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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Jul 06. 2023

나는 왜 여행하는가



최근 ‘뉴요커’에 재미있는 글이 하나 올라왔다. Agnes Callard라는 철학자가 쓴 The Case Against Travel이라는 글이다. 글쓴이의 주장을 대강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 여행자들이 여행을 통해 본인이 새로운 사람이 될 거라는 둥 여행이 자신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여행자가 여행지를 바꿀 뿐이다. 여행지의 실제 모습과는 다른 여행자들을 위해 개발된 여행상품들을 맞닥트리게 되는 여행자들에게 실질적인 개인의 발전이나 배움은 생기지 않는다. 여행 전의 나와 여행 후의 나는 같은 사람이다.


여행자는 거의 모든 경우에 특정한 여행지를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그곳에 대한 이미지와 비교하기 때문에 그곳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 또한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찰할 뿐 그들과 깊은 인간적 관계를 맺지는 아니한다. 여행이 즐거울 수는 있으나 위와 같은 이유로 여행에 쾌락을 넘어선 의미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행에 거창한, 어찌 보면 성스러운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여행이 주는 당신이 뭔가를 경험하고,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바꾼다는 환상 (실제로는 표면적인 체험에 불과하지만)이 안정적이고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내가 인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장 효율적으로 치유해 주기 때문이다. 


이 글이 뉴요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성난 댓글세례를 받고 있는 동시에 적은 수의 사람들의 공감 또한 얻는 모습을 보면 작가의 도발적인 의도가 100%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도 나름 여기저기서 시니컬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읽으면서 속으로 킥킥대고 무엇인지 모를 통쾌한 느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행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을 즐기면서도 동시에 여행 자체를 일종의 자기 위로로 평가절하하는 저자의 결론에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불편함 또한 느껴졌다. 내 여행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글을 읽으면서 내가 군대에서 전역 후 세계여행을 갈 계획을 세우고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때 내가 좋아했던 한 선임이 한 얘기가 떠올랐다. 평소에도 과도할 정도로 무뚝뚝하고 무게를 잡았지만 그만큼 본인의 일에는 늘 열심히, 또 확실히 임하던 나보다 4살 어린 이 선임은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 요즘 사람들이 자기를 찾는답시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한심하게 보인다며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자신을 찾는 길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위 글의 저자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이 말을 듣고 당연히 나는 자기 방어에 들어갔다. 나는 나를 찾으려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한다고.


내 여행의 목적은 정말로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아니, 나는 여행에서 ‘나를 찾는다’는 말이 대체 뭔 말인지조차 모르겠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게 말도 안 되고 그러던 자신을 여행 한 번에 찾게 된다는 것도 웃기는 소리다. 나는 내가 봐도 자의식 과잉 상태의 사람으로 내가 누구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 가치판단에 의해 옳다고 생각하기에 행하는 일이고 나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충동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논리를 버리고 충동과 욕구에 굴복한 나약한 인간들일뿐이고 본인들도 잘못된 줄 알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지금의 나와 진정한 내가 마치 다른 사람인양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냉소적으로 보일지 모르는 결론에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일시적인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 효과가 사라지면 다시 똑같은 충동과 욕망에 지배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 여행의 이유는 무엇인가? Callard가 성급하게 추정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여행이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거나 나를 통째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내가 남미로 여행을 왔다고 내가 진정한 남미의 문화를 마주치고 남미의 사람들과 교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자연스러운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아마 남들이 많이 가본 멋지고 예쁜 장소 위주로 여행할 것이고 같은 언어와 배경을 공유하는 한국이나 독일 사람들과 가장 많이 어울릴 것이며 진짜 현지인들과는 ‘이거 얼마예요’,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니’ 수준 이상의 대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여행을 가는 이유는 이런 ‘표면적인 체험’이 나에게는 너무나 재미있기 (혹은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Callard가 여행에 쾌락을 넘어선 의미는 없기에 여행 자체가 쓸모없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여행이 바로 쾌락을 주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쾌락을 느끼고 누군가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서 쾌락을 느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여행 그 자체보다는 여행하는 자기 자신을 동경하기에 여행을 다닌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해외에 살며 나 자신을 한국에서 자라온 사람들보다 나름 ‘열린’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런 내가 폐쇄적인 군대에 적응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물리적으로 내가 경멸하는 사람이 가득한 한 장소에 갇혀 있는 것이 어딘가 답답한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혹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 답답함이 군 생활 내내 나를 여행 유튜브와 여행 다큐멘터리로 이끌었고 스멀스멀 남미와 북아프리카에 대한 환상을 만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1년 6개월을 버린 것을 (남들은 대부분 일종의 자기 위로로 군생활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나는 이 1년 6개월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 그대로 버린 시간이라 생각한다) 세계여행이라는 거창한 계획으로 보상받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또, 박사과정을 시작하거나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이 정도의 장기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무조건 지금 여행을 해야겠다는 위기감 또한 들었다. 결정적으로는 병사 월급이 인상되면서 전역과 동시에 1000만 원이라는 자금이 손에 들어왔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감생활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한 금액이지만 그래도 아끼고 아끼며 반년 정도는 남들이 못 가보고 못 해보는 경험들을 하는 데는 충분한 금액이다.


그런데 이런 세부적인 이유들을 뛰어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단순하게 재밌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여행은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일이다. 왜인지는 나도 모른다. 어차피 전역하면 백수인 내가 벗어나야 하는 일상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장기여행은 여행 자체를 피곤한 일상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또 혼자 떠나는 장기여행인 만큼 누군가와의 추억을 쌓기 위한 목적도 아니다. 아마 가장 근접한 동기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일 것이다. 그런데 한 단계 더 파고들어 왜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이 있냐 물으면 그 답은 나도 모른다. 나는 그냥 새로운, 이국적인 것들이 좋다. 아니면 새롭고 이국적인 것들을 보게 된다고 상상하는 것이 좋은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여행지 선정과 (유럽과 미국은 비싼 것도 있지만 솔직히 이제 어딜 가도 거기가 거기 같을 것 같다) 세부적인 여행 동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물론 Callard가 얘기하듯이 나는 여행지의 표면만 경험하면서도 이국적인 경험을 했다고 좋아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녀가 말하듯이 그것은 외부인으로서의 여행자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을. 여행은 재밌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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