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상현 Jul 06. 2023

[세계여행] D-Day 서울, 멕시코시티

6개월 장기여행의 시작, 멕시코시티 레이오버

드디어 여행이다. 


나는 외국에서 석사과정까지 학업을 마치느라 남들보다는 다소 늦은 나이에 군입대를 했다. 정당성 없는 위계질서를 혐오하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조직에서 그냥 포기하고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는 것도 잘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열심히 군생활을 했다. 하지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학창 시절 때문인지 한 군데, 특히 군대에서 늘 같은 배경과 같은 사람 속에 갇혀 있는 일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다. 


박사과정 학업은 올해 지원해서 합격하면 내년 가을에 시작이라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비게 된다. 그 와중에 전역 시에 군 적금을 통해 1000만 원가량의 여윳돈이 생기게 된다. 장기여행을 떠나기에 이만큼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 선정은 어렵지 않았다. 가본 적은 없지만 딱히 매력을 느끼지 못한 동남아와 인도, 관심도 없고 물가도 비싼 오세아니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관광지, 미국을 제외한다. 평소에 막연한 동경이 있던 남미국가들과 볼 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북아프리카 국가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발칸반도와 터키 쪽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여행 기간은 비슷한 루트로 아끼면서 다닌 여행유튜버들을 참고해 보니 6개월 정도가 될 것 같다.


3월에 괜찮은 비행기표가 나와서 무작정 에콰도르 키토로 들어가는 편도 항공권을 구입했다. 말년 휴가 도중에 여권 발급, 예방접종, 카드발급 등 기본적인 준비를 마치고 생각보다 너무 지루했던 전역 후 백수생활 1달을 어찌어찌 보내고 6.27 아침 비행기로 출국했다. 정말 꼭 필요한 준비만 했다. 여행 루트도 대강 가고 싶은 지역만 지도에 찍어놨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당장 에콰도르에서 페루로 언제 넘어갈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계획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여행이 하고 싶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정도 장기여행의 계획을 세우는 건 너무 귀찮아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짐도 최대한 단출하게 정말 필요한 물품들만 배낭 2개에 꾸렸다. 멋도 모르고 동대문에서 큰 가방부터 샀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장기여행은 최소한의 무게로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비교적 작은 가방 2개, 무게는 총 13kg 정도로 6개월을 버틸 생각이다. 



한정된 예산에 항공권도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없는 만큼 불편함과 힘듦을 감수해야 한다. 에콰도르까지 도쿄, 멕시코시티 경유 2번에 총 32시간 정도가 걸리는 항공편을 구입했다. 도쿄 경유는 2시간도 되지 않는 이상적인 시간이었지만 멕시코시티 대기가 12시간이다. 피곤함은 충분히 예상했지만 공항도 시내와 가깝고 이 먼 거리를 왔는데 아까운 느낌도 드니 그냥 레이오버로 시내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물론 나간다는 것 외에는 무계획이다.


인천공항도, 국제선 항공권도 오랜만이었지만 너무 예전부터 외국에 살며 공항을 들락날락해서인지 아무런 이질감도 들지 않았다. 도쿄 가는 비행기에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행 중인 인도인 남자가 옆에 앉아서 초반에는 나름 심심하지 않게 얘기하면서 갔지만 막판에는 역시 기가 다 빨리고 귀찮아서 자는 척하거나 음악을 들었다. 일본 가는 2시간짜리 비행기에서 기대하지도 않은 기내식이 나왔다. 멕시코행 장거리 비행 옆자리는 쌍둥이로 보이는 갓난아기 둘을 데리고 탄 한국인 부부가 걸렸다. 아기들이 심심하면 울어댔지만 부부가 내내 어르고 달래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주위에 얼마나 미안할지 생각하니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원래 교통수단에서 잠을 잘 못 자는 터라 이번에도 푹 자지 못하고 졸기만 한 것 같은데 시간은 나름 잘 지나갔다. 아에로멕시코 기내식은 지금 것 먹었던 모든 항공사 기내식 중 최상이었다.


멕시코시티 도착 후 공항에서만 1시간을 헤맸다. 멕시코는 2개월 후에야 돌아오기에 ATM에서 4만 원 남짓한 돈만 뽑는데 예상치도 못한 2800원 수수료를 냈다. 편하게 다니려 배낭을 맡길 곳을 찾아봤으나 못 찾아서 그냥 들고 시내로 나갔다. 그 와중에 버스비 계산도 안 하고 교통카드를 충전해서 갈아탄 후 잔액이 부족했지만 기사님이 무엇인가 말하고 그냥 태워줬다. 아마 잔액이 없으니 나중에 충전하라는 소리였을 것이다.



버스 바깥 풍경은 뭔가 이국적이면서 익숙한 느낌이었다. 계획은 없었기에 멕시코시티의 중심 Zócalo 광장과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 내렸고 그냥 주변을 산책했다. 그동안 유럽의 치안이 안정된 나라들만 다녔기에 중남미의 악명 높은 소매치기를 대비해 만반의 긴장과 준비를 갖췄다. 하지만 시내 중심가이고 멕시코가 브라질처럼 치안이 박살 나 있지는 않기에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유럽의 치안과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오히려 놀라웠던 것은 대중교통과 도시 전체에 무료 와이파이 망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하루짜리 레이오버 여행이었기에 유심도 없이 나갔지만 중심가 거의 모든 거리에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 중간중간 연락도 하고 길도 찾으며 다닐 수 있었다.



건물들의 역사와 스토리는 9월에 돌아오면 알아보기로 하고 걷다 보니 차이나타운이 나왔는데 주인, 고객 거의 모두가 중국인인 유럽의 차이나타운과는 다르게 대부분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중식당으로 보였다. 중국인 없는 차이나타운은 신선했다. 사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도시 전체에 관광객들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유럽에 그렇게 많은 아시안 관광객들은 일본인 가족으로 보이는 딱 한 팀만 보였다. 



남은 시간 평소에 먹고 싶었던 타코나 실컷 먹어보자는 생각에 길을 지나가다 사람들이 많이 서있던 집 한 곳, 타코연대기에 나와서 나름 유명하다는 곱창타코집 한 곳에서 식사를 했다. 맛은 있었지만 곱창타코는 상당히 기름졌다. 가격도 개당 2천 원으로 약간은 있는 편인 곳들이었어서 두 달 후 멕시코시티로 돌아오면 살짝 외곽 쪽에 노점상들 돌면서 싼 타코들도 시도해보고 싶다.


장거리 비행으로 너무 피곤했기에 일찍 공항으로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2400원짜리 공항버스비가 아깝게 느껴져 480원짜리 지하철로 돌아오겠다는 정신 나간 결정을 한다. 늦은 퇴근시간과 겹쳐 멕시코에서까지 2번 환승, 지옥철, 열차지연을 경험했다. 지하철에는 현지인들밖에 없는 듯했고 곳곳에 경찰이 비치되어 있어서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의미에서 핸드폰 사용과 사진촬영은 자제했다. 역시 준비가 없어 별 내용은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도시가 그렇게까지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여행하는 기분도 아직까지는 만끽하지는 못했다. 페루 이카의 사막같이 완벽하게 이국적인 풍경이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 이 글과 같이 [세계여행]으로 시작하는 말머리의 글은 여행 장소와 동선에 대한 기록유지용 글이 될 것이다. 내가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은 것은 [생각]으로 시작하는 글들로 여행하면서 떠오르거나 평소에 내가 갖고 있었던 잡생각들을 담은 에세이이다. 가끔 여행에 관한 글을 쓰겠지만 여행 에세이를 쓸 생각은 없다. 내가 그때그때 쓰고 싶은 정치, 문화, 철학 등 거창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잡념에 틀을 부여하는 글이 될 것이다. 여행에서의 사건이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냥 맥락 없이 지껄이는 글도 쓸 계획이다. [세계여행]이 여행을 기록하는 글이라면 [생각]은 지금의 나를 기록하는 글이 될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