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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 Mar 29. 2023

우리가 함께 걷던 그 길에 대하여

대학생이 된 S에게


S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사람을 잔잔하게 만들어주는 곳이었다잔잔하다 못해 고요하게 가라앉혔다. 깊은 물속에서 우리는 자주 감정을 잃었다그것은 해탈인 것 같기도영원한 우울 같기도 했다. 희망을 믿고꿈을 꾸던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무례한 선생들이 낡아빠진 훈수를 둘 때면 우리는 시선을 돌렸다기다란 책상의 중앙에서 만나는 시선들은 묘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선생님들의 말이 길어지면 우리는 서로의 진짜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비웃거나 한숨을 내쉬던 표정들지루하고 피곤해 보이던 얼굴들. 1분이 마치 10년 같던 길고 긴 시간이 지나 쉬는 시간이 오면 도망치듯 복도로 나오곤 했다교실 안에 더 있다가는 말라죽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탈출한 S와 나는 험담을 시작했다사실 그건 험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적절할 때 배출하지 못해 쌓이고 고여버린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에 가까웠다무게를 잡고 하찮은 말들을 늘어놓던 선생님들을 가벼운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은 아주 재미있었다.

느리고 무료하던 수업시간과 빠르고 자극적인 쉬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교시간이었다수업을 마친 우리의 모든 에너지는 결락되어 있었다버스를 타고 쉽게 지하철 역까지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우리는 주로 걸었다더울 때도 추울 때도 일단 걸었다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걸었다약 20분간 S와 길을 걸으면 수다를 떠는 시간이 내게는 큰 위안이자 행복이었다길 위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꺼내지 못했던 서로의 진짜 모습을 가감 없이 볼 수 있었다연예인남자욕 등등 원초적이고 맛있는 이야기들부터 진로, 미래예술 같은 진지한 이야기까지정말 솔직한 말들이 오갔다숨길 필요 없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행운이었고 다행이었다.


아직 고등학교가 그립지는 않다아마 여러 계절이 지나가고 내게 어둠의 시기가 드리워도 고등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을 것이다추억과 기억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등학교 시절은 내게 단지 기억이다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아무리 미화되고 왜곡되어도 기억이 추억이 될 수는 없다고 생한다.


다만 가끔 그 길은 떠오를 것 같다우리가 함께 걷던 그 길찝찝하고 피곤하던 학교생을 견디게 해주었던 그 길 말이다러워 가 먹먹하던 학교에서 어나 조용한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고 다리 위에서 탄천에 떠다는 오리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간우리의 말웃음리가 상 던 시간봄꽃이 만하던 계절엔 뚝 멈추어 서서 사진을 고 까르르 웃던 간들우리가 온전히 여고생으로 재하던 절대 고 싶지 않은 추억이다.


칠 전 S가 대학 OT를 마친 뒤 내게 화를 걸었다로운 곳에 적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 졸업을 한 뒤 S는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재수생이 되었다론 친구로 때론 전우로 약 3년간의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가 다른 곳에서 자의 을 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하게만 느졌다인생에서의 첫 을 S와 함께 했고와 함께 이겨냈기 때문에 유독 .


그다지 착하지 않은 나는 원에 하다누군가의 에 오이 수를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남들의 인생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나보다 잘 되기를 라지는 않는다나는 내가 우선이고남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하지만 그에도 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S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다내가 그와 친해서이기도 하지만보다 S가 매력 있고 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로운 대학에서 적하기 어워하는 그에게 하고 싶다내가 아없이조건 없이 널 응원하고 있다고. 칠 때면 우리가 함께 걷던 그 길을 떠리며 부디 힘을 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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