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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빈서 Jan 27. 2022

폭풍 저그와 영웅 프로토스, 그리고 테란의 황태자

[e스포츠 연대기] - ③

'BoxeR' 임요환의 전설은 압도적이지만, 그렇다고 스타크래프트의 역사가 개인의 역사는 아니다. 1.5세대 프로게이머를 넘어 등장한 2세대 프로게이머들은 선배들의 뒤를 이어 스타크래프트의 전성기를 이어나갔다. 이번 글에서는 스타크래프트의 각 종족을 대표하는 2세대 프로게이머를 만나본다.


폭풍 저그, 'YellOw' 홍진호


Ⓒe스포츠 명예의 전당 / 그의 영원한 라이벌 임요환과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홍진호


홍진호는 스타크래프트 2세대 프로게이머로 데뷔 초부터 주목을 받았고,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결승에 진출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당시에는 맵들이 전체적으로 '저그' 종족에게 불리하고 '테란' 종족에게 유리했기 때문에, 홍진호의 선전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게다가 결승에서 임요환의 테란을 상대로 5전3선승제에서 5경기까지 가는 접전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2년, 홍진호는 2월 말부터 무려 2개월 간 32전 30승 2패 승률 93.8%라는 성적을 보이며 전성기를 달렸다. 이때도 여전히 저그에게는 불리한 맵이 많았기에, 홍진호의 기록은 더욱 빛났다. 물량을 많이 모아서 한 방 물량전을 시도하는 기존의 저그와 달리, 홍진호는 쉴 새 없이 물량을 몰아치는 새로운 전략을 선보였고, 이에 '폭풍저그'라는 별명을 얻었다.


두터운 팬 층이 생기면서, 홍진호는 동시대 최고의 스타이자 스타크래프트 1.5세대 프로게이머인 임요환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이 둘의 대결을 뜻하는 '임진록'은 스타크래프트 판 최고의 흥행 키워드였다. 더불어 'Reach' 박정석, 'NaDa' 이윤열 등 걸출한 2세대 프로게이머들이 떠오르며 임요환-홍진호-박정석-이윤열의 '사대천왕' 구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3년은 홍진호의 해였다. 비록 정규리그 우승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우승 기록이 있었던 'XellOs' 서지훈, 'Nal_rA' 강민을 제치고 '함께하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게이머 랭킹'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또한 '함온스 플러스 랭킹'에서도 2위 강민을 약 260점 차이로 따돌리며 1위에 랭크됐다. 


하지만 홍진호는 'July' 박성준, 'GoRush' 박태민 등 신예 저그 프로게이머들이 등장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임요환의 후계자로 불린 'iloveoov' 최연성이 등장하며 홍진호의 테란 상대 전략이 무용지물이 됐고, 결국 'TG삼보 MSL' 결승전에서 최연성에 3-0 패배를 당하며 홍진호 커리어의 마지막 결승전이 준우승으로 마무리됐다.


홍진호는 은퇴 후 임요환과 마찬가지로 프로 포커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는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방송에도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영웅 프로토스, 'Reach' 박정석


Ⓒ프레딧 브리온 공식 홈페이지 / 박정석은 은퇴 후 리그오브레전드 감독 활동 후 프레딧 브리온 단장으로 취임했다.


박정석은 스타크래프트 2세대 프로게이머로, '프로토스' 종족을 사용했다. 그는 '2001년 코카콜라배 스타리그' 본선에 진출하면서 신예 프로토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박정석은 본래 개인전보다는 팀전에 강한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대량의 물량을 다루는 데 능숙했다. 데뷔 초부터 물량만큼은 엄청나다는 소리를 들으며 프로토스의 미래로 평가받았다.


박정석은 '2002년 SKY 스타리그'에서 최고의 프로게이머 반열에 올랐다. 4강에서 홍진호, 결승에서는 임요환을 꺾으면서 우승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석은 많이 알려지기 전이었음에도 결승에 진출했고, '황제' 임요환을 3-1로 꺾으며 우승했다는 사실로 '영웅 프로토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비록 이때의 우승이 그의 유일한 우승이지만, 지금까지도 그를 프로토스 레전드로 남아있게 한 업적이었다.


박정석은 이후에도 3번의 결승 진출에 성공했지만, 번번이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2003년부터 '한빛'과 'KTF 매직엔스'에서 팀리그에 출전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팀전 통산 66승 31패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박정석은 스타크래프트 외적으로도 꽤 인기가 있었다. 잘생긴 외모와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기존의 프로게이머들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이미지였다. 그래서 특히 여성 팬이 많았고, 프로게이머들이 뽑은 잘생긴 프로게이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덕분에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오프닝 영상들에서 여러 번 비중 있게 출연하기도 했다.



최초의 골든 마우스, 'NaDa' 이윤열


Ⓒ나다디지탈 공식 홈페이지 / 이윤열은 자신의 닉네임 '나다'를 딴 게임 개발 회사를 설립했다.


이윤열은 임요환 이후 테란의 최강자 이미지를 차지한 프로게이머였다. 이윤열은 게임아이 팀 입단 후 여러 소규모 대회에 참가하며 인지도를 높여갔다. 2002년 'GhemBC 종족최강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윤열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KPGA투어 2,3,4차 리그'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2002 파나소닉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도 우승, '2003 3차 GhemTV 스타리그'까지 우승을 차지하며 3대 리그를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홍진호, 임요환, 박정석 등 걸출한 프로게이머들을 모두 꺾었으며, 새로운 스타크래프트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임요환의 뒤를 이은 테란으로 군림한 이윤열의 '최강자' 타이틀은 생각보다 빠르게 무너졌다. 최연성이 '센게임 MSL' 결승에서 테란 대 테란 대결에서 이윤열을 격파한 것이다. 이윤열은 훗날 이날을 "내가 스타크래프트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기회"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 초, 최연성이 부진하고 이윤열이 2005년부터 이어지던 부진을 2006년 중반부터 극복해내면서 제2전성기를 달리기 시작했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온게임넷 스타리그 최초로 골든 마우스(온게임넷 리그 3회 우승)를 수상했다. 이윤열 이전의 시대를 수놓았던 임요환, 홍진호 등 걸출한 프로게이머도 해내지 못한 업적이었다.


하지만 전성기 이후 2007년부터 다시 부진하더니, 최고 시절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윤열이 대단했던 점은 2010년까지도 경쟁력을 유지하며 프로리그 100승 달성에도 성공했다는 점이다. 커리어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대 최강의 프로게이머 중 한 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2009-10 시즌을 끝으로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하면서 그의 전설은 끝을 맺었다.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이윤열 등의 업적은 짧은 글에 모두 담을 수 없다. 이외에도 스타크래프트의 전설을 만들어 온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를 넘어 한국 e스포츠에 크고 작은 발자취를 남긴 수많은 이들이 있다. [e스포츠 연대기]는 앞으로도 부족한 글로나마 그 역사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누군가는 잊어갈 이야기지만, 적어도 이 시리즈에서는 그들을 기억해본다.



세상은 1등 만을 기억한다고 하지만,
2등도 많이 하던 사람들이 기억해 주더라고요. - 홍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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