한 방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작곡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도 주로 간접적인 방식입니다. 제가 공연을 해 오면서 모니터를 적극적으로 하고 관객들의 반응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오페라 같이 음악극 작업을 할 때는 특히 더 많은 모니터를 받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전해 듣는 의견과 다양한 반응은 제가 작곡가로서의 삶과 음악적 방향을 조정해 가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지금 와서 정리를 해 보면, 저의 작곡 활동은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 세계와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음악 세계의 접점을 찾아서 끝없이 변화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50살이 되기 전까지, 저는 작곡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곡은 늘 즐거웠고,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좋은 성과를 거두면 큰 성취감에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50살이 넘어가면서 저도 스트레스를 받으며 작업을 해왔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작곡할 때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는 지도 느껴지더라구요. 특히 오페라 같은 음악극 작업할 때 대본에서 작곡에 이르기까지 몇가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뚜렷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아니라 회피하거나 막는 방법을 터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언제나 작곡에 방해되는 조건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부수적이라고 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빨리 해치우려고 서두르기도 하고, 산만한 환경에서도 제 주위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쳐서 집중력을 유지하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는 작곡에 가장 큰 방해물입니다. 스트레스가 제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다가오면 옆으로 치워놓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는 지는 저도 모릅니다. 스트레스를 갖고 작곡하기는 너무 어려워서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50살이 넘어서는, 제가 스트레스를 완전히 차단하며 살았던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큰 에너지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정도의 에너지로 감당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피하면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마음 어딘가에 창고나 쓰레기통 같은 곳이 있어서, 영리하게 스트레스를 치워두고 살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여가 생활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한다고 스트레스가 풀리지도 않아서, 저만의 스트레스 푸는 방법도 개발하지도 못하고 그냥 옆에 치워두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평생 작곡만 생각하고 작곡을 중심에 놓고 살아오다 보니 아무래도 몸도 많이 굳고 육체적인 면에서 문제도 생기되어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하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 화가들 중에 언제 영감을 받아 손이 움질일지 모르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하루종일 캔버스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곡이 나올 때를 기다리지 않지만, 작곡을 해나가는 흐름을 감각적으로 계속 이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작업하는 기간 동안에는 몸과 마음을 너무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작곡하는 동안에는 운동도 잘 안 합니다. 그래도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건강에는 신경이 많이 쓰이는 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작곡가로 살아가겠다는 꿈을 이뤄가고 있지만, 노년이 되면 생활이 좀 안정돼서, 위촉작품 보다는 제가 쓰고 싶은 곡을 작곡하면서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https://youtu.be/k7jk0uJOoGE?si=Q1Q180Y5qijhAJ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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