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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Jan 22. 2024

[세계여행] D+207 스리랑카 중북부 도시여행

미련 없이 떠나는 스리랑카

날씨 문제로 스리파다를 포기한 이상 다음 행선지는 자연스럽게 캔디로 정해졌다. 누와라엘리야에서 캔디는 직행 버스로 바로 갈 수도, 근처 나누오야까지 이동한 후 기차를 탈 수도 있다. 버스를 타는 게 훨씬 빠르긴 하지만 이번이 여행 중 마지막으로 기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기차를 선택했다. 나누오야에서 기차에 올랐지만 이 날은 아침 일찍부터 계속 비가 왔고 꽤나 오랜 기간 동안 휴식일이 없이 계속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니다 보니 피로가 몰려왔다. 결국 밖이 보이지 않는 복도자리가 나자마자 풍경 감상을 포기하고 자리에 앉았다. 캔디로 가는 네댓 시간 동안 졸음을 참느라 고생깨나 했다. 기차에서 내려서 숙소까지 걸어가며 본 캔디는 스리랑카에서 처음으로 도시의 느낌을 풍겼다. 생각보다 규모도 있고 거쳐온 다른 마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캔디에도 시내 쪽에는 마땅히 머무를만한 괜찮은 숙소가 안 보여서 예약을 하지 않고 가는데 마침 스리랑카 여행 정보방에서 한 그룹이 숙소를 셰어 할 사람을 찾길래 조인했다. 숙소는 위치가 정말 좋았고 가격이 1인당 2박에 6500원 정도로 매우 저렴했지만 예상 가능하듯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벌레가 많은 건 이제 스리랑카에서 놀랍지도 않지만 방이 너무 습하고 벽에는 곰팡이 자국이 가득했다. 결국 첫날부터 피부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캔디를 떠난 후에도 며칠 동안 침구류에 살이 닿으면 두드러기와 가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동행들보다 조금 먼저 캔디에 도착해 숙소에 들어가려는데 미로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으면서 간판도 없어 입구를 찾기도 힘들었고 물어물어 도착한 후에도 아직 방 준비가 덜 되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처음에 3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결국은 동행들이 다 도착한 후인 2시간이 지나서야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스리랑카에 워낙 한국인들이 없기도 하고 나는 가뜩이나 보통 여행자들의 반대 방향으로 도는 탓에 여기서 만난 일행들이 거의 2주 만에 처음 본 한국사람들이었다. 돌아보면 캔디 자체가 볼거리가 심각하게 없는 도시라 그나마 일행들과 떠들면서 시간을 보낸 게 다행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늦은 오후에 조금이나마 캔디 시내를 돌아보러 나갔다. 별 것 없던 중앙시장을 거쳐 캔디호쪽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다들 광장에 있던 관람차를 타겠다고 했다. 나는 전혀 생각이 없었으나 이미 일행이 4명분의 티켓값을 흥정했고 어느 순간 보니 나도 저 고물덩어리 위에 앉아있었다. 정말 철골에 녹이 슬지 않은 부분이 없는 당장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이는 관람차였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여기저기 매달리며 수동으로 관람차를 돌렸고 우리가 위아래로 탑승하니 본격적으로 모터가 돌아갔다. 내가 앉은 반대 방향으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돌아서 조금 어지러웠고 사람들은 관람차에 웬 동양인들이 넷이나 앉아있으니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봤다. 꽤나 긴 시간 동안 운행했는데 마지막에는 손발에 땀이 흥건해진 채로 내렸다. 이후에는 캔디호, 근처 백화점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생각보다 정말 도시에서 할 게 없어서 다음 날 오전에는 영화 '웡카'를 관람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프리퀄이라 나름 기대를 하고 봤는데 스리랑카에서 4천 원만 주고 봐서 망정이지 한국 티켓가격을 주고 관람했으면 욕만 잔뜩 하고 나왔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일단 주연이었던 티모시 샬라메의 발연기가 영화 내내 상당히 거슬렸고 각종 클리셰 범벅에 매력적이지도 않은 뮤지컬 넘버들을 통해서 맥락 없이 억지로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게으름이 참아주기 힘들었다. 영화가 끝난 후 비가 조금 내렸지만 그냥 맞으면서 캔디호를 한 바퀴 돌고 석가모니의 치아가 봉인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불치사에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고 건네받은 영수증을 습관적으로 구겨서 손에 쥐고 있었다.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달라고 하자 '내가 티켓을 받았었나?' 생각하고 당황했는데 손에 구겨져 있던 영수증을 펴보니 티켓을 겸하는 종이였다. 불치사는 명성에 비해 규모가 크다고 느껴지지는 않았고 개인적인 종교적 인연이 없으니 딱히 흥미롭지도 않았지만 비 오는 날에 사원의 풍기는 사원의 분위기와 건물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무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입장료 2000루피짜리의 값어치를 하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비도 계속 오고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어서 숙소에서 쉬며 일행들과 떠들면서 캔디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남쪽으로 가는 일행들과 헤어진 후 나는 버스를 타고 다음 도시인 담불라로 이동했다. 체크인을 하고 낮잠을 자며 체력을 회복한 뒤 담불라 시내 쪽에서 유일한 볼거리인 황금사원과 동굴사원으로 50분 정도를 걸어갔다. 솔직히 황금사원은 금색으로 칠해진 스투파와 대형 불상이 전부이고 딱히 인상적인 볼거리는 없다. 황금사원 쪽을 통해서 동굴사원으로 올라가게 되면 입장권을 사기 위해 반대편 길로 꽤나 많이 걸어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내리막길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한 현지인이 말을 걸었다. 아마도 가이드로 보였는데 본인 그룹에서 한 명이 사원에 들어가지 않아서 표가 하나 남으니 원래 입장료인 2000루피 대신에 1500루피에 표를 사지 않겠냐고 물었다. 살짝은 미심쩍었지만 표에 문제가 없어 보였고 매표소까지 길을 왔다 갔다 하기도 귀찮아서 이 사람에게 티켓을 구매했고 아무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꽤나 계단을 걸어가야 나오는 동굴사원에서는 절벽 밑으로 지어진 건물 안에 위치한 몇 개의 석굴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불상들과 벽화를 관람할 수 있다. 벽화는 오히려 이집트 무덤의 벽화들보다도 흥미로웠고 불상들도 딱히 역사나 스토리를 알아보지 않고도 직관적으로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다. 스리랑카 치고 저렴한 입장료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돈이 아깝지 않은 곳이었다. 불교 사원들은 신발을 맡기고 입장해야 하는 곳이 많은데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신발을 다시 찾을 때 꽤나 노골적으로 기부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도 신발을 돌려받을 때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비비는 제스처를 취하며 기부금을 요구해서 무시하고 신발만 찾아갔다. 이미 외국인들만 내는 고가의 입장료를 지불했고 아무리 유지비가 든다고 해도 이렇게 예의 없고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은 불교의 정신과도 맞지 않는다. 이 날부터 날씨가 괜찮아지기 시작했는데 사원을 나서서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는 오후를 만끽했다.


사실 담불라를 가는 이유는 사원들 보다도 스리랑카의 랜드마크인 시기리야 락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시기리야 락은 거대한 돌 꼭대기에 지어진 고대 왕궁의 폐허가 있는 곳인데 입장료가 30달러로 터무니없이 비싸서 많은 여행자들이 옆에 있는 또 다른 바위산인 피두랑갈라에 오르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나도 나와 관련 없는 역사가 만들어 낸 폐허에서는 확실히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이집트에서 깨달아서 오히려 시기리야 락을 조망할 수도 있는 피두랑갈라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담불라 체크아웃 날에 충분히 보고 다른 도시로 이동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정이 많이 여유로워서 하루 더 텀을 두고 시기리야 마을로 들어가 1박을 하며 피두랑갈라를 올랐다. 담불라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 도착한 시기리야 마을의 숙소는 부부와 어린 남자아이 3명이 사는 집이었다. 점심거리로 빵을 사서 숙소에 들어가는데 막내가 내가 먹고 있는 빵을 달라고 요구했다. 솔직히 짧은 순간에 어떻게 할지 고민을 했는데 엄마가 하지 말라며 바로 막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막내는 한참 동안 서러움에 울어댔다. 숙소도 꽤나 외진 곳에 있었고 이 날은 밀린 블로그를 쓰려 일정을 비워놔서 쉬고 있는데 아이들이 심심했는지 카드게임도 하고 동네도 구경하자고 해서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놀아줬다. 한 번은 아이스크림 트럭이 집 앞을 지나가니 아이들이 엄마를 데리고 모두 그쪽으로 뛰어갔다. 나는 마당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나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선물로 받았다. 아이들이 귀엽고 똑똑해 보였고 홈스테이 운영에서 부모님을 많이 도와주는 것 같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외부 사람들과 돈이 얽힌 관계를 경험하는 것 같아 아이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음에도 뭔가 씁쓸했다.



다음날 새벽에 피두랑갈라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툭툭을 대절해야 했다. 도보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위치였는데 원래 같았으면 일찍 일어나서 걸어갔겠지만 이 지역이 야생 코끼리 출몰지역이라 해가 졌을 때 도보 이동은 많이 위험하다고 했다. 그런데 저녁에 숙소 주인에게 들은 가격이 내 생각보다는 많이 비쌌다. 마을에 들어오면서라도 길 위의 툭툭 기사들과 흥정을 하며 대강 가격이라도 알아놨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고 다른 방법이 없어서 편도로만 툭툭을 빌렸다. 4시 40분에 일어나서 툭툭을 타고 피두랑갈라로 이동했다. 해가 뜨지 않아 꽤나 어두웠던 산길을 올라 정상에 도착해서 일출을 기다리니 막판에는 상당히 많은 관광객들이 모였다. 아쉽게도 지평선에 구름이 껴서 일출은 볼 수 없었다. 사실 일출보다 정말 좋았던 건 1시간 정도 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툭툭 기사들과 약속한 시간에 맞춰 내려가고 조용하게 밀림과 시기리야 락을 한참 동안 바라볼 때였다. 시기리야 락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으니 앞에서는 원숭이들이 서로 털을 골라주며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볼일들을 다 봤는데 무리가 대장을 따라 나무를 타고 사라지고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남아있던 한 마리의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줬다. 원숭이는 바나나 속살은 물론이고 껍질까지도 먹는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얘도 꼭지 부분은 먹지 않고 버렸다. 피두랑갈라에서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경치를 보다 내려와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좋은 날씨에 시기리야 락과 외부 요새 옆을 지나치는 아침의 숲길이 좋았다. 스리랑카에서 심심치 않게 있는 야생 공작새도 마리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으나 꽤나 경계심이 있었다.


숙소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다음 행선지인 아누라다푸라로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시기리야 마을에서 담불라까지 다시 버스를 타고 나와 아누라다푸라행 버스를 찾아 더운 날씨에 짐을 앞뒤로 지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는데 그냥 내린 곳 반대편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였다.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었는데 내가 아직도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 다시 몇 시간의 이동 후 도착한 아누라다푸라 역시도 꽤나 크고 복잡한 도시의 모습이었고 이제는 오후에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으니 상당히 더웠다. 숙소에 짐을 놔두고 해가 지기 전에 빠르게 미힌탈레로 가기로 결정했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마침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출발하고 있길래 재빠르게 올라탔다. 미힌탈레 유적지에는 아래쪽부터 오래전 존재했던 불교 사원의 폐허들이 즐비하다. 이곳 역시 외국인들에게만 입장료를 징수하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 티켓판매소 앞에서 직원들이 그냥 외국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잡아 데려오는 방식이다. 딱히 억울하지는 않지만 이런 걸 볼 때마다 인도사람들은 생김새가 비슷해 말만 안 하고 있으면 그냥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설에 의하면 미힌탈레는 스리랑카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수된 장소라고 여겨지고 따라서 지금도 신성시되는 곳이라고 한다. 정상에는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세 군데 있는데 각각 스투파, 불상, 전망대가 위치하고 있다. 스투파와 불상 모두 광각으로 찍힌 사진이라 작아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꽤나 규모가 있었다. 전망대는 오르내리는 길이 너무 험하고 위에서 보는 경치도 기가 막힌 정도는 아니었다. 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위에서 여유롭게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이렇다 할 의미를 주는 곳도 아니라 다소 실망스러웠다. 이 모든 장소들을 신발을 벗고 돌아다니려니 발바닥이 좀 많이 아팠고 내려와서 다시 신발을 신으니 문명의 소중함을 느꼈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버스 하나가 멈춰 섰다. 정류장에 있던 로컬들은 타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 안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아누라다푸라에 가냐고 물었고 맞다며 빨리 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버스에 올라타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는데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아저씨의 영어가 애매해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학생과 부모가 같이 다녀온 현장학습에서 복귀하는 차량인 듯했다. 그런데 왜 버스노선을 달고 달렸고 나를 태워주는 친절을 베풀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어쨌든 정식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아니니 요금은 받지 않았지만 내가 가는 목적지까지 갈 수도 없었다. 중간에 길이 갈라지는 부분에서 내려줬고 걸어가기는 조금 애매한 거리라 사람들에게 물어 버스를 갈아탔다. 아무래도 배차대기 중이었는지 한참을 기다리다 출발한 버스는 3킬로미터가 조금 되지 않는 거리를 와놓고 바가지로 의심되는 50루피를 요구했고 어쨌든 미힌탈레부터 편도 버스비용보다는 적으니 그냥 냈다. 저녁을 오랜만에 피자헛에서 서구의 맛을 느끼며 시기리야에서 일출울, 미힌탈레에서 일몰을 봤던 여행 200일 차가 알차게 마무리됐다.



아누라다푸라에서의 둘째 날은 점심 먹을 때까지 휴식을 취한 후 오래된 사원들이 밀집한 신성도시로 향했다. 보통은 툭툭을 대절하고 30달러 하는 통합입장권을 끊어 예닐곱 군데의 유적지를 설명을 들으며 돌지만 스리랑카의 역사와 종교에도 크게 관심이 없으니 걸어서 입장료가 없는 곳들만 들어갈 생각이었다. 숙소에서 유적지까지는 생각보다 거리가 좀 됐고 그것보다도 날씨가 너무 더워서 스리마하보디에 도착하니 이미 땀범벅에 녹초가 되었다. 스리마하보디는 성스럽게 여겨지는 보리수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갔는데 보리수를 둘러싸고 사원이 있었다. 보리수에 꽃을 바치는 현지인들이 상당히 많았고 다들 하얀 옷을 맞춰 입고 보리수를 크게 돌며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도 보였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 도착한 루완옐리세야 대탑은 거대한 스투파였고 두 군데 모두 개인적으로 큰 느낌은 없었다. 별개로 이곳에서도 지금까지 봤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원숭이들, 앵무새와 종은 모르지만 노랗고 커다란 부리가 인상적이었던 새, 풀밭에서 유유자적하는 소들 등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더위에서부터 비롯되는 힘듦을 이기기에는 유적지가 너무 재미없었고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잠깐 숙소 근처 호수에 들렀다 아누라다푸라 여행을 마무리했다.


출국까지 일정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서 동쪽 해변에 위치한 도시인 트랑코말리로 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동선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져서 콜롬보를 여유 있게 즐기는 쪽으로 선회했다. 숙소 근처에 있고 지금까지 계속 이용했던 뉴터미널로 갔으나 터미널 직원이 콜롬보행 버스는 올드터미널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거리가 짧지는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툭툭을 타고 이동했다. 호객을 하던 툭툭기사 하나도, 내가 타는 버스 옆 버스 기사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고 이제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버스는 올드 터미널을 떠나 아누라다푸라 시내를 가로지르고 올드터미널까지 들렀다 출발했다. 그래도 툭툭을 타는 게 의미가 없지는 않았던 게 버스가 아누라다푸라에서부터 5시간 후 콜롬보에 도착할 때까지 꽉 차 있어서 하마터면 내내 서서 이동할 뻔했다. 그 와중에 기사는 경적을 울리고 중앙선을 넘나들며 분노의 질주를 펼쳤다. 사고라도 나면 버스 안에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앞 좌석에 앉아있는데도 바로 앞까지 사람들이 끼어들어와 서니 다리가 접힌 상태로 몇 시간을 이동하려니 많이 힘들었다.



어찌어찌 콜롬보에 도착하고 체크인 후 바로 골페이스비치에서 일몰을 봤다. 해변이 그리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물은 맑았고 구름이 은은하게 깔려있어서 일몰도 꽤나 아름다웠다. 앞에 고급 백화점과 호텔, 그리고 강변을 따라 잔디가 조성되어 있는 나름 부유한 구역이라 사람은 많아도 정신없지 않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해가 지고 들어간 백화점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돈냄새가 풍겼고 웬만한 현대백화점 부럽지 않게 상점과 식당들이 갖춰져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내가 맡아놓은 침대에 사람이 누워있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침대는 건들지도 않고 나가서 직원이 빈 침대로 착각한 듯했다. 원래 들어가려던 8인실이 꽉 차서 결국 하루는 비어있는 4인실을 혼자 사용할 수 있었다.


아무리 계획을 최소화하고 여행한다지만 보통 도시여행을 하면 꼭 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도 두세 가지는 찾아놓기 마련이다. 하지만 콜롬보는 사실상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마땅한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없었다. 보통의 여행자들이 1박만 하거나 아예 건너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래도 한 가지의 컨텐츠는 마련해 놓았다. 전에 골포트를 여행할 때 옆에 있던 크리켓 경기장을 보며 스리랑카 역시 영국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크리켓을 즐긴다는 게 생각났고 프로 경기를 관람할 기회를 알아보던 와중 내 여행 막바지 때 콜롬보에서 스리랑카와 짐바브웨 간의 교류전 시리즈가 열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라 동행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같이 갈 한국인을 한 명 구했고 콜롬보 둘째 날 저녁에 크리켓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가는 길에 시도한 비프수프는 나름 스리랑카 도착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음식이었지만 비계만 가득 찬 기름진 국이 나와 처참하게 실패했다.



원래 크리켓은 정식룰로 진행하면 며칠이 걸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관람한 경기는 T20이라는 3시간가량이 걸리는 룰을 적용한 경기였다. 경기장은 생각보다 작은 느낌이었지만 오랜만에 한국에서 야구경기를 보러 가면 느껴지는 기분 좋은 분위기가 비슷하게 났다. 재밌었던 점은 보통 전광판 위에 협회국기를 가운데에, 그리고 홈팀과 원정팀 국기를 양 옆에 같은 높이로 건다면 이곳에서는 스리랑카의 국기가 가운데에 약간 높게 걸려 있었다는 것이었다. 미리 조금 공부한 크리켓 룰이 경기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생각보다 규칙이 그렇게까지 복잡하지는 않아서 경기가 조금 진행되니 의문스러운 점 없이 경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양 팀 모두 공격 초반에는 점수가 잘 나지 않아서 루즈한 경기가 진행되다 막판으로 갈수록 볼러의 힘이 떨어지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점수가 펑펑 터졌다. 경기가 시작할 때에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의문스러웠지만 한 시간 정도 지나니 경기장이 거의 가득 차서 분위기도 살아났다. 스리랑카가 무난히 이길 것 같던 경기는 마지막 오버에 도달했을 때 치명적인 실책과 연속 대량 득점이 겹치며 짐바브웨가 아슬아슬하게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스리랑카 관중들은 많이 실망한 것처럼 보였지만 응원하는 팀이 없는 입문자에게는 처음부터 거의 가장 재미있는 경기를 본 꼴이라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경기가 끝난 후 숙소 쪽으로 와 동행의 또 다른 지인 한 명이 합류해 거의 두 달 만에 맥주를 한 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출국까지 4일이 남았고 이제 더 이상 할 건 없었다. 숙소에서 쉬고 동행들을 다시 만나 밥을 먹으며 떠들고, 또다시 바닷가에서 일몰을 보고, 공항과 가까운 네곰보 쪽으로 숙소도 옮겨봤지만 딱히 인상적인 것 없이 비위생의 끝이었던 생선시장 정도만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유통되는 생선을 지금까지 먹고 배탈 한 번 나지 않은 게 신기해질 정도였다. 밀린 블로그를 쓰며 시간을 보냈지만 결론적으로는 아까운 4일이었다. 육로이동이 안 되면 이런 점이 문제다.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아서 시간에 쫓기기는 싫고, 그렇다고 여유롭게 잡으면 꼭 막판에 며칠이 뜬다. 항공권 가격을 생각하면 예약을 임박해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해법을 찾는 게 쉽지는 않다. 돌이켜보면 남미의 육로이동이 힘들기는 했지만 더 나은 여행을 가능케 했던 것 같다.


이렇게 3주가 넘는 스리랑카 여행이 끝났다. 확실히 매력이 많고 아직 한국인들이 많지 않아 숨겨진 보석은 맞다. 다양한 지형, 길지 않은 이동거리, 저렴한 물가와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친절한 사람들이 장점이다. 하지만 산간지역에서 날씨가 도와주지 않은 점이 너무 많이 아쉬웠고 단순한 음식, 더위와 모기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지금까지 6개월이 넘게 거의 타지 않아서 내가 원래 그런 체질인 줄 알았는데 스리랑카에서 그게 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모기는 그냥 포기하는 게 빠르다. 아무리 모기기피제를 열심히 뿌려도 하루에 열 군데씩 물릴 때도 많고 다리에 물린 곳을 긁다가 덧난 상처는 3주가 다 되어가는데도 아물지를 않는다. 스리랑카를 떠나기 전 동행 하나가 스리랑카에 다시 올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산간지역은 확실히 날씨가 좋을 때 다시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3주 반동안 볼만한 건 다 봤다는 느낌이다. 결정적으로 볼리비아나 멕시코처럼 떠날 때 아쉬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집트처럼 질려서 떠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던 것 같다. 다음은 말레이시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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