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 발병했을 때의 기록
저는 희귀난치질환 환자입니다.
'소아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질환을 앓고있는데요. 일반 성인의 류마티스 관절염과 유사하지만, 비슷한 증상이 있습니다.
저는 14살, 수련회를 갔다온 뒤부터 왼쪽 손목이 아팠고 동네 정형외과에서 1년동안 치료를 받았습니다.
단순 염좌인줄 알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MRI까지 찍었지만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정형외과 선생님은 큰 병원을 가보라는, 류마티스 관절염 같다는 소견을 주셨습니다.
혼자 딸을 키우는 입장이었던 저의 어머니는 얼마나 심장이 떨어지셨을까요? 바로 그 날 짐도 안 싸고 제일 이 분야에서 유명하다는 의사 선생님을 찾아 예약했습니다.
당시 전라도에 살던 저는, 난생 처음 경기도 안양시를 가봤습니다. 아주 별천지더군요. 많은 사람, 높은 건물, 그리고 큰 병원에 있는 바쁜 사람들이 기억납니다.
당시 나이가 지긋하셨던 이 분야의 명의, 김광남 교수님은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더니 바로 입원을 해서 검사를 할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사실 권유보다는.. 조금 더 강제적인 이야기였어요.
아무런 짐도 없이 바로 입원했습니다. 15살이었던 제가 소아 병동에 입원하니 온통 조그마한 애기들이 있었습니다. 병원복 사이즈가 없어서 다른 병동에서 받아 입었고, 주변 어린 친구들이 저를 보고 왜 의사선생님도 환자복을 입냐고 물어봤습니다.
소아 병동은 폐렴, 장염, 맹장 수술을 한 친구들이 많은데요. 새벽에 아프니까 울고, 낮에는 뛰어다니고 꽤 정신이 없지만 쳐다보면 재미가 없을 틈이 없습니다.
저는 입원을 한 뒤로 정말 많은 검사를 받았습니다. 피를 50통 넘게 채혈했고, MRI, 초음파, 근전도 검사, 알레르기 검사 등 제 몸에 어떠한 이상이라도 있는지 찾아내기 위해 많은 분들이 고생하셨습니다.
어떤 검사는, 피가 빠르게 검사실로 내려가야 해서 제가 피를 뽑는데 여러명이 서있고, 피가 한 통씩 나올때마다 그걸 흔들면서 뛰어가시더라고요. 뭔가 되게 죄송했던 마음이 들었습니다.
뭐.. 결론적으로는 다 정상이었습니다. 피검사도 정상, 유전자검사도 정상, 그렇게 3일차 아침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 받았던 초음파 검사를 3일차 아침에 받고 병실로 올라왔는데, 교수님이 여러명의 전공의와 오시더라고요. 그 때 느낌이 왔습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구나.
노란색의 알약과 하얀 알약을 주시면서, 노란약은 항암제로 개발된 약인데 면역억제제로서 역할을 할거고, 하얀약은 노란 약의 분해를 돕는 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소아류마티스관절염이라는 희귀질환에 걸린 것이 맞고, 희귀질환 등록을 위한 사회복지사가 곧 올거라고요.
어머니는 정말 많이 우셨고, 저는 물어봤습니다. 검사가 정상인데 제가 왜 희귀질환 환자냐구요.
교수님은 아침에 한 초음파 검사에서, 제 손목이 염증으로 인해 깎이고 변형된게 보여서 그렇다고 답변해주셨습니다. 일반 관절염은 염증이 있어도 뼈 자체를 변형시키지 않는데, 류마티스는 변형시킨다고요.
그냥 저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내가 그런 병에 걸렸구나. 나 별로 안 아픈 것 같은데, 왜 항암제를 먹으라고 하지? 그렇게 선생님이 떠나시고, 엄마는 계속 울었습니다. 하염없이 울고, 저는 엄마를 위로하다보니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오셔서 희귀질환 등록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국가적으로 희귀질환 환자는 산정특례가 적용되어서 해당 질병으로 치료를 받으면 10%만 부담하면 된다고요. 사실 저는 그때까지도 최첨단 기계들로 진행한 나의 검사와 입원비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아 류마티스 관절염은, 만 15세 이내 발병해야 하는데 그때 전 딱 15세였습니다. 어쩌면 그냥 운명이었던거죠. 조금만 늦었으면 희귀질환 특례도 못 받을뻔 했는데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들이 많습니다. 딸이 걱정됐던 엄마는 병원밥대신 돈까스, 우동 등 맛있는 음식들을 사다줬는데요. 옆 자리 맹장 수술해서 금식해야 하는 남자아이가 저 때문에 고통받아 커튼을 닫아놓고 밥을 먹었던 기억, 난생 처음 설빙이라는 곳에 가서 엄마와 인절미 빙수를 먹은 기억, 새벽에 몰래 울고 오는 엄마를 보고 저도 눈물을 흘린 기억, 저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연락 등 정말 추억이 많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