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에 대하여

DNA일까

by Harry Kim

조급한 DNA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라운딩에 나섰다. 멤버이긴 하지만, 빈 시간대를 골라서 혼자서 라운딩을 즐기는 입장인데 간혹 나처럼 혼자 치는 사람이 바짝 뒤쫓아 올 때가 있다. 대개는 나도 뒷 사람이 천천히 오길 바라고, 앞 사람들을 빨리 쫓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도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급하게 앞을 쫓아가는 성향은 오랜 기간동안 축적되어온 한국 사람들의 몸에 밴 습관이라 볼 수 있다.


때로는 내가 빨리 쫓아가서 앞 팀의 사람들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어느 새 나도 모르게 바짝 쫓아가서 티샷을 치는 것까지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좀 느긋하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여 뒤에 쫓아오는 팀이 나때문에 늦어지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무의식적 걱정을 하며 걷는 걸음을 빨리 할 때가 너무나 많다.


오늘은 첫 티샷에 40대 정도로 보이는 일본 남자 한 명이 내 앞에서 시작했다. 멤버가 되면, 각 티샷 타임에 얼마만큼의 핸디를 가진 아무개(이름까지 알 수 있다)가 몇 시 티오프인지 보이는데, 내 앞의 혼자 치는 사람이 일본 사람이었다. 2번째 홀쯤에서 공을 잃어버렸는지 나무 밑 러프에서 헤매이는 와중에 나는 티샷을 하고 세컨샷을 위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나먼저 지나가라는 제스처를 취했고 나도 손을 흔들어 동의하는 표시를 했다. 빨리 지나가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약간 서두르다 보니 2번째 샷에 그린에 잘 올렸음에도 퍼팅을 급하게 하여 보기를 하고 다음 홀로 이동했다.


3~4번홀까지 가는 동안, 천천히 뒤에 따라오며 기분좋은 간격을 유지하여 마음이 약간 편하게 플레이를 했다. 5번째 홀 쯤 갔을까? 뒤에 갑자기 그 일본인이 아닌 다른 아시안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 일본인이 뒤에 또 급하게 누군가 쫓아오니 먼저 가라고 해준 것 같았다. 한국인인듯 했다. 한국 사람은 걸음걸이나 움직임의 형태를 보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70대 나이드신 남자분인데, 허리를 구부정하게 푸쉬카트를 힘겹게 밀고 열심히 쫓아오는 모습이 매홀마다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린에서 홀컵에 공을 붙이고 퍼팅을 하려는데, 이미 그 노인의 공이 내 뒤로 바짝 떨어졌고 고개를 돌려 보니, 빤히 나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멀리서 서있는 노인이 마치 언제 내가 홀아웃을 하는 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식으로 나를 계속 바짝 쫓아오니 나는 마음이 괜히 조급해졌고 어프로치나 퍼팅을 급하게 하게 되고, 파 할 수 있는 걸 보기를, 보기가 가능한 걸 더블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이것도 내 실력 탓이긴 하지만 마음이 급하면 더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점점, 급히 구부정하지만 빠른 걸음으로 카트를 밀며 쫓아오는 모습이 한편 두려움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마치, 나와 거리가 멀어지면 큰일날 것처럼, 분리불안에 걸린 강아지처럼 나를 급히 쫓아오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개발독재 시절에 열심히, 빠르게 살아온 사람이 조금이라도 뒤떨어지면 마치 큰 일이라도 나는 듯 살아온 패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노인을 보고 있자니 한편 마음 한켠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즐기자고 라운딩을 하는 건데, 필드에서까지 마치 밀린 숙제를 급하게 하는 사람처럼 앞사람을 바짝 쫓아가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처럼 큰 사명감으로 달려드는 것이 한편으로는 악다구니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그냥 당연한 몸에 밴 습성이고 나름 즐긴다고 하는 모습일 것일텐데 정작 바로 앞자리에서 라운딩을 하는 나는 매우 긴박하게 쫓기는 사람처럼 되었다.


결국,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스코어로 플레이를 끝내고 나니 이 멀리까지 와서도 그간 살아온 습성대로 뭐든 급하게 해내고야(?) 마는 한국인들이 참 안타깝게도 여겨지면서 다시는 내 뒤에 두고싶지 않는 플레이어라는 생각을 했다. 70대임에도 헉헉거리며 카트를 구부정하게 밀며 급한 발걸음을 하면 라운딩이 즐거울까 하는 생각, 혹시나 나도 몸에 급함이 남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운전하며 돌아왔다.


오늘도 잠에 들기 전에 명상을 하며 다시 되뇌에 볼 단어는 여.유. 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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