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저널 2024년3월호
2024년11월23일과 24일 용산아트홀에서 오페라 <냉면>(신동일 작곡, 김문광 대본)이 초연되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탈북민 가족과 식당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내용이었습니다. 통일부 북한인원 증진활동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이유로 "북한인권오페라"로 소개가 되었는데, 작가와 작곡가 입장에서 "북한인권"이 초점은 아니었고, 남북한이 어떻게 화합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를 보통 사람의 시선에서 풀어보았던 작품입니다.
월간 음악저널 2024년3월호 특별기획으로 최근 주목받는 "창작오페라" 몇편을, 각 작품 창작진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개했습니다. 오페라 <냉면>도 포함되었는데, 김문광 작가님과 제 이야기가 실린 잡지 기사 부분과 함께, 서면 인터뷰로 진행된 제 답변 전문을 다시 정리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 아래는 음악저널 윤태경 기자님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 전문입니다.
1. 오페라 <냉면> 영상을 보면서 언뜻 창작 오페라와 창작 뮤지컬의 경계가 흐려지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사실 고전적인 장르로서의 ‘오페라’ 자체가 본래 문학과 예술이 결합된 총체적 예술일 텐데요. ‘오페라’ 앞에 ‘창작’이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기존 오페라의 의미가 확장되는 것인지 선생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신동일) “창작 오페라”에 대한 입장은 모든 작가나 작곡가마다 다를 것입니다. 아래 답변은 제 생각과 오페라에 대한 입장을 담고 있습니다.
‘창작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오페라든 ‘창작’을 거치지 않는 오페라가 있을까요? 새로 만들어지는 오페라를 구분하기 위해 “창작 오페라”라는 말을 붙이는 건데, 오히려 “창작 오페라”의 개념과 범주를 한정시키고 관객들에게 새로 만든 오페라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하는 것 같아 좋지는 않습니다. 오페라 <냉면>의 포스터에도 “창작 오페라”라는 표현을 담지 않았습니다.
저의 첫 오페라 <테이크 아웃>(2011)을 작곡할 때부터 고전적인 오페라의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를 따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뛰어난 성악가들이 많이 배출되는 현실을 보며, 좋은 성악가들과 우리말로 된 즐겁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음악극을 하고 싶다는 정도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음악 스타일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뮤지컬의 작법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뮤지컬의 형식은 오페라로부터 이어받아 발전한 것입니다. 고전적인 오페라의 작법과 통하는 뮤지컬 넘버들이 많이 있습니다. 뮤지컬은 오페라를 20세기 이후 현대 관객들의 호흡에 맞게 드라마를 구성하고 노래의 형식을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한 음악극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오페라가 관객들과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뮤지컬 작법을 끌어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저는 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서 지금 명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세계적 흐름을 보면 뮤지컬은 드라마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다양한 스타일을 받아들이면서 19세기 오페라가 하던 역할까지 가져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현대의 오페라는 아예 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창작 오페라”가 19세기 유럽에서 오페라가 관객들과 맺었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이야기 소재, 음악 양식, 드라마 구조, 노래 형식, 무대 미술 등 여러가지 면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만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 유럽에서 하던 방식으로 21세기 대한민국 관객과 오페라가 교감하기는 어려우니까요. 20세기 이후의 오페라는 관객과 점점 멀어져 버린 상태구요.
3번 질문과 연결된 이야기인데, 1번 질문에도 들어 있어서 여기에 언급하자면, 저는 “문학과 음악의 결합”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극(드라마)과 음악”을 생각합니다. 저는 연극처럼 공연되는 오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오페라 <냉면>에서는 다소 대중가요 스타일의 노래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더 뮤지컬 같은 느낌을 받는 관객들이 있었다고 보는데, 음악 스타일은 극의 내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고, 이야기 전개 방식과 연출, 연기 방식 등이 전통적인 오페라와 다르게 역동적이고 드라마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들려주는 오페라를 지향합니다. 저의 음악 역시 이런 점을 살려주는 방식으로 작곡됩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꾸준히 저만의 성과와 발전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아리아’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페라 대본 작가로 극작가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한 지가 꽤 되었기에 이야기 소재나 드라마 구성 방식 등이 예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아리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고, ‘아리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불려야 할지, 그 명확한 개념을 찾아가는 게 저의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창작 오페라는 주로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들인 많은 것 같은데요. <냉면>을 작곡하시면서 음악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신동일) “창작 오페라는 주로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 많”다는 것이 저에게는 참 큰 장벽입니다. 공모전에서도 주로 그런 작품만 선정하고, 그 외 제작되는 오페라들도 대부분 그런 방향입니다. 저는 즐겁고 유쾌한 부파 스타일의 오페라거나, 비극이어도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고 싶은데, 오페라 공모전은 이런 작품에 관심이 없고, 관객들은 “창작 오페라는 재미없다”는 선입견이 강해서 “창작 오페라”를 보러 오게 하는 것부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발표한 오페라는 대부분 희극이어서 <냉면>의 음악 스타일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페라 <냉면>의 대본이 장면마다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어서 여러 가지 스타일의 음악을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별히 좋았습니다. 프롤로그부터 긴장감 넘치게 시작해서, 다정식당의 아침이 펼쳐지면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바뀌고, 장사가 안 되는 식당에서 주방장과 다른 사람들의 갈등이 다채롭게 펼쳐지는데 따라 적절한 스타일의 음악을 배치하려고 했습니다.
문학과 음악을 연결하는 선생님만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게는 “문학과 음악”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극(드라마)와 음악”인데요, 이거 설명해도 대부분 잘 못 알아들으셔서… 단장님께서 <냉면> 프로그램에 적었던 내용이 가장 잘 이해된다고 하셔서 그 부분으로 대체하겠습니다.
- 첫째는 “극적 호흡”을 음악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등장인물 간의 대화가 최대한 실제 대화처럼 들렸으면 하는 의도를 갖고 작곡했습니다. 여기서 “극적 호흡”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화할 때 규칙적인 리듬에 따라 대화하지는 않습니다. 서로 빠르게 말을 주고받을 때도 있고, 상대방의 어떤 말에 대해 잠깐 생각하고 대답할 수도 있고, 당황해서 얼버무릴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에 따라 대답하는 시간적 차이가 항상 나타나게 됩니다.
둘째는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화할 때 일어나는 시간적 차이는 대개 말하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두 사람 모두 즐겁고 신나 있으면 빠르게 대화를 주고받을 것이고, 서로 불편하거나 심각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느리게 대화가 진행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화가 나 있다면 화 난 사람이 말하는 속도와 화난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말의 속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또한 말하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말의 높이, 말의 크기, 말의 속도 등이 달라집니다. 같은 문장을 말하더라도, 말하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말의 모든 면모가 달라지게 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를 배우는 “호흡”으로 조절합니다. 저의 오페라는 이런 “말의 호흡”을 종합하여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페라 <냉면>의 대본은 특히 연극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말의 호흡”과 극의 흐름까지 고려하여 음악으로 “극적 호흡”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
3. 작품의 메시지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인상적인 구간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신동일) 간주곡 이후에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독립적으로 구별되는 노래 없이 길고 긴 몇 개의 장면이 극적으로 이어져 있는데, 작곡하기도 어려웠고, 연습도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주방장의 야심찬 새 메뉴 ‘북한식 정통냉면’이 실패하고 사장인 다정과 주방장의 갈등이 심화됩니다. 탈북민 가족인 봉철과 영실은 북으로 돌아갈지를 고민하고, 또 다른 탈북민으로 치매 걸린 아내를 위해 고향에서 먹던 국수를 찾아헤메던 김영감이 봉철과 영실의 한탄 소리에 힌트를 얻어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갑니다.
4. ‘창작 오페라’ 분야에 새롭게 관심 갖게 될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동일) ‘오페라’라는 장르가 워낙 먼 나라의 옛날 이야기에,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공연되는 분야라서 우리나라 관객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성악가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우리말과 우리 정서를 잘 살린 “창작오페라”를 통해 점점 더 많은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 관객들과 찰떡궁합인 “창작오페라”가 등장할 것입니다. 애정을 갖고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오페라 <냉면> 전막 공연영상 유투브 링크
https://youtu.be/2YxPYtIemkg?si=iFJZRPX69fELxMc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