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이 편하려고 하는 효도
오랜만에 엄마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조금 편안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대화도 나누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일 때문에 자주 집에 가지 못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었기에 서로에게 좋은 시간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괜찮다는 식당들을 찾아 예약을 했습니다. 네, 저희 엄마는 사실 털털하고 가끔은 남자 같은 성격을 가진 저와는 달리... 매우 소녀감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분위기도 좋고, 음식모양도 예쁜 식당을 찾느라 나름 애를 먹었죠.ㅎㅎ 그렇게 엄마를 만났습니다. 두근두근 떨리는 이 마음. 오늘은 제발 무사히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좋은 시간을 보내길 바라며...
사진으로 다시 봐도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데코가 되어 나왔던 밥을 먹으며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엄마는 무슨 음식을 좋아해? 엄마는 어디 가는 게 좋아? 엄마는 뭐 할 때 행복해? 엄마의 요즘 기분은 어때? 엄마는 어떤 옷을 좋아해? 등등... 사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되었는데 제가 아는 엄마와 엄마가 얘기하는 엄마는 아주 다른 사람이었어요. 그동안 엄마에게 관심이 없었던 무관심한 딸이 제멋대로 엄마는 이럴 거야라고 단정 지어 생각해 버린 것이었죠.
더 충격적인 사실은 엄마도 저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래도 엄마는 딸을 잘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인이 된 뒤로 쭉 따로 살았던 저는 그 사이 취향이나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엄마는 여전히 제가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것들을 아직도 좋아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죠. 실제 저는 학생 때 좋아했던 것과 취향 심지어 식성까지 성인이 되어 많이 바뀌었거든요.
서로에 대해 대화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이렇게 아는 게 많이 없었구나, 가족이라고 말하면서 서로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없었구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중단되지 않고 서로에 대한 질문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렇게 서로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채운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고 블루보틀로 향했습니다. 저도 커피를 좋아하지만 엄마는 커피를 더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유명한 카페라고 하면 제가 가끔 모시고 가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주변에 블루보틀이 있어서 함께 가자고 했죠.
엄마는 룽고를 마시고 저는 바닐라빈라테를 마시며 그동안 우리는 왜 서로에 대해 궁금했음에도 질문하지 않았을까 라는 대화를 나누었어요. 사실 가족이니까 물어보기 뻘쭘한 것들도 많습니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묻는 건 가족보다는 친구나 연인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서 더 많이 주고받으니까요.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떤 옷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도 사실은 가족끼리 묻기에 괜히 낯 간지럽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기에 더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배려하고 조심해주어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가족끼리 왜 이래 라는 말로 가족에게는 상냥하지 않아야 하고, 가족에게는 퉁명스러워도 되고, 가족에게는 편안해도 된다는 생각들이 자리 잡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엄마와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기면 먼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가족끼리도 가까워지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엄마와 커피를 마시고 한참 산책을 한 뒤, 다시 디저트를 먹으러 갔어요. 영화를 한 편 같이 볼까 했지만 볼만한 영화가 없었고, 시간이 애매했거든요. 디저트를 먹으며 엄마가 말했습니다. "딸, 엄마랑 밥 먹을 때 예쁘고 비싼 곳에 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엄마는 너랑 수제비만 먹어도 좋아."라고 말이죠. 저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사실 엄마와 좋은 식당에 가서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나는 효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퉁치려고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는 오히려 나와 시간을 보내고, 지금처럼 대화하고, 함께 걷는 것이 좋을 수도 있잖아요. 비싼 식당, 비싼 커피를 마시며 그것이 효도다, 나는 지금 효도를 한 것이다라며 나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기 위해 그토록 좋은 식당을 찾아 헤맨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앞으로는 내 맘이 편하려고 하는 효도 말고 엄마가 원하는 효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엄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되니까요. 엄마가 생각하는 효도는 어떤 것인지도 물어보고요. 이렇게 엄마와 관계 재설정하기의 첫 만남이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모를 때는 앞으로도 편하게 물어보기로 했죠. 이렇게 약속하고 나니 훨씬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우린 생각보다 가까운 사람의 마음이나 원하는 것을 모를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나와 아주 먼 사람인 직장동료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모른다고 생각되면 자주 질문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가족을 다 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의 생각이나 취향이 시간이 지나며 언제든지 바뀔 수 있잖아요. 여러분은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 )